둔한 채 살고 싶다.
둔한 대로 살고 싶다.
둔한 상태로 살고 싶다.
둔한 대로 살아가고 싶다.
둔한 채로 살련다. 그냥.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내리는 출근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날이다. 아, 이 문장을 내뱉고 나니 잊고 살았던 지난해 겨울 악몽이 되살아나긴 하지만.(나는 퇴직 후 혹 있을지도 모를, 한양살이를 위해 조그마한 공간 한 칸을 마련해 뒀다. 건물 최고층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거친 소리로 내게 전해진 전화 속 목소리가 있었다. 당신 집에 뭔가 이상이 있어 우리 집 천장이 엉망진창이오. 그는 앞뒤 설명도, 대화도 없이 내게 내쏟았다. 빨리 고쳐, 빨리 고쳐, 빨리 고쳐라. 결론, 그것은 결로였다. 디립다 퍼붓는 그의 목소리는 내게 악몽이었다. 막무가내였다. 무려 3주간이었다. 징그러웠다. 언젠가 이에 대한 글을 좀 쓰고 싶다. 이로; 인해 나는 세상사 한편을 제대로 배웠다. 누수탐사 관련 분야까지. 끔찍했다.)자, 또 각설하고. 어쨌든 나는 이런 날, 하늘에서 눈비가 쏟아지는 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무작정 걷고 싶다. 걷고 싶었다. 흐윽.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파트 단지의 정문을 통과하면서였다. 커다란 우산을 들고 양발로 들이치는 빗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기울였지만 강해지는 빗줄기의 세력을 저지할 수 없었다. 하늘의 힘이니 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워커를 좀 신고 나올걸. 운동, 운동, 운동, 나는 운동을 해야 한다, 무작정 걸어야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병적일 만큼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어 운동화를 덥석 신고 비 속으로 나온 거다. 감수해야지. 내 얕은 생각의 결과인데. 일터에 들어와서는 화장지를 듬뿍 뜯어 젖은 양말 속 물기를 빼내야 했다.
아름다운(?) 오늘, 나는 한편 슬펐다. 마음이 아팠다. 유튜브를 켜서 오늘 아침 강의를 들으면서 출근한 것은 습관이다. 은행발 문제로 세계 경제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뉴스를 어젯밤 잠들면서 들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아침, 이토록 아름다운 날에 이런 유의 뉴스를 듣고 걸어야 하는가. 경제에 뻥인 나는 차라리 시 한 구절을 듣는 것이 내 팔자에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한 지 또 제법 되었기에 망설여졌다.
가끔 듣곤 하는 유튜브의 유명 경제 tv를 켰다. 예상대로 틀림없이 연준 이야기가 오가고 미국에서 터진 금융기관 부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미국 현지 생방송까지 진행되었다. 경제에는 까막눈인지라 오고 가는 이야기의 현실이며 경제 세상이 험상궂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챘으나 이 험난한 상황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전혀 깨우칠 수 없었다. 하긴, 오리무중의 이 세상, 경제뿐인가. 어느 한 구석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할 수 없는 현실을 걷고 있음이 사실이니 애당초 세상만사 선무당 격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나의 행적은 무릇 차라리 걸맞은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슬펐다. 그냥저냥 듣고 어서 채널을 돌리려니 하는데 진행자였던가 미국 생방송의 출연자(이 유튜브의 설립자였다.)이던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둔하다'는 것이었다. 앞뒤 문맥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낱말에만 꽂혔다. 출근길 내내 내 귀에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진행 당시 어떤 내용 때문에 이 낱말이 필요했을까. 관련 내용은 단 한 컷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단어가 말하는 이로부터 세상 속으로 던져진 순간 오직 그 낱말은 나를 향한 낱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게 던지는 메시지로구나.
한심스러웠다. 나는 왜 이날 이때껏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지. 안타까움과 비참함과 더 보태서 참담함까지 얽혀 내게 젖어 들면서 제법 힘 있게 내리는 봄비 속 한 사람은 결국 의기소침해진 채 종종걸음으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재빨리 밀실로 내 몸뚱이를 소환시켰다. 둔하다.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이 많은 날을 살아오면서 왜 나는 툭툭 내던지면서 살아낼 용기, 한 가닥 길러내지를 못했을까. 이토록 엄청난 시간을 버텨왔는데도 나는 왜 '거기서 거기'인 범위의 삶 정도에 그친 채 생을 지탱하고 있는가. 나의 활동 범위, 나의 생활 범위, 그리하여 나의 사고의 범위는 왜 이토록 비좁은가. 날마다 걷는 출근길의 반복이 순간 초라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은 '둔하다'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는 데에 너무 둔하다. 가끔 이는 곧 알량한 옹고집이 아닌가도 싶다. 뚫고 나아가지를 못한다. 주저앉아 맨땅에 헤딩하는 정도까지만 숨을 쉰다. 퍽퍽 땅을 파고들어 지하세계의 암울을 덕지덕지 뒤집어쓰는 생활이라도 좀 했더라면 이렇게나 소심하지는 않을 것인데. 나는 내 몸뚱이를 누일 정도의 공간 안에 들어서서 그 공간만을 겨우 쓰레질 하는 것에 급급한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단 한 자국도 그 공간에 구멍 혹은 벽을 내어 튀어 나가지 못했다.
이제 생의 변곡점을 지나 하강 곡선 위에 서서 추락의 날을 거침없이 지나쳐야 하는 시점이다. 더더욱 슬픈 것은 이젠 둔한 것도, 예민한 것도 어찌 살펴서 재조립이라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버텨내면 다행인 정도의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지닌 물질이며 영혼이며 넋이며 그럭저럭 지켜낼 힘이라도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그곳에 와 있다. 둔한 내가 바라보는 우둔한 나의 모습이 참 안쓰럽다. 불쌍하다. 굼뜨고 무디고 군색한 것마저 판단하지 못한 둔한 생을 가이없이 지탱해 온 나의 한 생이 더없이 애틋하고 안타깝다.
오랜만에, 비 내리는데 나는 무덤에 드러눕듯이 일터 좁은 공간으로 으드득 빨려 들어가 지둔하고 미련한 하루를 운명인 듯, 숙명인 듯 또 그렇게 살다가 왔다. 아침에 반을 써 뒀던 일기를 뒷부분을 보완하여 밤 열한 시에 완성한다. 두세 번은 더 읽어봐야 하는데 그냥 이대로 올리련다. 어서 머리 말리고 눕고 싶다.
퇴근길의 동백.
퇴근길에 만난 동백꽃은 나무에 반, 길바닥에 반. 동백은 너무나 우주의 기운에 민감했다.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년손님 (24) | 2023.03.25 |
---|---|
삼국지를 들으면서 걷는 출근길 (24) | 2023.03.24 |
나의 ‘딥 퍼플’, 팬지꽃이 어디로 갔지? (26) | 2023.03.22 |
우리 집 봄맞이 준비는 베란다에서 시작된다 (29) | 2023.03.21 |
느리게 시작한 토요일이다 (14) | 202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