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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백년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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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백년손님이 있다.

 

 

 

이장할 곳의 묘지는 뷰가 참 좋아 가족 나들이도 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시골 집 한 채 값을 치렀단다. 잘 가시라. 아들딸 가까이 가니 좋아하시라. 고향이 뭐 별 것인가.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하지 않나. 묘지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토요일임을 확인한 후 줄곧 수면과 비 수면의 경계선에서 세 시간 여 보냈다. 알람 기상 시각 여섯 시는 순식간에 비상했나 보다. 순간 잠에 취했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떴다. 아홉 시를 넘어서 있었다. 내 몸이 제 스스로 챙기는 제대로 된 하루 시작이었다. 함민복의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나의 인생 어떤 세계 속 이쪽 면과 저쪽 면의 사이, 그 경계에서도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꽃은커녕, 어젯밤 갑작스레 했던 심한 실내운동이 원인인지 양쪽 더수기(뒷덜미)가 아팠다. 손가락 힘이 유난히 좋은 우리 집 남자가 등 마사지를 두 번이나 해줬는데도 잠깐 시원함 이후 다시 통증이 이어지고 있다.

 

집안 대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 집 방문객이, 누구 어려운 손님이 아니면 나는 대청소라는 일을 좀처럼 행하지 않는다.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청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주섬주섬 나 누울 곳만 대충 훑어내면서 그만그만 살아간다.

'어차피 금세 먼지는 다시 내려앉을 것인데 굳이 죽자 살자 청소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닥에 맨발을 내디뎠을 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꺼끌거린다고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밀걸레를 든다. 물걸레질은 하는 횟수는 더욱 텀이 길다. 정말로 어쩌다가 한 번씩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행위이다. 얼룩덜룩 눈에 띄는 물질이라도 바닥에 달라붙어 공생하러 들 때에야 한다. 그것도 얼룩이 진 부분만 닦아낸다.

 

최근에는 주중에 언니가 내려와 생활하곤 해서 제법 집이 깨끗한 편이다. 그녀는 눈을 뜬 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줄곧 부직포 청소기를 들고 어딘가를 밀고 다닌다.

"지겹다야 지겹여. 어찌 이렇게 산대? 제발 좀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시간도 얼마 안 걸려. 이렇게 밀고 다니면 돼."

나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사는 남자는 거의 무관심이다. 빡빡 빡빡, 언니만 부지런히 다리 운동 겸 밀걸레질을 하고 다닌다. 

 

최근 몇 주일은 사람이 살 만한 집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대청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련하여 맞이해야 하는 손님이 오는데도 그렇게 크게 일을 벌여서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 오전 아홉 시 삼십여 분부터 오늘 일을 시작했다. 대청소다.

 

내일이 형부 묘의 이장일이다. 한양 땅, 그것도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최절정으로 빛나는 그곳, 강남 그곳에 사는 조카가 내려온다.  조카는 어린 시절을 이곳,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자랐다. 고등학교까지. 그것도 나와는 동은 다른 같은 아파트에서 자랐다. 크게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당연한데 언제쯤인가부터 조카가 어려워졌다. 물론 유난히 말이 없는 조카이기는 하다.

 

요즈음 비단 조카뿐만 아니다. 내 아이도 어렵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젊은 사람들이 모두 어렵다. 다행인 것은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만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좀 별스럽게 사는 나여서 나만 그렇다면 문제이겠지만. 언니도 아들이 어렵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어렵더라."

나도 그렇다, 정말로 그렇다. 젊은 사람이 너무 어렵고 힘들더라. 사위가 백년손님이라 했던가. 나는 사위 볼 일이 없어 어려운 손님은 없이 살아가려니 했는데. 내게 오는 모든 젊은이가 백년손님인 듯하다. 일터에서도 젊은이들이 참 어렵다. 

 

이런 정도의 때부터 봐 왔던 조카가 이제는 마흔을 넘겼다. 같이 늙어간다. 조카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조카는 마흔을 넘어서고 만 총각이다. 분명 어느 모로 보나 최고의 일등 신랑감인데 아직 혼전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 아버지의 묘 이장을 한 후, 저 사는 곳 가까이 묘를 이장한 후 결혼하겠다고 늘 했다던데 이에 제 인생을 맞춤한 듯 그에게 예쁜 여자 친구가 있단다. 가을 즈음에는 결혼을 할 것 같다면서 매일 데이트를 하고 있다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어쨌든 그가 내려와서 우리 집에서 1박을 하고 내일 아침 1식을 한다.

 

조카가 사용할 화장실은 이미 언니가 청소를 말끔히 해두고 올라간다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언니가 사용하던, 내 아이의 방에서 조카가 하룻밤을 잘 텐데 이 방도 언니가 말끔하게 정리정돈을 끝냈단다. 토요일 즈음, 즉 오늘 밀걸레질만 한 번 하면 된다고 했다. 이곳저곳 대충 밀걸레질 한 번만 하면 된다고 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말끔해진 실내를 보니 어찌 청소를 좀 하고 살까도 싶다. 대청소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오늘 아침 눈을 떠서 둘러보니 이곳저곳이 난리다. 곳곳에 머리카락 무덤, 여기저기가 먼지 듬뿍. 난리도 아니다. 난리법석이다. 구석구석, 혼란과 혼돈과 무질서와 소란이다. 버려야 할 것 천지이고 지워야 할 것이 쌓여있고 쓸어내야 할 것이 듬뿍. 이것은 아니다 싶어 일회용 청소 장갑을 손에 끼었다. 세상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 발전된 세상에 맞춰 청소도 좀 하자 싶었다. 잔뜩 쌓여있는 물티슈 통을 들었다. 쓱싹쓱싹, 어서, 얼른 청소를 마치고 나는 블로그 일기를 쓰고 싶었다. 어젯밤 시청했던 <팬텀싱어 4 - 3회>를 써야 한다는 신념이 내게 엄청난 힘으로 일었다. 

 

끝내기가 쉽지 않았다. 점심시간, 잠깐 차려놓은 식사를 하고 오후 네 시가 다 되도록 청소를 했다. 말끔해진 집이 사람의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아마 이 맛에 청소를 하나 보다. 다른 할 일들을 언제 해야 하나 걱정되지만 오늘은 불후의 명곡도 볼 일이 없어 괜찮다. 부지런히 다음 일을 해내자. 내일 새벽에 눈을 떠야 하므로 어서 자야 한다. 재빨리 오늘 해야 할, 남은 일들을 끝마쳐야 한다. 바로 이것, 오늘 일기 쓰기도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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