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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삼국지를 들으면서 걷는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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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들으면서 걷는 출근길이었다. 

혹 퇴직 후 매일 쉬는 날이 되어야만 가능하게 된다면 어떡하나.

 

 

 

 

삼국지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파편으로 나에게 들어와 있는 삼국지. 전체 읽기를 시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 지 제법 되었다. 마음먹은 김에 꼭 해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다. 번듯하게, 사람처럼 산다고 하면 꼭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로 내게 입력된 이유가 뭘까. 이 연약한 여자는 왜 늘 삼국지를 꼭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여러 질의 대하소설을 읽어냈다. 한데 삼국지를 온전히 읽어내질 못했다는 것이 나를 늘 압박하곤 했다. 이상할 일이다.

 

우리 집에는 삼국지 전권 두 질이 있다. 이문열의 것과 황석영이다. 나는 이 두 질을 모두 읽지 못했다. 완전한 읽기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대하소설을 읽어낼 때 해 왔던 등장인물을 내세운 마인드 맵을 그려가면서 읽는 방법의 완벽한 독서를 삼국지로는 하지 못한 것이다. 두 종 모두 첫 장을 펼치고는 끝 페이지까지 다 읽지 못했다는 거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오래전에 내게 와 있는 이문열은 그의 여러 면모로 펼쳐지는 유명세에 힘입어 내게 올 수 있었다. 황석영은 열일곱이던가 열여덟이던가, 열아홉이던가의 소년기에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를 궁금하게 했다. '객지'며 '삼포 가는 길' 등 거침 속에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아 그의 삼국지에도 나를 입실하게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을, 두 질 모두 우리 집, 연장된 거실 벽면 책장 저 위에 '삼국지'라는 글씨를 새긴 마른 직육면체 비슷한 입체의 한 면을 내보이며 나를 꾸짖고 있다. '어서 읽어 줘!'

 

나이 들어 한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사뒀다가 미처 읽어내질 못하고 있는 여러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나의 남자가 언젠가 이 두 종의 삼국지를 읽어줬으면 했다. 그럼 내가 다 읽지 않아도 책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한데 남자는 '삼국지'에는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다. '이소룡'만 좋아하지 삼국지를 읽는 것에는 아직 마음을 두지 않는다. 어찌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의 공부 방향을 살펴보니 그런 기대는 멈춰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이문열은 너무 어려웠다. 아마 2권까지는 읽었을 거다. 수시 등장하는 한문 문장들이 나의 독서 흥미를 짓눌렀다. 황석영은 어쨌던가. 이쪽 역시 1권 아니면, 2권이나 3권에서 멈춘 듯싶다. 그의 삼국지에 들어서려 하면 꼭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되는 등 변명거리가 생겼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황석영도 여전히 펼쳐 읽지를 못하고 있다. 미안하다. 

 

책을 읽는 가장 멍청한 방법이 질(세트)로 사서 쫘악 책장에 전시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피하려고 애를 썼다.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고 책 읽기를 꼬박꼬박, 열심히 읽는다고 생각을 하면서부터 욕심이 생겼다.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구매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박경리의 <토지> 23권 한 세트가 그렇고 삼국지 두 세트가 그렇고, 아, 또, 황석영의 객지며, 열국지며 수호지까지였던가. 

 

아이가 소위  '이과; 체질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도서 구입의 방향이 바뀌었다. 수학과와 과학과 관련 도서 구입에 매진하였다. 아마 나는 아무리 펼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책까지 사 재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진짜 이과 쪽으로 전공을 택해 제 길을 뚫었다. 나의 터무니없는 탐욕까지 더해져서 부지런히 구매한 이과류 책들은 그래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자, 또 오늘 아침 일기의 길은 너무 먼 곳으로 나아가고 말았구나. 되도록이면 평일, 출근 직후 꼭, 정상 업무가 시작되기 이전 아침 시간에 일기 초안을 완성하겠다는 어젯밤 다짐이 지나쳤나 보다. 쓰기에까지 나는 욕심을 부린다. 이것저것 쓰고자 하는 것을 무작정 쓰다 보면 길이 천 갈래만 갈래 끝없이 펼쳐진다.

 

쓰고자 했던 본 내용으로 돌아오자. 내가 쓰고자 했던 오늘 아침 일기의 골자는 '삼국지'를 유튜브로라도 온전히 들어보자고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관우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아마 관동묘 등 아시아권 여러 나라에 종교화 속 인물이 된 덕분에 관우는 제법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이주일 전쯤 되었을 게다. 아니, 십일 정도 되었나? 일터 회식 후 2차 나들이에서 후배들이 삼국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러웠다. 그냥 부러운 것이 아니라 존경심까지 일만큼 해박한 지식이 몹시 높아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더 늙기 전에 꼭, 삼국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자는 생각을 굳혔다. 결국 방향을 바꿨다. 

 

우선 유튜브를 통한 '온전한 삼국지 읽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 끝에 황석영의 삼국지를 완전하게 읽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삼국지 읽기는 8시간 가까이 되는 낭독이다. 낭송자의 목소리가 참 편안하다. 차분하게 읽어내는데 듣는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시작 후 삼십 여 분은 잘 들렸다. 너무 익숙했다. 일주일 안에 꼭 해내리라 여겨졌다. 부지런히 들었다. 

 

부지런하다는 것에도 갈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효과적인 방법의 시도여야 했거나 몰입의 기운을 야무지게 다진 후 시작했어야 했다. 귀에, 머리에 이미 익숙한 앞 삼십 여 분이 끝나고는 내용이 제대로 입력되질 않았다. 스토리가 이어지질 않았다. 작품 자체가 워낙 수많은 등장인물인 데다 불쑥불쑥 일어나고 죽어나가고 스러지고 다시 시작되는 내용이어서인지 제대로 된 스토리의 연결이 입력되지 않았다. 

 

내 가상한 용기는 '돌아가기'를 참 잘한다. 주저앉기를 잘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수없이 돌아가서 듣기를 반복했다. 다시 돌아가기. 한 단계를 뛰어넘어 한 시간 삼십 이 분까지 스토리가 이어졌다. 이곳까지도 낯이 익고 귀에 익고 머릿속에 제법, 온전하게 내용이 담겼다. 장비 아저씨의 술버릇이 시작되는 부분, 딱 그 부분까지다. 이후의 내용은 아직 연결이 바로 되지 않는다. 아마 속된 말로 '거짓말 보태서' 아마 오십 번은 '장비의 술버릇'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오늘 퇴근길에도 되돌아갔다. 여포의 죽음까지는 익숙한 내용이다 싶은데 장비의 술버릇에서 여포의 죽음까지도 쉬이 연결이 잘 되질 않는다. 조각조각, 통통통 제 스토리를 내세우면서 서로 자기 이야기의 몸통을 내게 들이밀면서 부딪혀 온다. 

 

오늘 퇴근길에는 한양 언니와의 통화로 인해 아예 듣질 못했다. 혹 퇴직 후까지 이 계획이 진행되어야 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매일 쉬는 날이 되어야만 가능할까 싶어 걱정된다. 어서 듣고 꼭 내가 구매한 두 세트 중 하나라도 다 읽고 싶은데 이를 어떡하나 공포의 감정까지 생겨났다. 하자. 집중해서, 제발 좀 몰입을 해서 좀, 열심히 듣자. 단 한번 듣고도 귀에 쏙 들어오는 그 시기. 나의 싱싱했던 뇌가 얼마나 그리운지. 

 

아, 내게 올해 들어 또 한 세트의 삼국지가 왔다. 장정일의 삼국지가 내게 왔다. 나는 소설가 장정일을 참 좋아한다. 그의 시도. 그의 사상도, 그의 생활까지도. 황석영 삼국지를 읽으려니 했는데 장정일도 읽고 싶다. 나 죽기 전에 꼭 읽었으면 좋겠다. 황석영 버전이든지, 장정일 버전이든지 꼭 한 종은 읽으리라, 꼭!

 


<팬텀싱어 4 - 3회>를 듣느라 글의 수정을 제대로 했나 싶다. 어쨌든 이 시간, 나는 참 행복하다. 오늘 밤은 일부러 잠도 좀 덜 자고 싶다. 오늘 밤이 참 소중하다 싶다. 눈을 똑바로 뜨고서, 소중한 어떤 일을 하면서 이 밤을 지새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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