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까?
밤이 온통 경련이었다. 토막 난 주식 때문이 아니다.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글 때문이다. 그제와 어제, 오늘 3일을 한 가지 틀 안에서 주저주저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인 동토 '사할린'이 안중근의 '하얼빈' 자리를 차지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얼빈'이라는 낱말로 검색한 책 표지를 버젓이 제목 아래 올리면서도 제목을 '사할린'이라 적은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사할린'의 앞에 상징어처럼 붙어있는 '동토'라는 낱말의 분위기는 왜 내게 '하얼빈'에도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가련한 한민족, 우리 조상, 우리 동포들이 살았다는 공통점이 나의 뇌를 혼란에 빠뜨린 것일까. 안중근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건재해 있는 책인데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허허, 헛웃음을 나 혼자 짓고 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변명처럼 긴 글을 어제 일기로 썼다. 어제 아침 발견할 당시의 공포와 당혹스러움에 대한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오늘도 눈뜨자마자 나는 그 생각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여전히 그렇다. 자꾸 생각난다. 덕분에 주식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것에 감사하다는 얼렁뚱땅함을 내비춰야 할까. 지나칠 정도로 늘어진 글에 블로그 친구들의 짜증스러움이 메아리의 형태로 들려온다. 오늘 아침도 출근하자마자 이곳의 어제를 열었다. 구구절절 쓸데없는 부사들이 구한말 힘을 잃은 한량들의 아픈 춤을 추고 있었다. 문장은 지쳐 있었다. 주인을 부르기 위한 힘도 사그라진 뒤였다. 손을 저을 힘도 지니지 못한 채였다. 하염없이 초라한 몰골로 축 늘어져 있었다. 몇 문장을 눈으로 걷다가 그만 멈췄다. 부끄러웠다.
오늘 아침 일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들여다본 어제 일기가 준 쇼크 때문이다. 구절구절 오물 범벅의 문장이었다. 벗겨내려니 했으나 짐스러웠다. 다시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글을 쓴 이가 자기 글에 대한 정을 뗀 후였다. 소위 '블로그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내 글을 읽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들어온 이들은 그 얼마나 지겨울까. 미안했다. 공고라도 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들어오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생각이 좀스러워 고해성사처럼 쓴다고 쓴 글이 변명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습니다. 잡스러움만 가득 차 있습니다. 부디 열고 들어오신 문 놓지 마시고 뒤돌아선 다음 바로 닫은 문을 다시 열고 나가십시오.'
일터 일도 자꾸 제대로 끝나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 했으면 되지 않았나 싶어 올린 것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퇴짜를 맞았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니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전하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탕탕탕 판결을 내린 후였다. 수정 불가의 망치를 두드렸노라고 했다.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시 들춰야 하는 고통을 그들은 왜 모를까. 깡그리 잊었는지, 의도적으로 잊고 사는지 소시민의 삶에 굵고 진한 가새표를 치고 달려드는 것들에게, 오, 신이시여, 그들을 살피고 싶지 않소.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일터의 하루를 대충 접어두고 마무리했다. 3일을 계속 쉰다는 생각에 마음 한쪽 서서히 평온의 힘이 스며들어 온다. 이곳에 글을 쓸 힘도 생긴다. 지금은 누군가 나의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유의 미덕도 발휘할 수 있을 듯싶다. 사람은 미래를 먹고 산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쉬는 날이 있다는 것이 오늘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당장 내일 아침에는 아침잠을 좀 느긋하게 잘 예정이다. 여유 있게 새날을 맞이하고 싶다. 사람이 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날이 사람을 모셔가는 시간이 되게 하고자 한다.
오늘 이곳을 들르시는 나의 블로그 친구님들이여. 많은 날을 아주 긴 글로 당신들을 피곤하게 한 것을 용서하시라. 이 바쁜 세상에 생면부지 어느 한 사람이 쓴 글을 읽어내느라고 많이 힘드셨으리라. 오늘은 사죄의 의미로 짧게 글을 마감한다. 오늘, 금요일은 '불타는 금요일'이 되게 하셔서 밤을 새워 한참 즐거우시길. 열심히 놀아 한 주의 마지막 피곤을 녹여 내시길. 내일, 토요일은 이틀이나 남은 휴일에 기대어 한계 없는 기쁨을 누리시길. 줄곧 느긋해지시기를.
'블로그 글쓰기를 멈출까? '
라는 생각을 내게 툭 던져봤다.
내가 말했다.
"일단 쓰라."
"무릅쓰고 우선 쓰라."
퇴근 후 집이다. 맘껏 먹었다. 아랫배가 나오더니 이제는 몸의 앞쪽이 오직 배다. 방방하고 벙벙하다. 오늘 밤은 내장들의 안부를 위해 5종 100개씩 1세트 실내체조를 부지런히 할 참이다. 보던 영화를 마치고 다시 새 영화를 보려고 한다. 아, 잠깐 '나 혼자 산다'에 들러 코드 쿤스트의 말간 웃음을 함께 웃기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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