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쉬는 날이었구나

반응형

 

 

 

 

 

쉬는 날이었구나.

 

 

 

단군할아버지의 역작 1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눈을 떴다. 여느 아침처럼 그대로 알람이 나를 깨웠다. 어서 일어나자고 마음먹는다. 일어나라고 나를 채근하는데 집안에 새 사람의 기운이 있다. 손님이다. 손님, 왜 안 갔을까. 오늘은 월요일인데, 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린다. 조심스러워하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왜 보내지 않았을까, 왜 한양 땅으로 상경하지 않았을까.

 

컴퓨터 앞에 선 현재 시각은 11시를 조금 넘어섰다. 조금 전까지 아침 일을 했다. 가지치기를 하여 어린 묘목으로 길러낸 율마를 본 화분에 옮겨 심었다. 올지다(오지다). 이 가을에 봄처녀 제 오시듯 아직 어린 연둣빛 율마가 자랑하는 색감에 사람이 흐뭇하다. 일주일여 그늘에서 치르는 새 집 적응기를 거쳐야 한다. 새 흙 속에 온전히 뿌리를 곧추세우면 한 컷 사진을 찍어 이곳에 올릴 참이다. 자기 집에 들어서서 편안한 자태로 제 자리잡기에 열중인 녀석들에게서 허술함을 찾을 수 없다. 가늘고 짧지만 야무지다.

 

손님은 아침 일찍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그녀는 늘 와도 있는 듯 마는 듯 잠만 자고 나간다.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나를 참 편하게 한다. 오늘 월요일도 쉬는 날이었다. 조금 전 핸드폰을 통한 뉴스 검색을 통해서야 오늘이 개천절임을 뚜렷이 인식하였다. 이런~. 단군 할아버지가 노하셨겠구나. 단 한 숨이라도, 오늘 아침 사고의 범위 중 적어도  장면쯤은 단군 할아버지를 생각해야 했는데 싶어 죄송스럽다. 순전히 한민족이라는 점에서 올리는 사과이다. 시월 삼일은 개천절. 단군 할아버지가 이 나라를 세우신 날. 국기를 달아야 하는 날인가?

 

국가 주도의 공적인 휴일이 되는 날인 국경일은 역사의 우산을 쓰고 있다. 공식 행사로 지명된 날들이다. 어떤 날은 과거 속에서 끄집어낸 사실이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날은 여러 이유를 들어 날짜에 의미를 붙이고 합의하여 공포된다. 합의래야 당대를 휘어잡고 있는 정치인들의 허술한 놀이인 경우가 많다. 오늘, 개천절은 어떻게 10월 3일이 되었을까. 

 

오늘은 서기 전 2333년이다. 물론 이는 검색하여 알았다. '서기 전'은 서양력의 출발 첫 해인 예수 탄생 전을 말한다. 우리 민족은 총 4355년의 역사를 꾸려왔다. 보통 개천절은 단군 할아버지가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고조선을 세우신 날이라고 알려져 있다. '개천절'이라는 낱말이 지닌 숨은 뜻은 무엇일까. '개천開天'을 열어보면 사실 고조선 건국일과는 다른, 합당한 의미가 연계된다. 하늘의 자손 환웅이 천신 환인의 뜻을 받아 '하늘을 열고(開天)'에 어울리지 않을까. 환웅은 태백산(백두산)에 신시를 열었다. 초등학교 시절 열을 내고 외웠던, 역사 문제에 꼭 출제되던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주제의 세계를 꾸려나가려 이 땅에 오셨다 했다. 기록으로는 서기전 2457년 10월 3일에 개천절이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고조선 성립일에 124일이 더해지겠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4457년이다. 반만년이다. 

 

나는 '홍익인간'을 한자 弘益人間으로 쓰기를 참 좋아했다. '홍'자와 '인'자가 통하여 '익'자와 '간'자를 내놓는다고 여겼다. 천만 만만 순 억지에 불과하지만 네 글자를 다 쓰고 나면 묘하게 조화롭다 싶어 쓰고 또  썼다.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참 곱게도 썼다. 

 

 

단군 할아버지의 역작 2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며칠 전 박장대소를 해야 했던 일이  떠오른다. 어떤 이가 아는 학생에게 물었단다. 10월 3일이 개천절이어서 쉬는 날이라는데 개천절이 무슨 날이야? '개가 천선하는 날'. '개과천선'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또 있다. '개가 천국에 간 날', '개 같은 사람들이 대대손손 천국에 가겠다고 나서는 날', '개가 천국에 가는 날' 등등 등등. '제도권에서 하달된 행사에 요즘 젊은이들은 통 관심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이 전혀 먹히지 않는대'라는 말도 들었다. 그저 쉬는 날이나 연휴로 이름 붙여 알고 있으며 그 정도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하느냐', '그런 내용들 몰라도 제 할 일 잘하고 산다' , '그런 것에까지 관심 갖고 공부하려면 머리 아프다'는 말도 들려왔다. 물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애써 가르치시겠지.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하긴 나도 11시 뉴스 검색으로 확인을 했으니, 이런~

각설하고~

 

단군 할아버지의 역작 3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개천절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각 개인을 있게 하신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공부하듯 우리 민족의 삶이 시작되게 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정도는 예의 상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유난히 '우리, 우리'를 읊으면서도 정작 '우리'를 있게 한 씨앗을 뿌려주신 분을 아는 데에는 소홀하다. 단군 할아버지는 참 서운하실 게다. 

 

우리 꽃 무궁화도 그렇다. 나온 김에 떠올려 보자. 왜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이렇게도 보기 드문 것일까. 춘삼월과 춘사월 거리, 그득그득 벚꽃 잔치를 벌일 때면 참 신기하다. 벚꽃 잔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꽃 무궁화도 한 줌 자라고 꽃 피우게 하여 포토 존이라도 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개천절을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생각해내는 나를 반성하면서 시답잖은 썰을 조금 풀었다. 

 

오후 되면서 날이 싸아 날카로워진다. 사방 열린 문으로 어제와는 다른 바람 소리가 제 존재를 과시한다. 성기고 굵은 올을 날카롭게 들이민다. 햇볕도 어제보다 한 시간은 더 빨리 저쪽 하늘로 숨어든 듯싶다. 이번 연휴는 오지게 먹고 오지게 노동을 했다. 꽤 많은 수의 화분을 비운 것이 잘한 일이다. 가슴 한편 개운해졌다. 베란다 밖으로 새들이 낮게 난다. 비가 내리려는가? 본격적인 가을이 들어서려는 것일까? 내일은 여름옷으로는 안 되겠다 싶다. 

 

영화 넷을 봤다. <디파이언스 : 2차 세계대전 유대인들의 어떤 삶>, <완전한 가족 : 불치병의 어머니, 가족과 함께 의도적인 죽음을 행하다.>, <허 셀프 :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느 여자이자 엄마의 이야기>,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 40대의 장남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다하다. 그의 일기장에 써진 문구는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네 편의 영화 모두 5점 만점에 4.0 이상이다. <완전한 가족>은 아마 세 번째 보는 것이리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