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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아침과 오전의 큰 차이를 인정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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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오전'의 큰 차이를 인정하노라. 

 

 

 

아침 출근길의 하늘 1

 

 

아침 일기가 아닙니다. 오전 일기가 되겠습니다. 와우, '아침 일기'와 '오전 일기'라. 각 글자에 대한 느낌이 너무 다릅니다. 대뇌 님께 전달합니다. 대뇌가 망설인다. '일기'인데, '아침'과 '오전'이 대관절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그 소동이냐. 네 주인이 평소 아침 일기라고 쓰는 시각이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쯤. 오늘 일기 쓰는 지금 시각은 열 시 삼십 분. 그렇담 세 시간의 차이이구나, 그게, 뭐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고작 세 시간일 것을. 어떡해요, 다른 것을요, 두 낱말에 대한 나의 감정이 달리 서는 것을 어쩐다지요. 고작 세 시간이라니요. 대뇌가 다시 한 마디 뒷동산에 망가진 채 맨땅에 박혀있는 쇳덩어리의 고함으로 외친다. 그래, 그럼, 얼마나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보렴. 아침과 오전의 차이를 말이다.

 

 

좋아요, 그럼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지요. 망막 나온다 오버. 네 막에 맺힌 상이 어떻게 다르더냐. 망막이 두 입술 봉우리 끝을 빈틈없이 딱 붙여서는 쭉 내밀더니 내뱉는다. 그대로요, 보이지 않소? 보이는 그대로라고요. 그대로요. '아침 일기' 그리고 '오전 일기'. 나는 내 막에 맺힌 대로 보냈다오. 다음 타자에게 물어보오. 나는 된 대로 산다오. 거짓말하지 않아요. 그대로 보낸 거요. 홍채가 다리 하나씩 까딱까딱, 조심조심 내놓으면서 휘둥그런 두 눈 모양새를 만들어 대꾸한다. 참 내, 나는 망막이 보내온 상에 당시 내게 쏟아지는 빛의 양을 더했을 뿐입니다. 내게 무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나의 운명은 저 광대한 하늘 사막의 태양께서 베푸시는 대로 따를 수밖에요. 다음 타자 나오시오.

 

 

출근길 아침 2

 

 

나, 수정체라오. 내게는 섬모체라는 행성이 따라붙어 있지요. 섬모체 거느리기도 벅찬데 왜 이리 말들이 많은지요. 조금 전에 섬모체가 그러더라고요. 수정체여, 글쎄 말이오, 당신이 지닌 성스러운 볼록렌즈 두께를 어찌 결정해야 할까요. 당신에게 전달해야 할 '아침'이라는 것과 '오전'이라는 것의 의미를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내 예리한 털들이 그만 대뇌 판단 이전에 상황을 파악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말았소. 이를 어찌한답니까. '아침'이며 '오전'은 시간 차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워낙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미리 깨달아서요. 하여, 어쩔 수 없지 않소? 정의의 사도인 나는 저 앞 망막의 순수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상에 알맞게 당신이 처해야 할 렌즈의 두께를 조절하였다오. '된 대로'하는 것, 이게 바로 정의이지 않겠소? 불경도 때로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다는 정의를 재발굴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기도 하겠고요.

 

 

그래, 섬모, 섬모, 섬모, 섬모, 섬모여. 나는 네 이름을 읊을 때면 사실 불안함이 앞선단다. 우리 사이 항상 유지해야 할 거리를 자칫 망각하게 하는 힘이 네게 있어 말이다. 네 이름자 '섬모'를 발음할 때마다 어쩐지 내 인연의 한 자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 같은, 음흉함이 내 뇌세포들 안에서 도사리곤 하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 어쨌든 네 뜻 그대로 따라 나 역시 '아침'에 맞게, '오전'에 맞게 초점을 조절하여 올릴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그대여, 내 사랑이여. 사실을 고백하는 네 언행 돋보인다. 이 아름다움이 형상을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어여쁜 내 사랑이여.

 

 

오호, 애들아. 섬모와 수정체의 대화가 참 가상하구나. 자기네들에게 온 그대로를 보낸다고 하지 않니? 정의를 보낸다잖아. 정의라니. 요즘 세상에 얼마나 듣기 힘든 말이니. 어찌 이를 뒤틀 수 있겠니. 우리도 당연히 따라야 할 태세이고 태세란 '자세'가 근본이야. '자세'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중함이며 진중함이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일관되는 것. 우리의 자세. 전달되어 온 상황이 어떻더라도 굳건하게 통제와 자제를 앞세울 수 있는 우리. 그것이 우리의 참다운 모습이거늘. 사실 저, 첫 타자 망막에서부터 정의는 이미 타오르고 있지 않았소? 자, 우리, 우리로 합해진 힘을 모아 시각신경에서 단단하게 머뭅시다요. 강도를 높여 튼튼하게 뭉치는 거요. 전달의 힘이 넘치도록, 우리의 뜻 단 한 가닥도 흐트러짐 없이 대뇌 님께 갈 수 있게 말이요.

 

 

칸나,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저, 시각신경이라고 하옵니다. 지금까지 우리 궤도 곳곳에 자리 잡은 각 기관의 둔중한 자기 책임 표방이었습니다. 어떠하신지요. 우리에게서 잘못이 발견되나요? 아니지요? 그리고 말이오, 가만 생각해보니, 당신 대뇌면 대뇌다워야지 어쩌자고 소뇌 변두리 충치보다 더 못한지요. '아침'과 '오전'이 별것 아니라니,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말이오. 하루가 십 년 맞잡이라 했소. 그렇다면 하루 이십사 시간 중 아침에서 오전까지를 세 시간이라고 쳐봅시다. 이십사분의 삼은 삼 팔에 이십사, 팔분의 1이오. 팔분의 1이 적은 양입니까. 피자 1을 8 등분한 것의 한 조각이오. 다이어트를 하시는 우리 주인아주머니, 주인아저씨의 각 한 끼 식사량입니다. 한 끼 식사의 양에 맞는 시간의 양은 하루 삼시 세끼 중 하나이니 삼 분의 일이고요. 삼 분의 일이면 엄청난 양입니다. 전체를 세 조각낸 것의 한 칸입니다.

 

 

가다, 어느 순간을 향해서~

 

 

자, 대뇌 어르신, 정리해봅시다요. 전체 1중 삼분의 1의 시간을 생각해보오. '아침'과 '오전'이 거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이리 감이 다르냐고 윽박지르는 처사는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는 팽이팸팽이 놈팽이의 언사이며 언행입니다. 그렇지 아니하오? 하루 죽을 줄을 줄은 모르고 열흘 살 줄만 아는 거, 오만방자함의 본보기이지 않소이까? 반성하시오, 반성하시고 어서 본 괘도로 복귀하시오. 명령 불복종 등으로 우리를 하대하지 마시오. '상명하복'의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진즉. 원숭이의 사돈네 팔촌쯤 되는 원시인들이 살던 때입니다. 그리고 말이오. 가는 만큼 온다지 않소? 당신이 우리에게 한 만큼 우리도 당신을 믿고 따를지니, 명심하시오. 진리입니다.

 

 

 그래, 대뇌 말한다. 그대, 시각신경이여, 알겠도다. 각 글씨의 모양이 다른 것을 어찌 비슷할 수 있다고 하겠느냐. 내 소견이 좁쌀스럽다. 망막 이하 너의 동료들과 네가 두 낱말을 각각 포착하여 느껴지는 감이 크게 다르다는 것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 가만 소리를 내어 읽어보겠노라. 아침 일기. 오전 일기. 아하, 정말로 판이하구나. 다름의 강도가 굉장하구나. 피자 여덟 조각 한 판의 한 조각이 하루 이십사 시간의 삼 분의 일에 해당함을 충분히 인정하노라. . . . . 그리고 오. . . . 이번에는 각 글자를 한 자 한 자 온전히 숨 쉬어가기를 하면서 또박또박 다시 읽어보노라. 그래, 그렇구나. 글자라는 것도 각 글자 나름의 힘이 있구나. 언어, 언어라는 것의 묘미가 이런 것이로구나.

 

제목만 써두고 아침 일기를 멈췄다. 아홉 시 이전 생전 처음 해 보는(나 말고) 요란스러운 작업이 있었다. 이 작업 말고도 아침 일찍부터 여러 일이 있었다. 이것저것, 이일 저일을 끝내고서야 시간이 좀 생겼다. '아침 일기'와 '오전 일기'에서 느껴지는 크나큰 차이의 어감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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