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렐라 치즈에게 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부엌이 요란하다. 오쿠를 이용한 식혜를 만들겠다고 했다. 손님으로 와서 대접받고 가야 할 사람이 고장이 난 나의 소화기간 복구에 도움이 된다면서 식혜를 앉혀놓고 가겠다고 나섰다. 내 기상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이것을 내가 해놓고 가야지, 안 되겠다'를 부르짖는다. 엿기름 내놓아라, 밥 안쳐라, 전기 폿트에 물 끓여라 등등 명령 하달에 꼼짝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 아침에 뭘 하겠느냐 어서 한양 땅으로 상경하시라, 출근을 해야 한다, 내가 알아서 만들어 먹을 테니 관두라고 투덜거리는 것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오늘 해 놓고 가지 않으면 식혜 가루는 쓰레기통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고 툴툴거렸다. 기어코 해놓고 가야 되겠다는 고집에는 나를 향한 한심스러움의 논조가 강하게 배어 있었다.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추기로 했다.
부지런히 걸었다. 되똥되똥 나의 오리걸음을 내 영리한 뇌가 곧바로 인식하였다. 이어 정상 유지는 꼭 하겠다는 바람을 두 다리에 불어넣어 걷기도 했다. 오리걸음 반, 사람 걸음 반의 바쁜 출근길이었다. 흔들렸다가 곧게 몇 걸음. 몸 기우는가 싶더니 몇 발자국 꿋꿋하게! 열심히 걸어서 7시 30분 안에는 일터 입성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전진, 또 전진하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평소 출근길 걸음의 보폭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불룩하게 형성된 반 원의 형상화에 기여한 복부 중앙 포물선에 꼿꼿한 힘이 강직하였다. 불룩한 배 최정상에 모아진 힘이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곳 정상을 흐지부지 무마시키는 힘을 도무지 생성시킬 수 없었다. 이미 굳은살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몸은 진심이다. 연휴 동안 500그램 넘게 불었다. 새로 비집고 들어가 고정석을 차지한 살덩이들의 무게이다. 한양 땅 백화점 제작산 주스 네 잔. 식초 한 방울 떨어뜨리고 생 고추냉이를 듬뿍 쏟은 고추냉이 간장에 삼치회 1킬로그램의 3분의 2를 취하였다. 어쩌다가 한 번씩 발휘하는 두꺼운 돼지 앞다리살 김치찌개는 내가 요리하였다. 되게 맛있었다. 커다란 단감이 열 개 넘게 내 뱃속에 입성하였다. 사과 한 개. 양파 한 개에 쪽파 잘게 썰어 올리브유에 살살 볶고 구운 떡국떡 스무여 개를 넓게 펼쳐 합친 것에 들이부은 모차렐라 치즈 무덤도 냠냠. 낙지 두 마리를 밀가루에 빡빡 밀어 씻고 센 불에 살짝 볶은 것도 나 혼자서 먹었다. 막걸리 반 병. 그리고 아예 입에 대서는 안 될 종목인 빵류와 쿠키류까지 골고루.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밤까지 3박 4일을 엄청나게 먹었다.
역류성 식도염 증상의 최초 발현 후 처음으로 저지른 과식 잔치였다. 아하, 식후 요플레 반 컵 정도에 꿀 한 스푼을 가미한 후 쏟아부은 견과류도 내 먹이였구나. 정말이지 오지게 먹었다. 영양학의 입장에서 따진다면 단 한 가지의 영양분도 허술함이 없었다. 야무지고 알차게 구성하고 섭취하였다. 마냥 흐뭇하여 볼록 솟은 배를 쓰다듬곤 하였다.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그 기분에 걸맞게 기분을 맞추려는지 받아들이는 내장들과 각 소화기관들도 얌전하였다. 별 탈 없이 음식물들을 접수하였다.
베란다 화단에서 벌인 노동이 입을 움직이게 했을까. 방정맞게 움직이는 혀를 인내해낸 힘은 무엇이었을까. 내장의 위험 상태 순시는 왜 생략되었을까. 손님 겸 내 식생활 보호 자격자로 내려온 듯한 바로 손위, 손 큰 언니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을까. 이 정도의 음식 섭취라면 분명 구토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나야 하는데 괜찮다. 습관화된 불면으로 두세 시간 눈 뜨고서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정도였지 수면도 새벽녘에 든 잠이 괜찮았다. 물론 영화 다섯 편(어제 일기를 블로그에 올린 후 한 편을 더 봐서 다섯 편이다.)을 보면서 실내 운동 5종 100개씩 1세트도 함께 했다. 최대한 움직이려고 애썼던 노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가씨적 몸무게로 복귀하기가 목표이다. 역류성 증상 첫 발현 이후 세운 계획이었다. 그 병증의 진행 절차 중 초기이면서도 기세 등등한 흉성(凶星 불길한 별)으로 내게 온 징조가 너무 무서웠다. 놀라고 또 놀랐다. 하룻밤 새, 밤새, 7에서 8 킬로그램의 무게를 내 몸뚱이에서 삭제해갔다. 나의 음식 탐욕을 경계시키고 나무라고 반성했다. 제아무리 먹는 것이 좋다 한들 나의 음식 욕심은 짐승이나 할 짓이라고 자학하기까지 하였다. 이미 빠진 살을 고려하니 1, 2 킬로그램만 더 제거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끔찍한 밤의 공포가 희미해지고 문드러졌다. 지난가을이었다. 퇴근 후의 저녁 식사가 올곧게 진행하던 다이어트에 가새표를 덧씌웠다.
내 입을 사로잡은 것은 모차렐라 치즈였다. 매일 부지런히 걸음 하여 퇴근한 어느 날이었다. 양파와 당근 등의 야채전에 모차렐라를 한 국자 넘게 들이부었다. 붉은 색소만 중앙에 꽂으면 화산의 마그마 폭발과 비슷했다. 곱디 고운 선을 그으면서 완만하면서도 은색 찬란한 치즈 동산이 만들어졌다. 드러누워 다음 날 아침 일출의 싱싱함을 맛보고 싶어졌다. 모차렐라 한 국자, 드높이 솟아오르다가 스스스 미끄럼틀을 타는 모양새가 그날 내게 최고의 위안이었다. 내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곡 피아노 협주곡 21번 혹은 23번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겠다는 생각까지 했던가. 혓바닥에는 황홀함을 곱씹은 미각세포가 사방으로 어여쁜 춤사위를 내뿜고 있었다. 황홀 극치였다.
치즈 뭉침을 포크 회전의 반복으로 겹 동그라미를 만들 때의 포만감은 내 생 한쪽에 내팽개쳐진 '만족'이라는 낱말을 건져냈다. 입 크게 벌려 넣고 혀에 닿는 순간의 미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만족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척도를 지닌다. 만족은 그 척도들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선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부딪히는 내용에 따라 고만고만 그대로 느끼면 그만이다. 어제의 것과 오늘의 것을 크게 구분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 복을 입은 때와 장소와 닥친 환경만 다를 뿐이다. 만족은 만족일 뿐이다. 눈 떠 하루 낮을 살고 난 후 남은 텅 빈 가슴의 쓸쓸한 공간을 달래주기에 충분하였다. 헛된 일들로 하루를 다 채우지 않았나 싶어 뒤엉켜진 마음과 그리하여 남은 공허의 머리를 쓰담쓰담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저녁 식사 때마다 치즈는 필요충분 요소가 되어 내 식탁에 응당 올랐다. 올렸다. 양파와 당근 등 여러 야채를 볶으면서부터, 아니 올리브유 한 숟갈을 프라이 팬에 부으면서부터 나는 이미 내 생의 충만을 챙길 수 있었다. 다만 매일 실내 온몸 운동은 꼭 곁들였다. 오감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을 하나 더 추가하여 육감을 지닌 인간인 듯싶어졌다. 그에 따라 넓이와 깊이의 범위가 증축되고 행복의 감각은 곧게 습관화되었다. 지난 9월 말까지라 치자. 아니구나. 9월 중순쯤일까. 밀려오는 포만감은 급기야 지독한 먹순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복부 충만이 징그러워졌다. 더는 아니다 싶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 일 닥치겠다 싶어졌다. 냉동실에 들어앉힌 치즈 봉지를 쓰레기로 해치웠다. 지난해 가을 이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만, 그만, 그만을 외치고 또 외쳤다. 모차렐라여 안녕. 치즈여 이제 그만.
열흘은 지났을까. 손님이 오신다기에 대형 식자재마트에 들른 것이 지난주 금요일 저녁이다. 손님은 마당발이어서, 늘 혼자를 고집하는 나하고는 아주 달라서, 내려오자마자 사람 만나느라 바빴다. 손님맞이용 찬거리로 준비해 온 것들 사이에 모차렐라 봉지가 끼어 있었다. 그 밤, 금요일 밤 야채전을 다시 지졌다. 그 위에 치즈 한 국자를 쏟아부었다. 실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자, 금요일이지 않나? 내일 늦잠을 고정시키고 오늘 밤 잘 먹고 운동을 잘하자.
오늘 아침 나의 몸이 우주에 부리는 비언어적 요소(? 상상에 맡기노니~)에 진심 어린 사과의 문장을 날렸다. '이런, 줏대 없는, 주체성 제로의 인간인 나는 반성하노니, 나, 그야말로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극히 인간입니다. 인간이기에, 용서하소서. 다시 한번 보다 사려 깊은 생을 살아내고자 최선을 다해볼 참입니다. 부디~' 하여, 오늘 저녁 식사는 좀 신중하였던가, 조금은 간단했던가? 오늘 저녁 식사의 마지막 메뉴는 견과류 6종을 들이부은 가정식 요플레 다음이었다. 꿀 한 수저를 첨가한 식혜였다.
그 많은 음식들을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고서 마구마구 먹었구나. 내일은 식혜를 찍어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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