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무겁다. 아침. 아니 새벽. 동이 다 트지 않았으니 새벽이겠거니 하자. 길을 나서기 전이다. 출근길. '무게'라는 낱말이 지닌 가치를 새삼 실감한다. 모두 내려앉았다. 기압도, 대기의 기운도, 하늘의 가락도, 그리고 사람도.
인터넷상의 일기예보로 확인한 기호는 가상이다. 날씨 관련 이모티콘은 핸드폰 안에 재우고 베란다 밖 대기가 내뿜어 만드는 색깔을 확인한다. 진회색이다. 현실이다. 이 새벽 일상 속에 회색 그림들이 찾아든다. 곳곳이 잿빛이다. 겨울 색깔이다. 먹구름 가득, 어둠 고인 방에 내가 들어가 득도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간절하다. 나는 늘 기도한다. 해묵은 성당 한편 일인용 막사처럼 세워진 긴 직사각 안에 계신 신부님을 향해 고해성사를 들이는 기분이다.
의상 코디에 지나치게 게으른 나는 매월 초 다달이, 계절 색을 고려한 의상을 확정한다. 몇 줄줄이 상하의를 맞춰 안방 옷걸이 대에 걸어놓는다. 며칠, 간격을 정하여 입고 다닌다. 왕눈이처럼 나의 큰 눈이 무서운지 사람들은 내 모든 행위에 그만 눈을 감는다. 저 여자는 당연히 저렇게 살아가야 할 운명이야. 아마 그들 안에 나는 그렇게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나름 굳건한 삶을 사는 내가 오늘은 지난주 스타일의 의상이 걱정된다.
여전히 11월이어서 내놓은 옷은 지난주 그대로인데 맹추위가 오리라는 소식이 어젯밤 뉴스로 확인되었다. 그래도 오늘과 내일의 기온을 표시하는 숫자는 초겨울치고는 온순한 편이다. 모레, 수요일부터 그려지는 꺾은선 그래프에는 최저점과 죄 고점 기온의 위치가 저 아래에 머물러 있다. 기압들의 다툼이리라. 고기압이나 저기압의 중심을 뜻하는 기압 중심을 찾기 위해 눈동자의 움직임을 한참 동안 아래로, 아래로 내리꽂는다.
오늘 오후부터 여름 장맛비처럼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단다. 기온은 곤두박질을 치는 힘을 즐겁게 맞이할 셈이란다. 그래, 추락하는 것에 붙는 여흥이 더 강력하다. 지하 세계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지상을 조정하여 부리는 세력, 지진처럼 들끓는 어떤 미지의 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어떤 힘이 눈에 보인다. 인간계를 조정하는 어떤 힘. 인간계의 지하라고 하면 무엇일까. 금지 혹은 저주의 씨앗을 부리에 물고 날지 못하는 새의 신세로 지상을 노려보고 있지 않을까.
육상에 거처하는, 속없는 사람들의 뱃속 창자는, 자꾸 음식 대령을 외치면서 배부름의 나른함을 즐길 때 저 아랫사람 세상을 노려보고 있는 그 무엇은 꿍한 채 검은 음모라도 꾸며놓고 대기하고 있지 않을까. 가끔 까탈을 부려 걷는 다리에 힘을 빼게 하고는, 달리는 기운에 먹구름을 들이부어 주저앉게도 하겠지. 나를 노려보는 무거운 존재를 퇴치하자고 맘먹는다. 어서 길을 걷자. 토요일에 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심스러운 목소리로 하시던 말씀,
"자기 건강은 자기가 지키는 법이여."
의사 선생님은 우리 집 큰 오빠가 해야 할 말씀을 대신하듯 자상하시다.
이제 일출 시간이 한참 늦어질 때이다. 앞뒤 건물에 불이 켜진 곳이 몇 되지 않는다. 낮은 점차 더 줄어드리라. 어두움이 인간계의 두목으로 자리 잡으리라. 서너 달을. 이 시각에 아침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밤새 사람의 몸뚱이들은 지하 난장의 지휘 아래 새 세상을 다녀왔을 테니까. 어지러운 밤을 강하게 지새운 사람은 아침 시작 시각이 용케 빠르다. 어서 일어나 어둠을 뚫고 나아가면 나를 가만, 달래주는 어떤 힘이 꿈틀거려주지 않을까. 퇴각시켜야 할 존재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니 나를 다독여줄 힘이 그립다. 이래저래 여전히 무거운 아침이다. 길 나서는 딸,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함을 이미 눈치채시고는 그저 고요한 가운데, 먼발치에서 지켜보시는 데에 머물러 계시던 내 어미의 두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녀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 모아 둔 눈물을 내리 쏟았으리라.
부리나케 햇볕 속에서 온몸 마사지를 받고 있는 겨울 외투 두 번째의 것을 데려왔다. 뒷방 발코니 빨랫대에서 약한 일광욕을 즐기던 중이었다. 후드 코트이다. 걸쳐 입었다. 치마도 지난주의 것에 두툼함의 무게를 더한 두꺼운 천 캉캉 치마를 입었다. 천 자체가 지닌 반짝이는 빛이 있어 무거움의 비중을 조금 낮춰준다. 걷는 이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코트 사이로 내다보이는 치마 빛깔이 바라보는 이의 눈에는 제법 경쾌해 보이리라. 다행이다.
언뜻 밖을 내다보니 좍좍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름 장맛비를 닮은 모양새였다. 몇 시인가. 퇴근 시각에 다다라있었다. 겨울비인데도 온 힘을 다하여 한껏 큰 기운 담아 자기 속내를 내리 퍼부었다. 나는 질질 질질 하얀 운동화에 흙탕물 튀길까 봐 겁을 내며 살살 살살 세상에 내려앉으려는 겨울 위를 걸었다.
축구 경기를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내 여리디 여린 심장이 90분 여 긴 시간을 견뎌낼까 싶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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