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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당연지사. 시작이 중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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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사. 시작이 중요하더라.

 

 

퇴근길 지는 노을 1

 

 

출근하여 포트에 물 끓이기를 시작하고(시럽 커피에 눈 주지 않으려고 일터 카페를 멀리하고 있다.) 내 일터 공간을 열어 컴퓨터를 열자마자 이곳에 들어왔다. 어제 오후 아침 일기를 써 놓지 않아 피로에 쌓인 오후가 짜증을 부리더라. 마음 복잡해지더라. 순간 아침 일기 쓰기를 그만둬야 하지 않나 싶더라. 주르르 조금 남아있던 힘마저 부스스스 흩어지려 하더라. 다짐의 굳은 세기가 스르르 풀어지려 들더라. 그만둘까. 망설이다가 쭈글이가 된 힘의 결을 쭉 펴서 늦은 일기를 쓴다는 것이 힘들더라.

 

 

한양 성이 이렇게나 드높구나. 

'참, 많이도 보냈구나.'

톡 하나가 왔다. 한양 땅, 아니 경기에 사는, 그것도 내 좋아하는 도서관이 있는, 신흥 부자도시라고 하는 판교에 사는, 물론 사는 이에 의하면 신흥 부자촌과는 조금 떨어진, 판교 한쪽에 사는 언니에게 단감과 대봉감을 보냈더니 보내온 메시지이다. 택배비까지 5만 원이라는데 이른바 수도권이라는 서울 경기권에서는 십만 아니 이십만 원어치는 될 것이라 한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간, 또 한 언니의 말에 이 일은 진행되었다.

 

 

이렇게나 무서운 물가에도 불구하고 '인 서울'을 갈망해야 하는 우리네 사람들이 참 안쓰럽다. 어제, 지인의 카카오톡을 옮기면 또 이렇다.

'저, 수시로 대학 합격했습니다. 인 서울!'

수도권을 사는 착한 언니가 덧붙여 보내온 쪽지는 이렇다. 

'너도 먹고 싶은 것, 너 컨디션에 잘 맞는 것 찾아서 잘 챙겨 먹을 것을 당부, 당부한다.'

내가 사는 불면의 밤을 잘 아는 이는 어느 스님의 영상이 잠드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며 유튜브 주소까지 함께 보내왔다. 곳곳의 사람들이 나, 이 미물의 건강을 걱정해준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는 음식량 자체를 좀 줄였다. 아무리 간헐적 단식이라지만 점심과 저녁 식사량이 너무 많아 몸이 부대끼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퇴근길 지는 노을 2

 

 

오호, 무섭다. 날이 무섭더라. 하룻밤 새 날강도가 되었더라. 날이 흑심을 품고 덤비더라. 날이 독기를 품었더라. 내복을 입었다. 일단 길 위를 열심히 걸음하다 보니 그래도 예상과는 조금 다르더라. 용감무쌍하게 걷자고 마음먹으니 거침없이 가속화된 속도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오늘, 가벼운 발걸음은 일어나자마자 측정한 혈압의 수치 때문이기도 하리라.

 

 

지난 토요일 병원에서 쟀던 혈압이 150에 얼마였다. 아래 수치는 잊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위쪽 숫자에만 매달린다. 따독따독. 가련한 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한편 안쓰러운 나. 병원에서 잰 혈압이 무려 150이었다. 2년 전 서울 병원에서 잴 때는 180이었다. 놀라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이후 구매한 혈압계로 확인한 집에서의 수치는 110에서 130 안팎을 오갔다. 병원에서는 '화이트 증후군'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125이다. 125라는 숫자가 나의 아침 발걸음을 상큼하게 했다. 

 

 

오늘도 아침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점심 양도 좀 자제하리라. 내가 이제야 철이 드는 듯싶다. 아하, 저녁에는 언니가 보내준 유튜브 주소를 찾아 명상을 좀 하고. 통잠을 기대해본다. 아침 기분이 제법 좋아진 것을 계기로 하루를 힘차게 살기로 한다. 온 세상을 환히 밝힌 태양빛이 낮아진 기온의 강도를 체감시킨다.

 

 

겨울 산이 울어야 눈이 올 텐데 일터에 다 와보니 서서히 맑은 햇살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은 아직인가 보다. 눈 좀 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속 뒤집히더라도 뜨끈뜨끈한 호빵을 함께 먹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강추위에도 가는 목 길게 내뿜어 아침 하늘 사진은 찍었다. 목을 쭉, 하늘로 솟구치게 하다 보니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떠올랐다. 그의 여자 '잔느 에뷔테른느'의 멀겋게 하얄 듯싶은 가늘고 긴 목과 함께. 내 가녀린 목도 어느 유명화가 앞에 서면 좋은 모델이 될 텐데 했다가 '풋풋'하고 하늘을 향해 심심한 웃음을 몇 터뜨렸다. 며칠 전 읽었던 책 속의 '모딜리아니'가 친구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이 떠오른다.

"나는 내 인생이 즐겁게 흘러가는 풍요로운 강물이기를 원해. 지금 나 자신으로부터 끝없는 창조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어.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쳐 올라."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 그는 죽음을 맞다.'

이것은 또 안타까운 불구덩이의 사랑으로 삶을 마감한 그의 묘비명이다.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살한 잔느와 함께 매장된 그의 그녀 묘비는 또 이렇다.

'오직 모딜리아니에게 사랑은 바친 여자.'

 

 

자, 모두 잠재워두고. 그의 창작욕만 들추련다. 말하자면 나도 모딜리아니 못지않게 작품 창작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저 높은 하늘, 그  끝을 알 수 없을지언정, 하늘 향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의욕이 모딜리아니 못지않은데. 사랑 찬가를 그림과 조소로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딜리아니의 힘 빌어 기원하노니, 

'오, 조물주여, 나의 진정한 창작 욕구를 부디 곱게 살펴주시기를!'

 

 

나는 모딜리아니처럼 길게 사랑의 목을 만들고 그리기를 초월하여, 더 넓고 크고 깊숙하게, 구상과 추상을 모두 형상화하여 그곳에 내 이름의 한 글자인 '아름다울 미(美)'의 참 '미학(美學)'을 오롯이 창작하려 하노니. 거뜬히 해낼 수 있으니, 오, 나의 창작욕을 불쌍히, 가엽게 여기셔서라도 부디 끝내 완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그와 그의 그녀처럼 불같은 사랑과는 거리가 먼 여자, 나는 그 사랑타령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그림으로 내 삶이 평가되는 생을 꿈꾼다, 가끔. 아주 가끔. 그 이면에는 천운을 타고나지 못한 나의 창작력은 이미 무의미하다 싶은 슬픈 포기가 늘 뒤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슬픈 삶이다. 자, 그것은 그렇다 치고. 

 

 

무슨 일일까, 분명 두셋 찍었는데 갤러리에는 아침 사진이 저장되지 않았다. 이런~. 저녁 달을 보면서 퇴근했다.

 

 

아침 풍경 사진 찍기로 모딜리아니까지 초대한 오늘은 아침 일기가 풍성해졌다. 일단 문을 열어 글을 시작하니 하루가 미리 든든하다. 하루 가득 무엇으로든지 나의 생이 충만하리라. 무엇인가로 풍성해지리라. 나와 내 주변이 한껏 범위를 넓혀 행복 그득하게 펼치리라. 일터 정식 업무가 시작되기 전 거의 온전한 일기를 쓸 수 있는 아침은 참 드물어서 오늘 아침이 새롭고 올차다. 당연지사. 세상만사 시작이 중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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