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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무얼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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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고 사나.

 

 

 

 

원두커피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새벽 네 시. 눈을 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을 때 품을 수 있었던 수면 가능 시간에 대한 풍요의 기운이 얼마나 든든한지. 잠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아직 기상 시간이 제법 남아있는 시각이면 어떤 여유와 포만감이 배를 따뜻하게 한다. 밤새 가라앉아 차분해진 복부 위에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얹고 다시 잠들 수 있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데 오늘 새벽에는 네 시에 눈을 떠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가물가물하다. 무엇을 하다가 다시 잠들었는가. 무엇이었지? 무엇이었더라. 핸드폰으로 무슨 내용인가를 읽었는데. 유튜브는 유튜브였는데. '최준영 박사님' 것은 일요일이어야 한다. '삼 프로 TV'의 아침 방송 시작 시각도 아직 아니었다. '일당백'을 들었다면 기억이 뚜렷할 것이다. 웃음에 젖었던 기억이 없으니 '매불쇼'도 아니었다. '시와 소설' 듣기는 더욱 아니다. 새날에 들어선 나의 영육이 맑지 못하다.

 

 

아하, 그래, 그래. NFT 관련 내용의 유튜브 강의를 들었구나. 그리고 그전에 'TV 조선'에서 방영했다는 드라마 <UNClE> 압축판을 시청했다. 아니 시청하다가는 잠의 여신이 다시 돌아와 그대로 켠 채 줄거리만 이불 위에서 울렸다. 다시 눈을 떠서 끝 몇 장면을 소리와 그림으로 다시 봤구나. 8회까지의 내용이라는데 2시간여 되는 것을 2배속으로 들었다. 왜 들었을까. 이런. 더군다나 그곳에서 방송했다는 것을. 하여 떠오르는 내용도 나는 이내 지운다. 안 들어도 될 것을 들었구나. 

 

 

다시 눈을 떴다. 새날에 내가 도착해 있음을 깨닫는다. 평일 기상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밖이 벌써 밝다. 평일이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각이다. 입술 주위, 몇 모여든 내 머리카락이 간지럽다. 미친 여자가 제 얼굴 위로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제 것인 줄도 모른 채 부여잡고 붙잡아 뜯어내려고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섬에서, 장대비 내리던 날 봤던 모습이다. 긴 머리카락 뭉텅이로 모아 안고 양손 엄지와 검지를 쌍으로 들고 가위를 찾던 어떤 여자. 지금 내 입술 주변의 이 머리카락은 내 것인가 유령 것인가. 깊이를 물어 쑥쑥 짚고 들어가니 손가락 끝에 두피가 부딪힌다. 내 것이구나. 머리카락 몇을 더 모아 코에 가져다가 대어 본다. 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에서 눅눅한 누룩 냄새와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분명 어제는 반신욕을 하지 않았고 머리를 감지 않았다. 가끔, 아주 가끔 평일인지 주말 혹은 휴일이 아닌지 종잡을 수 없는 뇌의 상태일 때 내가 진단하는 방법이다. 분명 오늘은 휴일이다. 그래, 토요일이로구나. 

 

 

느긋하게 몸을 움직였다. 여덟 시 삼십 분쯤에 몸을 세웠다. 오늘도 내 가느다란 육신이 수직으로 설 수 있음을 감사한다. 밖을 내다봤다. 폰으로는 아직 눈이 내리는 곳이 있으니 몸조심하라는 안내 문구가 와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이미 한낮 태양빛 여세에 들어서 있다. 안에서 바라본 밖의 태양은 항상 당당하다. 나를 당할 자 어디 있으면 나와보라는 명령어를 지상에 반짝반짝 뿌리고 있다. 

 

 

베란다에 들어서서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모두 열었다. 화초 '아가베 아테누아타' 셋에게서 방한복을 벗겨냈다. 세탁소용 비닐 옷을 입혀뒀다. 숨 좀 쉬렴. 꿋꿋하게 이 겨울을 잘 견뎌내렴. 새 봄이 되면 분갈이는 아니더라도 복토를 꼭 해줌세. 며칠 한겨울 북극 한파를 이겨내서인지 잎이 더 굵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방한복 안이었지만 말이다. 쑥쑥 자라서 그럴싸한 화이트 분에 담기기를. 

 

 

정전기 포 청소기로 바닥 먼지들을 담아냈다. 느긋해야 한다, 오늘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전야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정전기 포 한 장이 모두 먼지로 뒤덮이는 것은 거실도 모두 돌지 않았을 때였다.

"더러운 년, 어찌 이리도 더럽게 사냐."

누구의 욕이겠는가. 내가 내게 퍼붓는 소리이다.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제 읽은 글이 생각난다. 부자는 집안 상태는 우선 깨끗하다고. 글렀네, 글렀어. 이렇게나 더러워서 무슨 한바탕 부자 되기를 꿈꾸느냐. (솔직하게 말해서 한번 부자가 돼 보고는 싶다. 몽땅 벌어서 이곳저곳으로 나누고 싶다. 맹세컨대 나는 나눌 것이다. 누구, 나 부자 되게만 해달라. 그대들에게 나눌 것이니. ㅋㅋㅋㅋㅋㅋ.)

 

 

청소기를 끌고 실내 한 바퀴를 돌았나 싶을 때, 즉 집안 바닥이 바닥답게 광채를 조금 띄게 되나 싶을 때 한양 손위 언니의 전화다. 그녀는 혼자인지라 늘 내게 전화를 한다. 방안퉁수인 나의 사회성 향상을 위해서일 것이다. 구구절절 여기저기서 듣고 읽고 전해온 소식들을 내게 전달한다. 사통팔달 넓은 발재간에 의해 알아낸 한양 및 수도권 소식을 전해준다. 널찍하게 범위를 잡아 각종 잡스러운 문장들을 내게 건넨다. 어쩌면 세상사 내가 알고 있는 구수한 잡내들은 모두 그녀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다. 특히 최근 소식들은 모두 그녀에게서 들은 것들일 것이다. 일터에서도 나는 거의 일상사를 소통하지 않는다. 내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어제 일기에 소개한 말없는 남자, 조용한 남자가 주도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굳이 이러저러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조용히 제 할 일들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그 분위기를 즐긴다.

 

 

오늘 노을 1

 

 

어젯밤 저녁으로 먹은 음식의 양이 적었기 때문일까. 밤새 배 속 내장들도 고요했다. 아침 눈을 뜨면서 느껴본 입 안의 감도 예전, 역류성 식도염의 발병 그 이전과 비슷하다. 식도의 시작 부분에서도 별 이상 증세나 불협화음이 감지되지 않는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커피를 찾는다. 아닌데, 이것은 또 아닌데. 아니다. 아니 되느니라. 그만둬라. 제발 그만둬라. 디카페인 커피마저 좋지 않다는 강의를 들은 것이 며칠이니 되었느냐. 아니 된다. 아니 되느니라. 커피 마시기를 멈추라.

 

 

디카페인 커피도 결국 커피라며 먹지 말라는 식의 으름장을 환우 카페에서 읽었다. 카페인 성분을 빼내는 공정 과정에서 무엇인가 우리 몸과 궁합이 맞지 않은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정이 뚝 떨어졌다. 그래, 그만 마시자. 세 살 버릇은 아니지만 습관화된 것을 물리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음식 골라 먹기에서 제대로 확인한다. 특히 커피 마시기에서 더욱 그렇다. 힘들다. 결국 디카페인 원두 한 봉을 컵에 털어놓고는 물만 끓이고 멈췄다. 점심이라도 먹고 나서 마시자. 

 

 

사실 몇 달 전 디카페인 커피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도 괜찮다는 것을 어느 의사 선생님의 강의에서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열어온 것이 나의 생활 방식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야 계속된 대학원 공부도 커피가 있어 수업이 가능했다. 굉장한 커피 덕후도 아니고 웅장한 클래식 방식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의자에 앉아 잠 쫓으면서 공부를 좀 하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습관이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제대로 된 힘은 커피가 있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오늘 노을 2

 

 

 

커피. 고마운 차였다. 어릴 적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큰 오라버니가 겨울 여행이라며 함게 왔던 재벌 2세가 가져온 액체 커피부터 나는 거리낌없이 커피를 대했다. 쓰디 쓴 검은 죽을 한 숟가락 벌쭉 떠서 먹었던 기억부터 나의 커피 역사는 시작된다. 먹을거리 다섯만 챙겨 길을 떠나야 한다면 단연코 그 목록에 커피가 위치할 것이다. 아,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었던 디카페인도 문제라면. 나는 도대체 무얼 먹고 사나.

 

 

나의 시인 다섯 사람 안에 드는 윤동주 시인의 시 '무얼 먹고 사나'가 떠오른다. 죄송하다. 가끔 내 음식 섭취 습관을 돌이켜 보면 내장 각 기관에게 짐이 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마구 먹어댄 것이 내 질병의 시작이다. 시인 윤동주 님이 이런 나를 보면 어찌 생각하실까. 참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이 풍족한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며 한탄할 것이다. 나의 무궁무진했던 식탐을 반성한다. 

 

 

무얼 먹고 사나

                                 윤동주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1936년)

* 윤동주의 표기 그대로 옮긴다. 내 글의 제목도 이를 따른다. 하여 현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무얼 먹고사나'가 아니라 '무얼 먹고 사나'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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