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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반어법의 음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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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反語法 / irony)의 음흉함이라니.

 

반어법, 혹 음흉에 어울리는가? - 픽사베이서 가져옴

 

 

출근길 유튜브 '삼 프로'에서 심리학 강사로 유명한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장맛비 속 심리학이라. 다른 날 같으면 바로 넘겼을 이 강의가 오늘 아침 나를 이끈 것은 무엇일까. 세상만사 늘 괘씸하게 보는 구석이 있는 나는 심리학 등 사람의 마음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 내용의 책이나 강의를 코웃음 단지로 내몰아 팽개친다. 구석으로 몰고 무시한다. 듣다 보면 너무 빤하더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사실 많은 책을 읽기도 했고 강의도 들었다.

'이런 꼴통.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지.'

나를 공격하는 소리 내 귀를 때린다.

 

어떡하랴. 어쩌다가 한 번씩 그렇고 나머지 대부분의 심리학 강의들이 나를, 내 심리를 그래도 자극하는 바가 있었다면 당연히 내 잘못이라 인정할 것이다. 한데 그렇지 않더라. 매번, 심리학이나 관련된 대단한 강의라 하여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그렇고 또 빤한 소리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건방진.

 

오늘 아침에 듣게 된 김경일 교수의 강의도 그랬다. 그저 그런.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리고. 하여 홍상수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생각났다. 사람 사는 것 모두 그렇지 아니한가. 어떤 때에는 기가 막히게 맞는가 하면 또 어떤 때에는 듣도보도 못한, 전혀 아닌 어떤 것. 곧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세상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곧 세상이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한 세상을 사는 우리. 그래도 오늘 강의 내용 중 딱 한 가지가 나를 붙잡았다. 오늘 아침 일기로 꼭 쓰고 싶게 했다.

"반어법을 많이 사용한 자는 음흉하다."

교수님은 이렇게까지 표현하지 않으셨다. 강의를 들은 소감을 합친 나의 표현이다.

 

"야근하면서 라면이냐. 왜 고작 라면을 먹느냐. 좀 좋은 것 먹지 왜 이런 것을 먹어. 이런 것을 먹으니까 네가 힘들지. 너 일도 그 모양이지."

이 프로 이진우 님이 야근하면서 라면을 먹고 있던 회사 동료(물론, 이를테면 이 프로보다 아래 위치의 사람이리라.)에게 위 문장들을 던졌단다. 자기 의도는 야근하는데, 이 고생을 하는데 고작 라면이냐고 말하고자 한 것인데 이를 들은 사람은 자기를 향한 질타를 퍼붓더라. 이 프로님은 그랬다.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이더라는. 하여 억울하다고. 순수하게 미안해하는 자기 의사는 비아냥으로 뒤집어쓰게 되었노라고. 갑질이 아니었다고. 야근까지 하는 이가 라면을 먹고 있다는 것에 화나더라는. 이 프로 입장에서는 워낙 일을 잘하는 친구인데 라면을 먹으면서 야근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나서 그랬다는데.

 

이 상황에 김경일 교수님이 가져온 낱말은 이것이었다. '반어법' 그런 식의 대화는 기본이며 상식 이상의 깊은 의도가 담긴 것을 진솔하게 나누려 하는, 진정한 대화를 나누려고 했으나 제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의 반어법이라고. 반어법의 속내를 이어 덧붙였다. 반어법의 밑에는 일종의 두려움, 내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기 생각을 바로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단다. 이는 가스라이팅과 비슷하다고. 높은 위치로 갈수록 미안하다는 말 못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란다. 사실은 붙잡고 싶은 상대방인데, 그 말 대신에 상대를 짓밟는 식의 언어를 퍼붓게 되는 꼴이라고. 어처구니가 없는 대화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남자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미안하다'를 대신한 뒤틀림 언어라고. '미안하다, 야근시켜서~'를 못하는 이 프로라고.

 

이 프로가 응답했다. '미안해 야근시켰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싫다고. 안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어쩌자고 시켜놓고 위로질이냐는 거다. 이 프로는 고집한다. 돈 덜 벌고 야근시키지 말아라. 돈 없으면 자기 집 팔아서 월급을 줘라. 안 시키면 되는 것을 왜 야근하게 하고는, 라면을 먹으면서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하면서. 뭔 소리냐. 뭔 개소리를 하냐. 반어법은 그 사람만의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이란다. 동정 호소용, 쏘시오패스일 수도 있다는. 가스라이팅 방식으로 속이고서는 시켜놓은 후 씩 웃고 퇴근하는 쏘시오패스일 수도 있다는.

 

 

알 수 없는 미궁, 인간 심릴

 

나는 이 프로를 무척 좋아하는데, 솔직히 저 위에서 언급한, 이 프로가 내놓은 반어법적인 말 던짐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런 문장은 해서는 안 된다. 이 프로의 회사 동료에게 던졌다는 문장 그대로를 살펴보면 정말로 화가 나게 생겼다. 이진우 님의 생각은 지나친 자기 합리화라고 단언하려는 순간, 나의 일상과 나의 언행을 데려와 앉혀놓고 보니, ', 나도 그렇구나, 사실 나는 더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나의 일상 면면에 사용하는 언어들을 들춰보니 나도 늘 반어법이더라는. . 쏘시오패스 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끔찍하다. 나는 또 이런 문장까지 덧붙여서 말한다.

"나는 톡 까놓고 말한다. 뒤끝 없다. 이렇게 말해도 이해해라."

이 얼마나 웃긴, 황당한 개소리 블루스냐.

 

그러므로 나는 '반어법의 음흉함'으로 구절을 만들어서 나를 반성한다. 솔직하게 말하자. 단도직입적으로 대화를 하자. 깔지 말고 숨기지 말고 바로 쏘아서 말하라. 하, 또 이렇게 문장을 던지고 나니 그렇다. 바로 쏘아? 이것 또한 말이 안 된다. 그렇담 어찌 말해? 어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참, 교수님의 강의 중 'MBTI는 변한다'라는, 매우 흥미로운 인간 심리 테스트라고 할 수 있지만 검사할 때면 변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것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맞다. MBTI는 변한다. 하여 오용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강의 중 수업 내용의 한 가지로 삽입되어 이를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 그야말로 내가 의도한 대로 나오는 결과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경계선에서 멈칫거리는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는 또 웃고 말았다. 그날 그날의 마음 움직임으로 충분히 정 반대의 결과도 나올 수 있겠더라. 하여 나는 나의 MBTI를 바로 버렸다. 잊었다. 다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미안해, 야근시켜서.'

 

라고 말한 사람이 싫다. 자기가 쪼끔 덜 벌면 되지. 왜 그런 말을 하면서 야근하냐고 말하는 이진우 기자. 스스로 엄격하다는. 이 프로가 싫어한다는 '개소리' 그렇담 '개소리'의 기준은 대체 뭘까.

 

 

 

 

이 사진이 반어법다운가?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반어법을 찾아 떠돌다 보니 역설법도 보인다. 역설법과 반어법은 또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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