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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마음 휘휘하여 걷기 힘들던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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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휘휘하여 걷기 힘든 퇴근길이었다.

 

 

앉아있는 이 여자라면, 딱 나인데~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느닷없이 새로운 프로젝트가 세워졌다. 내가 나서야 했다. 전적으로 내가 앞서고 내가 해내고 내가 이곳저곳 살살 얼러가면서 해내야 할 일이 생겼다. 이게 뭔 일이람. 난데없이 급작스럽게 던져진 일이었다. 받겠다, 받지 않겠다, 그 어떤 말도 내세울 수 없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디지털에서 터졌다는 것. 솔직한 심정으로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처음 내뱉고 싶은 문구는 '이런 ㅆㅂ'이었다. 와우.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듯싶어 얼른 입을 양손으로 감쌌다. 주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능수능란하게 디지털과 놀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어쨌든 해야 할 일. 하자 하니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저번 주 금요일에는 내가 먼저 불쑥 해보겠노라고 덤볐다. 한데 역시! 내가 나서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답답했다. 옆방 중 젊은이(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쯤 되는~)에게 물었더니 내가 힘들다는 어떤 일을 단숨에 처리해 줬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우선 민망했다. 그는 군소리 하나 없이 바로 와서 해결했다. 

 

오늘 그가 말한다.

"이제는 열어서 어서 어서 하십시오. 다 됐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나, 다짐했다.

'그래, 별 것 아닐 거야. 여태껏 어떤 일이 닥쳐도 나, 잘 해냈지 않은가.'

이렇듯 될 대로 되라지 마음 먹으니 주말을 사는 것도 한결 편안했다. 이 심정은 지난주 금요일에서 떡하니 멈췄기에 다행이었다. 

 

상상처럼 망상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더니 권력의 찌든 냄새를 풍긴 듯 느껴졌다. 환각처럼 어떤 이가 다가와서 내게 말했다. 왔던 길이니 기어코, 기어코 인사를 받고 가겠다면서 외쳤다.

"너, 너 말이야. 인사 좀 해, 엉? 그리고 말이야. 이 팀은 왜 섹시한 친구가 없어? 꼭 여자들, 여자들의 멋을 말한 것이 아니야. 소위 페미에서 말하는 그런 섹시 말고 말이야. 어떤 일을 완전하게 했을 때 발생되는 미소, 그런 것 말이야. 왜 그런, 판을 온전히 뒤덮을 수 있는 클라이막스가 없나? 그런 연출이 가능한 친구가 없냐고 말이야? 야, 여기 니들 놀이터가 아니야. 열심히 해. 엉?"

 

 

 

저기 앉아있는 이 긴 머리라면 딱 나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그래, 압박하는 무엇인가가 나를 덮쳐온다고 여겨졌다. 나는 오후 내내 울고 싶었다. 짓이겨진 어떤 것이 솟구쳐 올랐다. 이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내 무능력을 질타하는 분노의 토사물이 사방팔방 내뿜을 것 같았다. 나의 전신이 맹하니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새 프로젝트의 차림새를 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대체 이게 뭔가. 왜 이렇게나 밑도 끝도 없는 일을 하는지, 왜.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더디다. 사실 스마트한 프리젠테이션, 고급 엑셀 운영도 꽤 많은 세월을 품어왔다. 새 프로젝트로 내 책상 위에 들어앉은 것은 최신의 것이렸다. 낮은, 아주 낮은, 비천한 나의 디지털 학습력은 무장 나를 이끌고 구시대의 무덤으로 끌고 간다.

 

가장 늦은 퇴근길. 속없는(?), 한양살이 중의 손위 언니는 퇴근 시각이 지나자마자 전화를 넣어와서 어서 퇴근하지 않고 뭘 또 하고 있느냐며 난리였다. 내게 주문한 갓김치 배달을 확인한다. 그냥 일이 좀 바빠 늦어졌다고 힘없이 말을 내던지는데 펑펑 울고 싶어졌다. 불쑥, 또, 그만둬? 지금이라도 관둬? 한바탕 내 마음속 꼬락서니가 돌돌 꼬인다.

 

 

문제는 뭐, 그렇다고 위 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튀는 프로젝트도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내처, 냉큼, 무람없는(예의 없는) 내게 퍼붓는다.

"그래, 진즉 좀 관두지 뭘 하고 이제야, 바보야, 이런 바보야. 이제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살아야지 어떡하니."

간사한 내 두뇌는 누덕누덕 기운 꼴 보이더라도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낼 수 있다고, 또 하다보면 된다고 는적는적 처량하게 스러져 있는 내 영혼을 달래어 길을 거닐어 집으로 돌아왔다. 걷는 길, 어느 노시인의 인생 강의를 유튜브로 들으면서 걸으니 또 한결 살만하다. 그렇다. 사는 것이 그렇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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