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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복귀하다 - 칠월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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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하다 - 칠월의 마지막 날에!

- 이곳 글,  <한량전 실행 - 7월의 마지막 일요일>(22. 7. 26)은  제목에 오타가 있었다. <한량전 실행 - 7월의 마지막 일주일>이라고 했어야 했다. 사나흘 후던가. 이 오타를 발견한 것이. 그냥 그대로 뒀다. 

 

 

 

원두 조금 더하기 꿀 두세 스푼으로 조제한 커피. 오늘 내가 제일 먼저 섭취한 음식. 간헐적 단식 후 처음 섭취하는 음식. 이게 괜찮나? 하면서도 기어이 마시는 심사는 뭘까.

 

 

잘 잤다. 일곱 시에 이불속에서 몸을 들어 올렸다. 인간은 참 간사스럽다. 바로 나, 나 말이다. 내가 참 인간스럽다는 것이다. 어제 일기로 '10시 이후 하루의 시작'을 한탄했더니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맞닥뜨린 양 오늘 아침에는 제대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일곱 시에.

 

 

가벼웠다. 어제 했던 실내 운동의 효과인가? 일요일인데도 일곱 시에 시작한 하루가 어렵지 않다. 밤새 질 좋은 통잠은 태풍을 타고 온 선선함도 한몫했으리라. 잔잔한 기쁨이 바닥에 오밀조밀하게 자리한 수면이었다. 밤새 움직인 수면 명상도 어젯밤 잠자리에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나는 가끔 수면 중에도 수면에 들기 전 내가 했던 언행을 점검하곤 한다. 심지어 잠깐 눈을 뜬 채로 점검을 한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에 든다. 이것들은 모두 생생한 기억 속에 자리해 있다. 

 

 

재빨리 독서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50여 페이지를 읽었다. 단 한 개의 빈틈도 찾을 수 없는 문장들이 무서워 생전 하지 않던 방법으로 독서를 했다. 맨 뒤로 가서 이미 알고 있는 작가의 연보를 찬찬히 다시 읽었다. 굉장한 부피, 드넓은 범위의 삶을 사셨구나. 살짝 앞으로 다시 돌아와 역자 후기도 읽었다. 역자들은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작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들이었다. 번역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고뇌하지 않았던 곳이 없었단다. 반가웠다. 나와 똑같구나. 역자들도 그렇다는데 내 어찌 술술술 호박에 침주듯 읽어낼 수 있겠느냐. 내게 이 글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문장 버릴 수 없다는 것에 환장할 것 같았던 순간들이 줄을 이었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구나. 보다 알찬 독서를 위해서. 쉰 길 나무도 베면 끝이 있다고 했다. 제아무리 어렵고 험한 일도 하다 보면 끝낼 수 있다. 부지런히 읽자. 읽자고 다짐한다. 일단 이번에는 거침없이 쑤욱 읽어나가자. 그리고 다시 대여를 해서 읽을 때에는 가능하면 책 전체 혹은 부분 부분을 베껴보자.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다 성지의 글이다.

 

 

점차 비가 굵어졌다. 그래, 화분 흙을 버리기에 안성맞춤의 날이로구나. 책을 읽다가 뭔 일? 읽던 책에게는 잠깐 어떤 일을 좀 하고 오겠다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베란다 화단으로 눈을 돌렸다. '또 한 사람'의 수고로 일단 셋의 화분 흙을 버렸다. 빈 화분을 가지고 올라온 '또 한 사람'이 말한다. '더 없어?' '아, 그래요. 좋아요 좋아' 몇 년째 '저것을 좀 어찌 없앴으면~'하고 벼르던 화분대로 갔다. 열 이상의 화분 흙을 버렸다. 모두 제라늄과였다.

 

 

이렇게 아름다이 피운 꼿을 어찌 전잎들 틈에 넣을 수 있겠는가. 결국 한 곳에 몰아 빈 화분에 구겨 넣었다. 물구멍없이 자라는 흙 속에 작게 키우리라. 곧!

 

 

말이 쉽지. 물 주기를 하는 날에야 살펴볼 수 있는 생활을 하는 관계로 아리땁고 풍성한 꽃을 피우는 것을 힘들어했다. 참 진득하게 살아내는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이지 까다로운 종류 같으면 진즉 우리 집 화단에서는 멸종했을 것이다. 고마운 제라늄.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수시 꽃을 보여주던 것들. 그들이 살아야 될 곳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하는 곳이었다. 아파트에서는, 그리고 내 게으름으로는 제라늄다운 정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명인데 싶어 화초는 빼어 임시 대피소로 정해진 화분에 올려뒀다. '물구멍 없이 키울 수 있는 흙'에 아주 작게, 가볍게 심어 키울까 싶어서이다. 이런. 결국 못 버리는구나. 욕심. 

 

 

주변의 화분 몇을 자리 이동시키고 구세대를 대표한 3층 계단식 화분 전시대를 버리기로 했다. 가로 1미터 정도, 세로 50센티미터 정도의 빈 공간이 생겼다. 1.5제곱미터 정도의 공간이다. 그래, 이래서 비우면서 살아라고 하는가 보다. 이게 미니멀리즘의 참 맛인가 보다. 얼마나 시원한지. 내 몸속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오염수의 8할이 배설되는 기분이었다. 목표가 생겼다. 히노끼 원목이 덥힌 거실 앞 중앙 베란다를 기준으로 오른쪽 공간의 사람 다니는 길은 제발 비우리라. 딱 사람만 다니게 하리라.

 

 

길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기르지도 못할 화초들을 '삽목 하여 새 생명체를 꽃피우게 했느니', '나는 화초 재배에 재능이 있느니'를 떠벌리지 말지어다. 사람과 물 뿌리개만 걷는 공간이 되게 하리라. 당초 흙을 담아 화초를 키울 수 있게 구조된 바깥쪽 베란다 공간만 화초를 키우고 남은 방 앞, 사람이 다니는 길을 비우리라. 올해 안에는 꼭 행하리라. 여백의 비, 응용력을 발휘하자면 '순백의 미'까지 발휘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리라. 유유 자작하는 모양새로 길을 걸으면서 커피를 한잔 마셔보자. 얼마나 고상한 맛이겠느냐. 오늘 큰 일을 했다. 여러 해 고민하던 일을 첫 실행에 옮겼다. 미니 책상을 둬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실까, 앗, 아서라, 아서라, 아니다. 비워라. 아무것도 없는 무욕의 정지 상태로 내버려둬라. 그 어느 것에게도 괜힌 자리 배치를 하여 곤궁에 처하게 하지 말라.  

 

 

나는 이런 날이 참 좋다. 햇볕 없이, 음의 기운 빽빽이 들어찬 이런 날. 비도 좀 더 왔으면 싶다. 농사꾼 아저씨들에게 화를 미치지 않을 정도라면 얼마든지 비 좀 더 내려라. 빗소리 안에 들어앉아 내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게 하리라. 빗소리더러 내 육신을 좀 치게 하리라. 정신을 좀 바짝 차린 채로 살 수 있게 하리라. 오늘은 칠월의 마지막 날. 7월 31일. '칠월 신선에 팔월 도깨비'랬다. 8월은 신나게 살아보리라. 팔월! 어서 오라. 팔팔하게 살자.

 

 

1일 2식, 간헐적 단식 실천. 아점도 저녁도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때웠다. 얻어먹었다. 내가 요리하지 않았으므로 무척 맛있었다, 헤헤.

책 400페이지 넘는 것을 백여 페이지 남겨뒀다. 모두 읽을 뻔했는데, 오전에 무거운 것을 들 때 뭐가 잘못되었나 보다. 허리가 아프다는. 누워서 엄지발가락 붙여 올리기를 부지런히 했건만 머리를 감고 나니 다시 통증. 묘한 맛이다. 어긋나면 안 되는데, 이를 어쩐다. 독서, 독서. 어지러워, 어려워. 하던 꼴을 조물주가 보기 싫으셨나 보다. '수준이 덜 되니 다음에 읽으라'는 것일까. 이런 때에 발휘되는 나의 고집. 기어코 읽을 거야. 내일은 완독. '오기'라고? 아니에요. 열정이라고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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