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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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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제목에 온점을 둘 찍는다.

 

 

오늘 단 한번도 손을 대지 못한 책

 

 

 

하루의 시작이 10시 31분이다. '수면 명상, 신경정신과~'가 내게서 수명을 다한 것일까.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 겨우 잠이 들었나 보다. 어느 의사 선생님이자 대학 강단에 서시는 노교수님이 불면증을 강의하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뭔가 해요. 움직여요. 굳이 왜 잠이 안 오는가 누워서 붙잡고 있지 말아요."

 

 

왜 아니 될까. 왜 꼭 불면이다 싶은 밤인가 하여 뭔가 하려 들면 곧 잠에 들 것 같고 또 아니다 싶어 일어나면 흐물흐물 잠이 곧 내 두 눈을 잠글 것 같은가. 그렇게 불면의 밤은 지나간다. 아니하려니 하는데 다시 반복된다. 빈약한 의지인가 싶어 나를 다그치지만 밤의 의식은 내 것이 아니다. 불면의 밤에는 의식이 둘로 쪼개진다. 나는 나고 나의 잠에 빌붙은 질투의 신이 주체가 된 또 다른 나는 별개의 존재이다. 이 둘의 자아 정체성은 밤이 깊을수록 또렷해진다. 어젯밤도 그렇게 지새웠다.

 

 

오늘은 토요일. '한 사람'은 누워있고 '또 한 사람'은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여 힘차게 하루를 출발한다. 평생을 거의 변하지 않은 틀로 살아가는 '또 한 사람'은 누워있는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또 한 사람'이 아침 준비로 바쁘다. 가만 들어보니 누워있는 '한 사람'이 먹을지도 모를 달걀 프라이 둘도 함께 하는 듯싶다. '한 사람'이 누운 채 '제발 조용, 조용히~'를 꿈속에서 하듯이 외친다. '또 한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의 움직임은 여섯 시 대에, 일곱 시 대에, 여덟 시 대에, 아홉 시 대에 꼬박꼬박 '한 사람'의 눈을 떴다가 감게 한다.

 

 

새날을 예고하는 동트기가 가늘게 시작할 즈음 시작된 수면이 가벼운 경기를 한다. 왜 저렇게 아침 준비를 거칠게 하는 것일까. 뒤늦게 시작한 '한 사람'의 수면 리듬은 어미 공룡, 박물관에 전시된 뼈만 남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공룡의 등이 지닌 기고만장한 굴곡을 쉼 없이 오르내린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한 사람'의 영혼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다. 온전한 정신을 회복한 듯 지상의 정상 궤도에 어서 발자국을 찍자고 벼른다. 의지박약의 생은 사는 '한 사람'은 그만 무너진다.

 

 

'그래, 그렇다면 수면 명상부터 아웃시키자.' 유튜브를 닫으려고 서너 번을 눌렀으나 결국 영화 평론가 이동진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면 죄 된다. 그분으로부터 소개받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창을 연다. 최근 실수 비슷한 일이 있었나 보다. 댓글 창에 '블라블라~' 글들이 많다. 내용도 다 듣지 않은 터라 그냥 닫는다. 요 근래 몇 년, 거국적인 측면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사무치게 통감한지라 '믿음'이니, '신뢰'이니 들먹여지면 재빨리 관심을 내려놓는다. '사람' 잡는 것이 '사람'이더라. 물론 자세히 알아봐야 되겠지만 이동진 선생님 건은 '실수'이리라라고 치고. 드디어 육신은 거실 바닥에 수직의 형상화를 실행하였다. 시각을 확인하고 마음속으로만 외친다. '또 한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터이니 입 밖으로 내놓을 문장은 절대 아니다.

'안 돼. 왜 이러나? 이것은 아니잖아. 하루의 시작이 10시 넘어서라니. 할 일이 태산인데 왜 이러는 거야~'

 

 

이미 아침 식사를 정식으로 치른 '또 한 사람'은 설거지까지 끝내고 공부 중인가 보다. 계란 프라이는 없었다. 내 몫이 아니었나. '왜 아직 먹지도 않을 것을 꼭 해 놓으냐'는 짜증을 접수했나 보다. 그래, 1일 2식을 위해서는 눈앞에 음식이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주말에는 더 그렇다. 입이 심심하여 '루틴'이고 뭐고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다행이다.

 

 

어제 초고속으로 들었던 인생 강의가 생각난다. 꿈을 작게 가지라던, 우선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꾸려나가라던, 작은 것을 마침내 완성하고 난 다음, 얻어지는 든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일을 키워나가라던. 그렇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너무 덩치가 큰 것인가. 무지한 인간이 무지몽매한 처사로 벌이는 맹목인가. 안을 수 없는 보름달 달덩이를 매양 쳐다보고 있는 것인가.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허허벌판에서 오직 자기 한 몸 움직임만으로 생의 의미를 살아가는 어느 무용가를 모방하는 헛 짓인가. 질푸덕질푸덕 짓이겨지는 진흙을 짊어지고 고산 등정하는 이 발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불면은 결국 내 욕심 덩이를 향한 조물주의 압박인가. 그만. 그만. 그만. 너무 먼 길을 걷고 있다. 어서 멈춰라. 

 

 

좋아하는 양파 장조림을 하고 나니 정오를 넘었다. 거침없는 녀석. 네 처음도 끝도 없는 순환의 능력을 한 마디 설명도 해주지 않고 날아가버리는 너, 시간. 읽고 있는 책의 저자도 나를 달래주지 않았던 어젯밤을 뒤로하고 이제 나 달릴 테다. 내게도 너와 발맞추어 내달릴 수 있는 힘을 주기를 소원하면서 오늘은 부적 없이 남은 시간을 가자고 다짐한다. 뚜벅뚜벅. 꿋꿋하게! 두리번거리지 않고 직선으로. 

 

 

주인 여자의 불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율마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더라.

 

 

 

그러나 오늘 한 일은 ~ 그저 그랬다. 읽고자 하는 책을 욕심껏 읽지 못했다.

1. 영화 둘 보기 : 어젯밤 다 못 본 것은 다음 날에는 꼭 봐야 하는 습관이 있어 하나를 보고 저녁 식사 후 운동을 해야 해서 둘을 봤다. <러브 이스 크라임>과 <나의 딸, 나의 누나>

2. 내일 만들게 될 마늘과 청양고추 장조림을 위해 한 바구니 가득 다듬고 씻어 말려뒀다.

3. 차려준 점심을 야무지게 먹었다. 갯장어(? 깨장어?) 구이였다.

4. 책 <활과 리라>를 채 50쪽도 못 읽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여기 써 둔 다짐은 다음과 같다. '제아무리 어려운, 난해한, 높은 수준의 책을 읽더라도 적어도 열 페이지씩은 읽고 나서 움직이자, 제발!'

5. 밤호박 반 개, 떡국 건더기 10알, 미니 만두 5알, 모차렐라 치즈 큰 숟가락으로 둘 쯤, 계란 프라이 둘, 양파 4 등분한 것 중 하나를 이렇게 저렇게 올리브 오일에 복작복작 지지고 볶아서 저녁을 먹었다. 

6. 저녁 식사 후 집에서 만든 요플레도 먹었구나. 

7. 아하, 점심 이후 '아몬드 파이 패스츄리(삼립식품 것)'를 원두커피 더하기 꿀 한두 스푼으로 조제한 것에 마시고 먹었다. 

위에 적은 저 많은 먹거리를 낮 12시 이후 저녁 7시 즈음까지 모두 먹었다. 징그러운 인간이다. 그리고 17시간을 먹지 않는다. 1일 2식으로 자연스레 간헐적 단식을 한다. 

에고. '불후의 명곡 락 페스티발'도 봤구나. 역시 김창완 할아버지는 대단하시더라. 내 좋아하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무대를 날아다니면서 찢는 모습까지는 못 봤던 록 무대였다. 

 

어서 자자. 내일은 어서 빨리 시작하기 위하여. 

태풍은 비껴간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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