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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부디 당신의 감정을 죄다 보여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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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당신의 감정을 죄다 보여주지 말라. 지루하다.

 

뮤지컬이 보고 싶어라. 이 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부디 당신의 감정을 죄다 보여주지 말라. 지루해질 수도 있다."

뮤지컬 배우 오디션에서 들은 심사평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골드 클래스 배우가 신인 배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배우는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면서 애간장이 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온몸으로 노래했다. 눈썹 한 가닥 손가락 한 마디 움직이는 모양새가 음악의 분위기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최선을 다했다.

 

초보 배우를 때리는 심사위원의 한 마디가 어찌 저렇게나 쉬운가. 죽자 살자 온몸을 다 바쳐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 저렇게나 열심인 배우에게, 고작 저런 심사평이라니. 순간 평소 뮤지컬 배우 중 최고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심사위원에 대한 나의 신념이 꺾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 보여주지 마? 지루하다고?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당신들,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감정 드러내기 적정선의 정도는 어느 선인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까. 어느 곳에서 눈물을 멈춰야 하고 어느 위치에 섰을 때 수그리고 있던 몸을 꼿꼿이 세워야만 하는다. 데체 뭘, 어쩌라는 것인가. 

 

저 말을 내뱉은 심사위원을 나는 무지 좋아한다. 그가 부른 어느 뮤지컬 아리라는 아마 거짓말을 보태 천 번을 내리 들었을 거다. 오늘 이곳에 그의 언어를 인용하는 것은 그에 대한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우선 밝히고. 

 

비단 뮤지컬만이 아니다. 나 같은,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분야라고는 도무지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사람이고 보면, 사방 군데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 살아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다. 어느 곳, 어느 분야에서건 상대를 향해 무엇인가를 요구해 오는 자들은 말한다.

"적정선을 지키시오. 적당한 정도까지만 보여주시오. 어지간한 선에서 꿇은 무릎의 각도를 멈추시오."

어렵기 그지없다. 어느 정도까지를 내보여야 하는가.

 

그들 앞에 선보여야 하는 정도가 궁금하다. 그들의 고급스러운 눈과 귀를 충족시키고 안심시킬 수 있는 물음표이다. 조금 수그리고 버둥거리면 자신감이 없다고 할 것이다. 조금 싸하다 싶으면 방정을 떨지 마시라고 외쳐올 것이다. 도전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 지나치게 잘난 체를 한다고 그럴싸한 유령 방망이를 작동시켜 나댈 것이다.  

 

권위를 자랑삼아 사는 이들은 흔히 그렇게들 말한다. 

"적당한 선을 지켜서 내게 오시오."

애당초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도 없이 도착한 곳이니 앞뒤 선별하여 가릴 것이 뭐 있겠는가. 가리고 숨길 것 숨기고 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가까스로 서투른 모습 소리 없이 묻고서 선 자리이므로 애달프다. 지루한 이론 부여잡고 지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난감하다. 

 

어렵다고 그대로 물리칠 수도 없는 것이 함정. 지니고 있는 것, 드러내고자 했던 것 중 버리고 옮기고 숨겨서 해결될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버리고 나면 대체 뭘 지니고 살아왔느냐고 물을 것이다. 옮기고 나면 지나치지 않는가, 혹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타박할 것이다. '당신 주제에~'를 덧붙여서. 더 숨기고 나면 대체 무슨 음흉함이 그리 강해서 당당하게 내놓지 않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 빤하다. 

 

그들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싶다. 쉽게 생각하지들 말라. 이런 경우 꼭 필요한 사자성어가 '역지사지'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일이다. 제발, 무엇인가를 요구해 오는 자들이여. 제발이지, 차라리 그대들의 리얼한 액션으로 적정선을 보여주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좋다. 그 방법들을 깨우쳐 해석하지 못할 때 부디 나무라기를. 그전에는 우선 그대들 앞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하기를!

 

오디션의 한 장면을 보다가 맞물린 장면들이 불러일으킨 분노가 사람을 두드렸다. 글을 읽어내리면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향해 읊으리라. 무담시 긁어 부스럼을 낸 억지 심보이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이 한 말이 어찌 갑질이겠는가. 잘하라고 앞으로 단단히 자라나라고 조금 강도를 높여 조언하는 자리인 것을. 

 

그래, 그건 그렇다. 어쩌자고 이리 욱하는가, 늘! 자제하고 살자. 적당히 살자고. 일터 동료들과의 회식이었다. 소주 석 잔을 들이켰다. 한 잔에서 그쳤어야 했다. 지나쳤다. 누님을 외치는 젊은이들이여, 고마웠다. 모두 잘 자고 내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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