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보낼 하루!
오랜 시간 퍼머를 하지 않았다. 더풀더풀. 두상을 뒤덮은 머리카락이 0에서 0.2m/s 사이로 기록되는 풍속 0, 즉 '고요' 수준의 바람에도 쉽게 나풀댄다. 춤을 춘다. 서너 번을 넘겼다.
"며칠 후 꽤 많은 수의 대중 앞에 서야 하는 행사일이구나. 퍼머를 하자."
굳은 다짐으로 미장원을 들른 것이 서너 번이다. 대중이라야 그렇고 그런, 내 일터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므로 대면으로 만나는 데에 커다란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새롭게 혹은 예전과 다르게, 독특하게 등 의미를 갖춰 맞이해야 할 부류가 결코 아니다.
어떻든 머리카락의 퍼머 상태가 지나치게 풀린 상태이다. 적당한 상태의 컬은 있는 상태의 머리카락이 유지되어야 하는 나이라는 거다. 왜 이렇게도 게으를까. 게으름을 탓하려고 하니 이에 앞서 내 습관을 들먹여 변명하고 싶다. 미장원에 앉아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중간한 상태의 지속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미장원엘 가면 이상하게 긴장이 풀어진다. 담뿍 안고 있는 심신의 피로가 확 풀린다. 예정된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싶으면 벌써 눈이 감긴다. 이미 미장원을 꽉 채운 퍼머 액이 내 머리카락에 닿기도 전에 내 의식을 잠재우려 든다. 자고 싶어진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고 읊어대다가 마침내 눈을 감는다. 감고 싶어진다. 한데 몸은 앉은 채이다. 잠을 자려거든 당연히 몸을 눕혀야 되는 법. 미장원의 퍼머 도중에 자는 잠은 쪽잠이자 반 틈 잠이자, 어중간한 잠이다.
어떤 상태에서 시작되어도 잠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상식적인 수면 상태에 든 이후 잠들어야만 잠이다. 마침내 잠에 이른다. 드디어 수면이다. 미장원에서의 수면은 어정쩡한 수면이다. 참 수면이 못 된다. 차라리 잠들지 않은 것이 나았을 텐데 하고 주장하고 싶을 만큼 어설픈 수면이다. 괜히 잤다고 생각할 만큼 두세 시간 후 갑자기 깨어난 잠이 불편하다.
사람을 이상한 상태에 잠기게 한다고 느껴지는 퍼머 액과 불편하게 오가다가 만 잠 시간이 우선 미장원 걸음을 뜸하게 하는 원인이다. 그리하여 오늘, 올해 들어 또 한 번 실시되는 대형 일터 행사에 머리카락이 걱정이다. 키라도 크면 눈에 띄지 않을 것인데 크지 않은 키이고 보니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계 불면 머리통 저 위쪽 정수리 부근의 맨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있었다. 오늘처럼 실외 행사일 때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생각해 낸 방법.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몰아서 세 가닥으로 나누어 머리카락을 땋아 오른쪽으로 내리는 방식. 전문 용어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젊은 시절부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한 해 두세 번씩 해대는 헤어스타일인데 이제 나이 들고 보니 머릿속 하얀 살결이 맨숭맨숭 피어오르는 상태를 커버하기 위하여,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치우치게 하여 어정쩡하지만 자꾸 사라져 가는 머리카락의 개수와 그에 따른 허망한 곳을 메꾸기에 제법이다.
일터에 도착하려 헤어스타일을 좀 바꾸려니 했다. 나도 검색해 봤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삼십여 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서 변신을 시도해야 하는데 며칠 전 집에서 해 보였던 구석과는 다른 전개이다. 영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라면 능히 수긍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다.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모양새로 드러난다.
결국 멈췄다. 순전히 문과인 듯싶으나 알고 보니 이과 전공이었던 남자에게 오늘의 바람 정도를 다시 안내받는다. 틀림없는 '고요' 수준이란다. 틀림없이. 내 핸드폰으로 확인하고서 남자에게 또 확인하는 내 행태가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결혼 후 들인 이상한 습관이다. 어쨌든 '고요' 수준의 바람이라면 거의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멈추기로 했다. 평소에 하고 다니던 그대로의 헤어스타일로 행사장에 서기로 했다. 대중 앞에서 하루를 생활하기로 했다. 어쩌랴. '세상사, 그렇고 그런 것을 어이 하랴!'라는 문장을 내세워서 오늘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자, 출발이다. 무대로 오르기 직전이다.
아침 일기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기꺼이 내 전부를 맡길 것이다. 내 헤어스타일을 당당하게 내비칠 생각이다. 부디 풍속의 정도가 연기가 날리는 정도로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실바람' 정도에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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