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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불면의 밤을 지새웠는데도 말짱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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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을 지새웠는데도 말짱한 하루!

 

에미상으로 검색했더니 뜬 사진 중 하나. 왜?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온 밤을 꼴딱 새웠다. 뉴스 검색이 문제였다. 나는 휴가 중.

"<성난 사람들>, 작품상 · 남녀주연상 등 美 에미상 8관왕 수상"

여러 기사를 읽어보니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지난해 서울에 와서 밝힌 소신도 재미있었다.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영화 속에 펼치라는 것이며 봉준호 감독 등의 활약상을 보고 '써니'라는 이름에서 본명인 '이성진'을 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내 성격에 넷플릭스를 켜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각은 이미 자정을 넘어섰고 하루를 정리한 후였다. 인터넷을 다시 켰고 넷플릭스를 열었고, 자, 에미상 8관왕에 빛이 난다는 작품 <성난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1편은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우선 한 건의 사건이 시작되고 진행되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신선한 박진감이 있었다. 2편을 보고 3편을 봤다. 시각은 새벽 세 시로 치닫고 있었다. 자자.

 

이불속으로 몸을 넣었다. 아, 틀림없이,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쓰고 있는 아날로그 일기도 썼다. 자자, 어서 자고 내일 일어나서 보자. 아니 오늘 아침이 되겠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자자, 자야 한다. 이러면 안 돼, 제발 어서 자자. 급기야 뇌세포는 저항을 시작했고 내 몸을 가동하게 했다. 일어나, 일어서. 보고 싶잖아, 어서 보고 싶잖아. 그렇다면 어서 일어나서 보자. 이미 멀쩡해져 버린 너의 소유물, 너의 뇌세포들을 활용하라. 그래, 일어서자. 

 

10편이 끝이었다. 한 회당 20분에서 35분 사이의 양을 가진 드라마였다. 나는 여러 각도로 생각을 이어 나갔고 이 드라마가 충분히 에미상 8관왕이 될 내용이라는 것에, 스티븐 연과, 주연 여배우 등 여러 연기자의 진심어린 연기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안고 움찔거리는데 일곱 시가 되고 말았다. 아침 일곱 시. 핸드폰을 껐다. 앞서 남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나 지금, 새벽 일곱 시에 잠을 자기 시작하느니 깨우지 말라.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뉘었다. 서서히 아침이 돋고 있었다. 창밖은 희미하게 새로운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어렴풋이 남자의 움직임이 느껴진 것도 같았다. 고요. 눈을 떠 보니 오전 11시 35분이었다. 세 시간쯤 잤다. 일어났다. 치카치카를 하고 다시 새날을 시작하는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멀쩡하지? 왜? 밤을 꼴딱 새우고 고작 세 시간여 잤는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마침 서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혼자서 사는 생활이 너무 적적하여 거의 매일 전화를 넣어오는 언니. 언니가 요즘 영화에 빠져 산다. 제법 수준 높은 영화 이야기를 내게 물어오고 소감을 말한다. 밤의 새면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고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일곱 시에 전화 넣으려다가 혹 자고 있지 않을까 싶어 안 했음요. <성난 사람들>이라고, 요즘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가 있는데 보라고. 나, 어젯밤 꼴딱 새워서 10회까지 모두 봤다고."

"그래, 뉴스에 나오드라야, 에미상이 뭐냐 근데?"

 

간단하게 에미상과 아카데미를 비교하여 이야기를 해주고서 내 한 말이 있다.

"근데, 참 이상하지? 젊을 때에는 하룻밤이라도 잠 못 자면 다음 날이 너무 어지럽고 힘들고......, 그랬었는데 아마 최근 한 5년 정도 되었지? 내가 역류성 식도염 증상을 제대로 발휘한 날 말이야. 밤 새워서 웩웩거렸던 날, 그 이후부터 밤을 꼬박 새도 아무렇지도 않아. 다음날, 멀쩡하다고. 신기하지 않아? 이게 뭐지?"

"말 말아라. 이제 진짜 늙었다는 거다. 몸이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거야. 나도 그래. 사나흘을 못 자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좋아할 일 아니다, 너 그것 참 잘된 일이라고 또 맨날 밤을 새우면서 영화 볼라. 문제는 밤을 꼴딱 새워도 가운데 피부가 처지고 탈모가 왕창 진행되고 면역력이 제로를 향해서 치닫고~, 그런단다. 조심해라, 니도 늙었다야."

 

불면의 밤을 지새운 다음날에도 나는 말짱한 하루를 보냈다. 그만 잠들 시각을 놓친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다음 장면들이 궁금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의 여신이 삐진 채 나를 등지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명작 드라마가 될 <성난 사람들>을 모두 봤지만 걱정이다. 본격적인 늙음의 징후라니. 그놈의 역류성 식도염을 제대로 치렀던 날 이후 늘 이렇다. 불면의 밤을 지새웠는데도 말짱한 하루.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의학적으로 좀 계산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탈모가 진행될까 봐 걱정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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