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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낮도 밤도 보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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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도 밤도 보대꼈다.

 

한우, 오지게 먹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하루걸러 세 끼를 먹었던가, 네 끼를 먹었던가. 지난 주말부터 엄청난 양의 한우를 먹었다. 핸드폰만 열면 함께 열리는 한우 판매업체의 홍보 글귀에 그만 혹한 것이 시작이었다.

“있잖아, 한우 값이 폭락이래. 우와, 싸다. 우리 이것 시킬까?”

“...... .”

“봐 봐, 한우 등심 정상가가 이십몇만 원인데 그냥 팔만 얼마에 준대.”

“이 가게로 검색해봤는데 사서 먹은 사람들 반응이 나쁘지 않네. 우리 이것 좀 사서 실컷 먹어보자. 응?”

“그래, 알았어. 알아서 해.”

 

남의 일처럼 가까스로 수긍해주는 남자의 반응이 미덥지 않아 짜증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단 시켰다.

‘에라 모르겠다. 땡긴다 땡겨. 먹자, 입 안 가득 미디엄으로 구운 소고기를 쑤셔 넣고 마음껏 미감을 즐겨 보자.‘

소고기 2000g에 팔만 팔천 원인가를 그곳 계좌로 입금했다. 푸짐한 양이었다. 기왕 시킨 김에 함께 주문한 한돈(돼지고기)도 왔다. 그것은 우선 냉동실에 넣어두고 싱싱한 상태의 소고기를 먹기로 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어찌 2kg을 한꺼번에 먹겠느냐 싶어 한우 1kg도 냉동실에 넣었다.

 

무엇인가 입 안 가득 꽉 차게 채워서 씹어먹는 것을 즐기는 야생성 입맛을 즐기는 나는 하필 한우 배달되는 날에 약속이 있느냐고 외출하는 남자를 놀리면서 400g 정도 구워 먹었다. 와그작와그작. 맛있게 먹었다. 그저 그런 정도의 서민으로 사는지라 입맛에 까다롭지 않은 것도 큰 이유이리라. 열심히 먹었다.

 

그 마누라에 그 남자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도인지 저녁 열한 시가 다 되어 귀가한 남자도 한우 맛을 보고 싶노라고 내게 매달렸다. 200g 정도 구워주면 참 고맙겠다며 청해왔다. 술기운에도 남자는 한 번 더, 조금만 더 외치더니 내가 먹었던 양에 거의 가깝게 한우를 씹어 삼켰다. 좀처럼 말이 없는 평소 모습과 달리 술기운에 힘을 얻었는지 ’한우 참 맛있네. 구워줘서 고맙네‘를 수없이 외치더니만 전인권 할아버지의 노래를 삼십 분은 넘게 듣더니 수면에 들었다.

’두고 보자. 내일 일어나기만 해 봐! 영화를 보고 있는데 뒤늦게, 술까지 마시고 들어와서는 저게 뭐람?‘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을 맞은 남자는 오직 한우가 맛있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젯밤 행했던 불상사(?)에 대해 말을 좀 할까 하다가 멈췄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싼값에 산 한우가 우리 둘, 모두 맛있게 먹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싶었다.

 

중요한 것은 아침부터 속이 묵직한 것이 우선 문제였다. 보대꼈다. 보대낀다는 낱말이 사람이니 일이니 하는 것에 몹시 시달릴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인데 나는 세상에나, 세상살이가 아니라 우걱우걱 한입에 씹어 삼킨 한우 여러 도막으로 인해 보대낀 것이다. 물론 음식물에 체했을 때도 보대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괴로웠다. 배 속에 돌무더기 한 보자기를 집어넣은 것처럼 무거웠다. 급기야 속이 쓰렸다. 울끈 불끈 이상한 힘이 배 속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귀신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랑올랑 배 속의 내장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맛있는 점심을 대령한다 해도 나는 속이 보대껴 식사를 못 하겠다고 해야 정상이다. 상식적으로 말이다. 한데 점심을 야무지게 먹었다. 우적우적 물김 비빔밥을 먹는데 내가 영락없이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늙으면 어서 소식을 해야 한다던데, 꼴통으로 치닫는 내장들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어쩌자고 끝없이 먹어대는 것일까. 의지박약일까? 의지박약을 이내 무기력증으로 발전하고 무기력증은 곧 무뇌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름길이라는데 이를 어쩐담. 더군다나 육식에 이리 환장하곤 하니 내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이런 나를 보면 나를 아는 이들도 내가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것이 거짓인 듯 느껴지리라.

 

소화기의 활동에 문제가 생기면 잠도 제대로 못 잔다더니 출근해야 하는 오늘을 두고 어젯밤은 단 한숨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의 어두움을 막막 기었다. 나무토막이라도 내 옆에 있었다면 있지도 않은 내 손톱자국으로 나무가 아팠으리라. 오늘은 덜 먹느라고 애를 썼다. 어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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