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지닌 욕망을 좇아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아침 출근길에 칸트를 들었나 보다. 이곳에 들어와 글쓰기를 누르니 아침에 써 놓은 한 문장의 임시 저장글이 뜬다. 위 한 문장이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판단력이성비판을 들었던가. 그 강의는 2부작이었던 듯싶은데 아마 1부를 나는 들었고 내가 오늘 들은 칸트는 그의 일생 편력 위주의 강의였던 것 같다.
평생 독신이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강의 내용으로는 그가 늦은 나이에 결혼했으나 십수 년 만에 헤어지고는 이후 독신 이랬던가. 얼마 전 들은 니체의 생이 겹져진 것도 같다. 아니다 니체는 성관계도 없었다지 않은가. 물론 매독환자였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요 며칠 내가 살아가는 힘은 니체와 칸트이다. 말하자면 어찌 되었든지 철학으로 내가 산다.
철학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올해 들어 일터 사건을 포함하여 줄곧 내 주변을 맴도는 일거리들이 결국은 철학으로 연결된다. 하기야 내 삶이 언제 철학 아니었던 때가 있었던가. 사람 심리 들먹이면서 대체 사람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아니했던 때가 있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만 돌아보면 여태껏 나의 생의 모토는 '사람은 왜 살까'이자 동시에 '사람 사는 것은 대체 뭘까'이다.
오늘 강의 내용 중 유독 내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성이 지닌 욕망' 어떤 빛깔일까. 어떤 색깔일까. 어떤 명암을 띠고 있으며, 어떤 구조로 축조되었으며, 어떤 질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어떤 양감을 지니고 있을까. 이성이 욕망을 지녔다니. 얼마나 클래시컬한 우아함을 띠고 있을까. 얼마나 거들먹거리는 못된 고상함으로 사람을 엿 먹이려 들까. 어찌 그리 제 잘못 한번 얹어 고개 숙이지를 못했던가.
'이성'의 이편, 저편 넘나들며 나는 어깃장을 놓아본다. 우리는 마치 '이성'이라면 온갖 불상사는 물론 거친 오두방정이랑은 전혀 관계되지 않은 순수 정직을 생각할 것이다. 그럴싸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곧은 판단에 이타적인 융통성을 기본으로 한, 마음 넓은 대인의 면모를 말할 때 이성을 들먹이곤 한다. 마치 우리 같은 소시민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중 중간쯤의 평균이라는 높이에서 운용되는 면모라고 생각하곤 한다.
오늘 아침 칸트 강의를 들었던 내게도 작동한 수비책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성이나 감성이나 '오십 보 백 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빌빌한가 하면 방종에 가까운가 하면 전혀 심사숙고함이 전제되지 않은, 껄떡거리는 감각의 표현을 자칫 감성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한편 이성은 대단히 합리적이며 신중하며 진중한 사고를 바탕으로 진행되고 어떤 의미 깊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수단이라 여겨진다.
한데 이성의 힘이, 날카롭게 정제된 듯한 이성이 이성을 잃으면 그야말로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억지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때로 이성은 칼같이 남을 자르는 독성을 지닌 때가 있다. 날카로운 꼬챙이를 만들어 상대방의 진국을 빨아먹은 뒤 뒤돌아서서 고약한 소문을 남발하기도 한다.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내 도착하여 사람의 무대를 보니 진저리가 쳐진다.
이성이 지닌 욕망을 좇아 사는 삶을 살고 싶다. 과연 이 문장을 내걸어 일기를 쓰려던 오늘 아침 나의 심리는 어떤 상태였을까. 악재가 벌어지고 진행되고 또 그치지 않은 채 새로운 악재를 덧붙여 자라나던 상황. 사방, 팔방으로 탐구 조사, 연구하여 해결책을 만들어보려고 기울였던 노력. 이 모든 것을 대단한 순수철학(칸트와 니체와는 전혀 상관없는~)으로 여기면서 사느냐고 비판하던~, 쪼잔한 매무새로 여기는 윗사람들을 어찌 평해야 하나. 하여, 잠깐 나도 냉철한 판단하에 나 살자고 두 눈 번득거리면서 들은 것일까.
그래, 분명 오늘 강사가 말하는 '이성이 지닌 욕망'은 그래도 옆에 두고 함께 살 만한 꽤 괜찮은 그릇이라고 말했던 듯. 서서히 제 궤도에 들어서는 듯한 오늘을 살면서 나는 감히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심리학을 파헤치고 싶어졌다. 루소며, 쇼펜하우어, 칸트, 니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까지 모두 모셔와서 돼지머리를 올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빚어진 막걸리를 한 사람 함께 들이키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내 생활 속을 흐르는 철학 속 철학자들을 붙들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끔, 그들 옷자락을 여며 매달리면서 곡을 함께하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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