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새 사람이 왔다.
이틀 전 새로운 소식이 있었다. 일터에서 나와 함께, 우리 부서에서 함께 일을 할 새 사람이 올 것이라는. 아! 우선 한숨이 내뱉어졌다. 소식을 전하던 이가 난감해했다.
"어떡하나요? 온다는데요."
"예. 알겠습니다. 온다는데요. 오게 해야겠지요. 달리 방법이 없잖습니까? 근데 누구? 혹시 알아요? 어떤 사람인지."
해서는 알 될 말을 내뱉었다. 사람이 사람인데 '어떤'이라니. 이것, 갑질 아닌가? 스스로 되돌린 질문 앞에서 부끄러웠다. 소식 전하던 이가 볼륨을 잔뜩 낮춰 대꾸했다.
"아, 어쩌면 안 올 수도 있을지 몰라요. 저번에도 한 사람 온다더니 그냥 흐지부지, 안 오더라고요.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고요. 오면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이 함께 오겠지요. 글쎄요. 좋은 사람이어야 할 텐데요."
올해 우리 부서에서 일어난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이여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하며 말했다.
새 사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생전 처음 본(아마) 사람이 낮 동안 나와 함께 한 공간에서 살게 되다는 것. 새 사람.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물론 어색하겠지만 그 쯤이야 당연한 것. 그 어색함마저 사람살이의 한 재미가 되지 않은가. 천 번 만 번 기뻐해야 할 일. 아무리 새 물건이 들여온대도 결국 사람의 힘으로 살지 않는가. 잘 안다. 인정.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살아갈 때 창출되는 힘. 나는 '창출'이라고 쓴다. 새 사람으로 인해 새로운 물결이 이니 이 또한 창출이지 아니한가.
한데 올해 들어 발생한, 나를 끔찍하게 했던 일이 있어 조마조마했다. 새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웠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나는 남의 일을, 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관찰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둘의 행동을 지극히 객관성을 띤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그 둘의 행동거지에 그것에서 파생되는 문제들과 내가 개입하여 해결해가는 화해의 과정과 결과를 문서로 만들어야 했다. 마치 양쪽을 이어주는 중간 매체가 된 듯, 조절하고, 조정하고 결과화 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기록했다. 한 편의 글을 만들어야 했다. 말하자면 '조서'였다.
사람 사이 일이라는 것이 또 그렇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어떤 일이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나봐야 끝나는 것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이 문구를 그제 세 번을 본 영화 '용의자'에서 진 핵크만이 외치더라.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사실 '너희들끼리 해결하라.'라고 모른 척 할 수도 있었다. 하나 또 그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부서의 책임자였다. 사람. 참,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더라. 하여 새 사람이 유입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새로 들어오는 이는 어찌 되었든 시작 부분에서는 내게 제로 상태로 덤벼들(?)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 관계를 맺고 살자는 신념으로 사는 나. 느닷없는 상황의 발생에 올 전반기가 얼마나 힘든지.(지금은 거의 해결된 듯하지만, 끝나봐야 끝나는 것이어서.)
나의 진저리 치는 모습을 읽은, 새 소식을 전해주던 이의 말을 어젯밤 곱씹었다.
"아,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번에도 한 사람이 온다더니 안 왔거든요."
제발 그렇게 되기를. 솔직하게 말해서 엄청 바랐다. 그러나 이 말은 어제, 바로 다음 날인 어제, 섣부른 문장과 어설픈 문장이 되고 말았다. 왔다. 새 사람이 어제 왔다. 가겠다는 소식 미리 일터로 전해오는가 싶더니 바로 왔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고심했겠는가. 제발 인간 같은 새 사람이었으면. 제발 '된사람'이었으면. 오, 부디 '난사람' 좀 아니었으면.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조용한 사람이었으면. 앞뒤를 잴 줄 알고 양 옆을 정통으로 바라볼 줄 아는 현명함을 지닌 이였으면. 늘 마음 편하게 순간순간을 다스리고 채워가는 사람이었으면. 자기를 향한 철저한 보살핌을 현명하게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다행이었다. 첫인상이 참 좋았다. 차분해 보였다. 말이 많지 않아 보였다. 책임감도 제법 적재된 생활을 하는 듯싶었다. 인내심도 층층이 가슴 한편에 쌓아 놓았을 듯싶었다. 나는 얼굴색 활짝 펴고 새 사람을 맞았다.
"어떻게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혹 책, 독서는 좋아하나요?"
"음악이며 미술 쪽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답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다음 질문을 퍼붓는 내게 그가 말했다. 고요 버전이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타악기를 연주합니다. 타악기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마린바. 참, 트럼펫도 연주하고요."
"타악기요? 관현악 말고 타악기 말이지요?"
"그래요, 타악기요. 관악기도 했네요. 트럼펫을 연주했던 적도 있어요. 책은...... ."
"와우, 그렇군요. 저는 악기 연주는 못 하지만 음악은 진짜로 좋아해요. 모든 쟝르의 악기를 다 좋아해요. 반가워요. 타악기 중 어느 악기를 연주하나요?"
"이것저것 타악기면 대부분 합니다. 드럼도요."
내가 헤비메탈을 들을 때면 온몸으로 치는 가상의 드럼을 알기라도 한 듯 그는 드럼을 친다는 것에 힘주어 말했다. 기쁘고 반가웠다. 내 사고 속에는 적어도 악기 한 개쯤 연주할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이라면, 음악이며 미술,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인성 또한 평탄 이상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정답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냥 조용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생활이 좋아요."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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