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게 하소서.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들으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팬텀싱어 4 출연자 이동규 님 덕분에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된 음악이다. 어릴 적,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주인공의 삶이 안쓰러웠는데 이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조물주가 점지해 준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으로 평생 산 삶이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인생이었다 시기도 하다. 우리 삶은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잉태되면서부터 주어진 어떤 운명, 그 운명을 최대한 가까이 좇아가는 길이 아닐까.
내게 주어진 삶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연 내가 내 어머니의 몸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운명을 얼마나 좇아가고 있는 것일까. 긴 시간, 요즘 세대들은 생각할 수 없는 이 긴 나날을 한 일터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나는 내 숙명을 뒤바꿔 사는 것이 아닐까. 이 고단한(올해 들어 더욱, 아니 내 일터 노동사 중 가장 험난한 지금~) 생을 나는 어쩌자고 들이 파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젯밤 실내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폴 워커' 때문이다. 엥? '폴 워커' 때문이라니. 몇 주에 걸쳐 내가 '폴 워커'를 힘들게 하고 있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림이 이렇게나 진행되지 않는 것이. 지난해 내가 그린 작품은 열 점 가까이 된다. '히스 레저'를 다섯까지 그렸다. 이후 그림을 멈췄다. 이른바 '정밀묘사'라고 칭하는 미술의 한 갈래를 나는 즐겨 그린다. 말 그대로, 인물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무슨 '즐겨'이냐. 그림 귀신이 웃겠다. 연필 소묘에 일가견이 있으신 화가에게 내 그림 완성 수를 말씀드렸더니 어처구니없어하셨다. 하루에도 수십 장씩 그려낸 결과 '화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데, 아마추어가, 아니 아마추어랄 수도 없는 그림 초보자가 일 년에 열 장 정도 그린다? 글자 그대로 '그만하라'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그 수준의 말씀이셨다.
이상하게 '히스 레저'를 다섯 장 그리고 나자 나의 그림 수명이 딱 멈췄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의 혼을 붙들고 있는 듯싶었다. 세상에나, 너무 황당했다. 미세하게나마 있는 내 그림 그리기 능력을 누군가 딱 떼어내서 가져가버린 것 같았다. 어디 몸속 장기가 고장 나면 세련된 의술을 지닌 의사가, 있어서는 안 될 부분을 사악 긁어내듯이 그렇게! 의사의 행위는 더 나은 몸 상태가 되게 하려는 의도적인 행동인데, 내게 숨어든 집도의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나의 그림 능력을 희망도 없는 상태가 되게 완전히 제거해버린 듯한 그런 황망함.
내가 지닌 능력이 게, 얼마나 된다고. 나를 붙드는, 나의 힘을, 그림을 좀 그려보고자 하는 소망을 '헛된 욕망'으로 몰아세우는 어떤 이시여.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나,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가련하지 않은지. 타고난 능력 영에 가까운 것을. 영점 영영 프로라고들 하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척도. 도구로 잴 수 없는 만큼 존재하는 그 힘을, 저 아래, 내가 지닌 그림 능력의 함, 바닥을 기는 능력을, 마저 솨악 훑어가 버린 어떤 이가 있었으니.
그래 좀 쉬자. 치고 올라가 정상적인 포물선을 그을 때의 저 위 정점. 그곳으로 도달하기 위해서 이깟 슬럼프를 못 이겨서야. 기다리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 지켜보면 또 어느 날 쓱쓱 싹싹 그림이 그려질 거야. 실물보다 더 멋진 인물들이 나의 손에 의해 창작이 될 것이다. 기다리자. 여러 드로잉, 볼거리들 많지 않은가. 세상 널린 것이 그림이다. 유튜브며 블로그며. 내가 욕심껏 사들여서 쌓아두고 있는 많은 책자가 있지 않은가. 꾸준한 정성으로 우선 눈으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자.
하여 '잠시 멈춤'이라고 하기로 했다. 세월 보낼 만큼 보냈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이삼 주일 전이었을까. 어느 날 '폴 워커'가 주연으로 뛰었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또 한 편이 개봉되었다길래 검색했다. 그가 없는 '분노의 질주'라니. 그리웠다. 그가 없는 포스터에 나는 '폴 워커', 그 우수 어린 눈을 담아 읽고 있었다. '히스 레저' 못지않게 섧고 슬픈 눈. 선입견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의 숙명을 두 눈에 담고 있다.
올해 나의 정밀묘사 시리즈는 '폴 워커' 그리기로 굳혀졌다. 히스 레저처럼 다섯 장쯤 그리려고 맘먹었다. 인터넷 이곳저곳 검색을 하다가 깨달은 것은 '히스 레저' 그리기보다 훨씬 어렵겠다는 것. '히스 레저'는 자기 안의 슬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폴 워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슬픔 팔 할은 내놓지 않았다. 아니 구할 정도 자기 맘을 자기 영혼 안에 숨기고 있었다. 내가 지닌 그리기 능력으로, 그의 낯에 숨어있는 그의 슬픔을 끄집어내는 것은 쉽지 않겠다 싶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렵다. 연필 정밀묘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지우기를 덜 하기'를 나는 완전히 무시한 채 '폴 워커'를 그리고 있다. '폴 워커 1'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리는 동안 두 장의 사진을 찍어뒀다. 웃기는 것이 차라리 첫 번째 것이 더 나았다. 훨씬 '폴 워커'다웠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즉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대면서 수정한 두 번째 사진 속 사람은 '폴 워커'가 아니었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이 그림은 여기서 멈추자. 부끄러우니까 블로그에서도 더는 들먹이지 말자.'
어제, 화요일 퇴근 후 넘겨두었던 화지 속의 '폴 워커 1'을 다시 펼쳤다. 아니 되겠다 싶었다. 지운 흔적이 너무 강해 연필선을 먹지 않더라도 열심히 수정하고 수정을 해서 최대한 '폴 워커'에 가까운 나만의 '폴 워커'를 그려내자는 욕심이 생겼다. 잘 안다. 얼마나 황당한 탐욕인지를. 얼마나 스스로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는 무식한 짓인지를.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어제, 멍청한 짓을 열심히 하느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도 여전히 '폴 워커'는 '폴 워커'가 못 되고 있다.
이번 주에는 결단을 내리라. 다짐하면서 오늘, 출근하는데 듣고 있는 유튜브 강의가 인생 잘 사는 법이다. 여러 문장이 들렸는데 내 심장을 콕 찌르는 문장이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일지라도 자기에게 고통이 되면 그만 둬라."
이는 매달리고 또 매달려서 하고자 하는데도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멈추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었다. 서울 어느 유명 대학교 교수님이 야무지게 강조하셨다. 이 강의를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듣게 된 것도 마치 조물주의 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기회는 주는 한 가지 방법일까. 이제 그만, 제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슬픈 단언?
너무 이른 출근인지라 한 시간 가까이 길을 걸었다. 아침이니, 온몸이 냉기 가득하니 여름이 만드는 땀은 괜찮으리라 싶었는데 제법 온몸이 후끈했다. 일터 내 방에 들어와 몸에 담긴 열기를 덜어내고 얼굴을 좀 단속하리라는 생각에 거울을 보니 오늘 출근길 상의에 검은 리본이 질끈 허리를 동여매고 있다. 오늘 아침 유튜브 강의를 통해서 나의 실체를 확인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나는 검은 리본으로 내 몸을 휘감은 것일까.
컴퓨터 하드를 켜서 유튜브를 열었다.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클릭했다. 아침 내내, 일터 옆방 동료가 출근하기 전까지 영화 속 '울게 하소서'와 이동규의 '울게 하소서'와 역시 팬텀싱어에서 나를 확실하게 붙잡았던 카운터테너 최성훈의 '울게 하소서'를 번갈아 가면서 들어야겠다. 안쓰러운 나를 좀 달랠 일이다.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늘 내 옆에 두고 한 줄, 두 줄, 한 편, 두 편씩 읽고 있는 시집의 제목을 캘리그라피로 그리려고 마음먹으면서 오늘 아침 일기를 마친다. 그래, 내 작은 몸뚱이. 크기에 비해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내 고뇌의 모음들을 음악과 시와 캘리그래피로 풀어내자. 되리라. 언젠가는. 죽기 전에는 꼭 내 소박한 그림들을 전시하고 싶다. 혹 내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드리리라. 첫 구매자에게는. 그런 날이 올까?
해 뜨는 시각이 빨라지니 눈도 자연히 빨리 떠진다. 출근 시각이 빨라지고 어제와 오늘, 그제도 그러했던가. 아침 일기 초안을 정식 근무 시각 이전에 쓸 수 있어 참 기쁘다. '울게 하소서'에서 '뿌듯하다.'로 급반전되는 이 아침 기운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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