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팔 할은 인덕이다.
내 생의 팔 할은 인덕이다. 이 문장을 수시 종알거리면서 살아왔다. 사실이다. 내 몸은 참 작고 가냘파서 휜 몸뚱이로부터 나오는 힘이 매우 약하다. 여기에서부터 나의 부족함은 시작된다. 원초적인 에너지의 결함이다. 타고난 운명이다. 조물주로부터 점지된 모양새이다. 이는 한편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의 결합을 유도하고 성공시킨 아름다운 구상의 결정체이다. 하여, 가끔 샤워 후 내 몸뚱이를 바라보며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선과 덩이에 감사했다. 아직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다만 체구 건장하시고 이목구비 또렷하신, 키 큰 미남 아버지를 좀 더 닮았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긴 하다.
날이 가고 세월 무더기로 날아가면서 몸이라는 입체의 균형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영육의 고상한 견제가 힘을 읽으면서 영은 팽창하는데 육은 스물스물. 몸이 가진 힘의 부족으로 노동이 따르는 일에는 대부분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못 하나 박아대는 것에서부터 조금이라도 무게 좀 나간다 싶은 것을 끌어안게 되면 이내 이지러질 것에 겁이 난 뼈마디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도란도란,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뼈다귀들은 늘 속삭인다. 그러다가는 아니다 싶으면 불쑥, '욱'하고 일어선다.
"왜 오늘은 여기, 목구멍 쪽이 자꾸 막혀요? 머플러를 좀 하고 오지 왜 그냥 왔나요. 당신 나이에 뭔 멋을 부린다고. 유명 유튜버 말했잖아요. 시니어 유튜버 말이오. 나이 들면 목 따뜻하게 해야 평상 건강이 유지된다! 당신 쇄골, 이젠 자랑할 나이가 아니오. 내일부터는 꼭 목도리를 두르고 나와요."
또 어느 날은 이런다.
"당신,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면서 기지개를 켰지요. 순간 어느 쪽 다리에 쥐가 내렸지요? 당신은 놀라 나자빠진 목소리 잉잉거리면서 당신 남자의 살핌을 주문했고요. 당신의 남자는 후다닥, 거실로 달음박질하여 당신 발바닥을 앞무릎 쪽으로 치켜세우면서 함께 엥엥거렸지요. 쥐 내리면 이렇게 하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징징거리고만 있느냐고 투덜댔지요. 사실, 당신 곧 죽을 것처럼 깜짝 놀란 소리 내배앝던 순간, 그곳, 당신의 다리를 꼿꼿하게 유지하느라 늘 바쁜 우리, 당신의 다리뼈는 또 얼마나 놀랐던지요. 어째 그리 몸단속하지 않아 곳곳이 부실한 몸인지요."
나는 힘없이 머리 조아린다.
내 뼈의 한탄은 이어진다.
"자, 당신, 저 무거운 화분을 들어야 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안다면 그런 행위는 계획하지 않았어야 했지요. 당신의 팔꿈치며 어깨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뼈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이제는 노쇠해진 몸. 어쩌자고 지금 이 나이에도 우리를 함부로 부리려 하는지요. 당신의 몸, 우리 정도로는 턱도 없어요. 우리에게 힘을 보태게 해 줘요. 어서 찾아봐요. 당신 부실한 뼈에 힘이 되어줄 또 다른 뼈의, 더하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줘요. 어서요, 어서. 오, 그리고 제발. 저 화분들 좀 없애라고요, 제발 좀."
하여 나는 이미 마음의 지게를 진 채 준비 중일 사나이를 옆에 대령한다. 남자는 늘 내 가녀린 육신을 구할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다. 나의 육체노동은 그런 식이다.
머릿속도 그다지 자라지 못했다. 일찌감치 글자의 향연에 동참하게 했던 우리 아버지. 그의 선구자적 기질에 의한 교육이 있었지만 내가 타고난 머리는 영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하여 쑥쑥 자라지 못했다. 한때 고만고만한 자리를 어슬렁거리면서 살아냈다. 이제는 내 지식과 지혜가 호령하던 동서남북, 사방을 읽고 해석하는 감까지 멈춰버렸다. 이래저래 세상사 참다운 삶을 살아내려거든 독서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귀에 판이 박히게 들어온 것에 의해서인지 우선 책을 옆에 두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기묘한 병앓이까지 해서 나는 참 책을 많이도 읽었다. 한때 일 년에 백 권, 이백 여권을 읽은 적도 있으나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 부스스한 책 속 분위기만 어설프다. 유명 제목이 세기를 초월하여 붙어있는, 색다른 해석을 하고자 전혀 개의치 않은 책들이었을 텐데, 하여 죽어라고 읽었는데. 그 긴 세월 읽어낸 독서의 흔적이 뇌세포를 이탈하고 이내 거의 전멸 수준이다. 아!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도다.
새날 진행될수록, 새 일을 벌릴수록 내게는 더욱 타인의 지식이며 지혜며 힘이 필요하다. 가끔 나는 남자에게 퀵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최근에는 그 빈도가 매우 높다. 앞으로는 더 할 것이다. 어제 공부한 내용도 떠오르지 않아 다급하게 전화를 넣어 해답을 묻기도 한다. 여전히 쌩쌩한 뇌를 지닌 사내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말투로 또 재빨리 답을 준다. 내 일이 해결된다. 하여 일터에서 동료들 사이 그는 '박사님'으로 불린다.
그런 상황들 끝이면 나는 또 늘, 항변하듯이 말한다. 누구도 내게 질문이며 의구심을 표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씨이, 아이를 낳아 봐. 그것도 전신 마취 상태에서 말이야. 기억력이 제로로 낙향한다고. 알아?'
나는 2박 3일에 걸쳐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내 뱃속에서 쉽게 나오지를 않았다. 이후 마치 조기 치매증이 오기라도 한 듯 내 생에서 새롭게 외워지는 것이 없더라. 모든 것이 단순 암기에서 끝나고 일회성으로 마감되더라. 그리하여 내 생의 중심 시간은 물론 기타 남은 모든 시간을 사는 것에 나의 남자의 힘 등이 필요하다. 나를 살게 하는 팔 할은 인덕이다. 최대한 조심, 조심한다고, 내 힘으로 해내자고 하지만 일터에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나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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