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어스름 새벽
봄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 좋아하는 사람 이사 가는 길
봄 함께 가기 위하여 목욕재계했나 보다
환한 목련 며칠 생을 불사르더니
이내 바닥으로 내려앉아 길을 만들었으니
초록으로 숨 쉬려던 당신의 몸부림이려니
살아생전 떠난 적이 없다는 이곳
잠깐의 한양 생활은 생의 덤터기로 치자하고
미리 알려주는 이 없었으니
준비하지 못한 두려움 적지 않겠지만
핏줄이 고민한 길
가볍게 몸 일으켜
함께 떠나시기를
말라비틀어진 북어포 한 가닥
당신 가기 전 며칠 전 그 모습
고단한 삶 이겨내고자 바쁘게 들이켜던 당신의 물
오늘은 적은 양의 음료수가 대신하고
딸기 한 주먹 함께 담았네
늘 야채 과일 먹지 않는다고
노여워하던 당신 마누라 생각해서
부디 붉은 과일 충분히 취하기를
떨린다고
자꾸 심장 떨린다고
눈물 흐른다고
자꾸 울음이 터질 것 같다고
당신 마누라
당신 가는 길
강물이라도 넘쳐 당신의 속내 드러내지 않을런지
걱정스럽나 보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하고 좋은 생각 하라고 다그치지만
먼 데 산 가족 당신 돌볼 수 없어
당신의 터 산돼지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고
이를 알게 된 당신 후손은 기절초풍
결국 당신의 영육 고향에서 빼내어
자기들 서식처 부근으로 모셔가겠다고
이를 들은 우리 집 남자
함께 늙어가는 마흔 다 된 조카 불러 이르기를
네 아빠 매일 아침 눈뜰 때면
매양 내 고향 아니라며
통곡하지 않겠느냐 했지만
나는 당신 아들에게 그랬으니
잘했다 좋은 생각이다 어서 하거라
당신과 당신 마누라
그토록 소원했던
아들 딸
잘 자라
자기네 구역으로 모셔가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비 묘 옮긴 후에 결혼하는 것이 옳다 싶다는 당신 아들
아비 외롭지 않게 하겠다
당신의 새 쉼터 앞
아름다운 강산 함께 구입했다니
당신과 함께
아들네 딸네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는
전망 좋은 당신의 방 마련했다니
부디 잘 가소서
하룻밤 자고 나니
여기 어디인고 놀라시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당신 고향에
당신과 당신 가족 대신 남아
고향인 듯 사는 내가
당신 가는 길 고이 안내하는 글 드리오니
형부 묘 이장에 붙여. 아마 5월에 가신 듯. 당시 써서 이곳에 임시 저장해 둔 글. 이제야 올린다.
오늘은 뭘 했던가. 베란다 화분 몇을 손 좀 보고 대만 영화 '고독의 맛'을 시청하고. 불후의 명곡 '라포엠'과 두 팀 더해서 시청하고. 글 두 편을 쓰다가 멈추고. 점심과 저녁 끼니 채우고. 유튜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글로벌 투자에 관한 강의를 듣고. 폴 워커를 그렸으나 여전히 폴 워커가 아니어서 괴롭고.
오늘 밤에는 어젯밤부터 보기 시작한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 둘째 편을 보다가 잠들 참이다. '존 윅 : 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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