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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세상 속을 살피고 오다 : 외출 - 사람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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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을 살피고 오다 : 외출 -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잘 잤다. 새벽 한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아날로그식 종이 일기를 쓰고 이불속에 누우면서 바로 유튜브를 켰다. '수면 명상'. 그제 밤 같은 불상사가 없어야 했다. 내 몸이 느끼는 대기의 기운은 그제 밤 같은 장대비의 출현은 몰고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되었다. '한밤중 관현악단이 꾸미는 무대' 같은 것은 없으리라 여겨졌지만 사람 사는 일은 모르는 것이다.

 

사람 이상으로 자연은 또 얼마나 홀라당 돌변하기를 즐기느냐. 앞 문단에서 들먹였지만 인간들 십인 십색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한 자연 무한 색상(無限 自然 無限 色相)이 자연의 무기이자 기의(記意)이자 기표(記標)이자 이 둘의 유려한 섞음이다. 자연은 '자크 라캉'과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융합한 채 한 몸에 품고 있다. 그들은 여유만만하다. 자연은 또 일을 저지르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을 자랑한다. 가끔 그들의 권력으로 작용된다. 미리 예방하자. 신새벽으로 가는 길에 느닷없는 자연의 돌연변이성 봉변 무대에 끌려나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서는 아니 된다. 하루 건너서라면 모를까 말이다. 하여 일찌감치 '수면 명상'(어제 글에서 수면 영상이라고 오타를 끝까지 유지했다네. 이런~)의 도움을 받았다. 하여 어젯밤은 통잠을 잤다. 

 

오늘은 바쁘다. 약속이 둘 있다. 점심 약속에 '22. 내사람들' 중 한 명과의 약속. 아무래도 첫 번째 점심 약속이 길어질 것 같다. 두 번째 약속은 만나서 전해줄 것이 있는데 이를 내 쪽에서 양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만남을 취소해야 될 것 같다. 전해줄 것을 누군가에게 맡겨 찾아가게 해야 할 참이다.

 

오후를 몽땅 바쳐야 할 첫 번째 만남은 참 짐스럽다, 솔직히. 오후 가득 사람들 속에, 세속에 붙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 자꾸 '솔직히'를 내세우는데, 정말로 솔직하게 말해서 싫다. 늘 그렇듯이 이전 만남에서 했던 대화 내용들이 날짜만 바꿔 오갈 것이 빤한 만남이다. 뭐,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않으냐고, 그러면서 세월 가고 그러면서 나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세상 사는 방법을 배우고, 그러면서 세상 사는 맛을 느끼는 것 아니냐고. 그래 쫌생이인 나를, 그래도 찾는 이들이니 나가자. 그러나 짐스럽다. 어쩌랴. 짐스러운 것을. 내가 밴댕이 속을 지닌 것인가. 그깟 것 못 견뎌내고 나갈 때마다 고민하는 내가 얼마나 신기한 동물인지. 그래,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래서 또 다행이다. 쓰다 보니 복잡해졌다. 각설하고

 

일단 외출을 해야 하므로 씻고 머리 감고 머리 말리고 기본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 그래도 나가기 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독후감을 좀 적어 양을 붙이고 밑줄 그은 부분들 베끼기도 조금 하고 나가자 싶다. 살고 있다는 맛을 우선 느낀 다음에 사람을 만나면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쉽다. 괜한 억지이긴 하다. 지가(나를 일컬음) 뭐라고. 별 시럽 게 시리. 별 것인 양. 인간들 십인 십색이니 온리 온이니 혹은 인간사 가지각색이니 하면서 인간들 사실 그 모양에 그 꼴이라고 주둥이 나불거리는 꼴이니(오호라, 이 거칠어지는 언어들은 무엇 때문인고~, 소주 한 잔 벌컥 한 것도 아닌데.) 그래, 두 문단이나 썼으니 이제 그만 한탄하고 나가자, 나가기로. 열심히 먹고 오기로. 

 

외출 준비를 완료하고 머리를 말리면서 이어 쓰기. 한낮을 걸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차를 가져가기로 하다. 운동은 다른 방법으로~

 

오늘도 매미는 운다.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들이 인간들의 세속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어서 울자. 서로를 다독이면서 남은 생을 마음껏 누리느라 바쁘다. 베란다 밖 햇볕의 강도도 강해진다. 내 어설픈 시력도 그 변화를 감지한다. 조금 전에는 내 눈이 정면을 기준으로 양쪽 약 90도 밖의 반경 속 빛을 느꼈는데(반 원 범위 내의 빛을 말한다. 총 180도 범위 안) 점차 그 범위는 넓어져서 지금은 120도의 빛까지 확인한다(원의 4분의 3 범위 내의 빛을 말한다. 약 270도 범위 안) 눈알을 씽씽 굴려서 말이다. 매미 울음소리가 점점 짙어진다. 한낮 중심점으로 시각이 가까워져가고 있다는 것이겠다. 지금 지상에 존재하는 소리는 컴퓨터가 가동되고 있으며 매미가 울고 있으며 내 귀의 이명이 일정한 음으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뿐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베끼려고 달려드니 책 표지 그림 속 검은 고양이가 연노랑 빛깔을 띤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요  녀석이 영 나를 눈엣가시로 여긴 듯싶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볼 적마다, 내 어릴 적 큰 언니 결혼 후 첫 친정 나들이 날 저녁, 낯선 큰 형부 및 일가친척 앞에서 불렀던 노래자랑을 떠올린다. 녀석에게 내가 불렀던 노래 '검은 고양이 네로'라도 들려줘야 하나.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미인이지만 너무 지적이어서 학교 선생님보다 더 어려웠던 우리 큰언니가 보여주던 반응을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일까. 녀석은 냉담형을 고수한 채 지적인 것이 무기인 양 나를 노려본다.

 

'공개 일기이지 않소. 어지간하면 나를 들먹이는 일은 빨리 관두시오. 어서 멈추시오. 어서 끝내시오'라고 외치는 듯도 싶다. 그래, 어서 너를 마감해야 하는데. 왜? 시립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또 한 권이 있거든. 어서 읽고 싶거든. 그림도 그리고 싶고. 화초들도 좀 정리하고 싶고. 옷도 좀 싸서 버리고 싶고. 낡은 내 소품들도 정리하고 싶고. 번뜩이는 내 머릿속 잡스러운 생각들을 꺼내어 분류 및 제거 등의 호미질도 하고 싶고.

 

녀석의 뒷배경으로 있는 보랏빛 꽃 이름은 무엇일까. 그가 깔고 앉아있는 연남색 줄무늬의 요는 누구 소유일까. 주인 선비의 것일까, 늘 선비에게 무시당하는 선비 아내의 것일까, 선비네 제멋대로 잘 자라는 꼬마 숙녀들의 것일까. 한동안 연정을 품었던 얼룩 고양이의 것일까. 녀석. 단 한번 품었던 연정도 성공하지 못한 네 안쓰러운 생. 네 주인은 번식을 위해서건, 관습을 위해서건, 본능을 위해서건, 사회적인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서건 '수성(守城 혹은 守成)을 위한 수성(獸性)을 살아냈는데 너는 인간들을 관찰하고 묘사하겠다는 욕심에 그만, 네 진짜 삶을 살아내지 못했구나. 그것을 내게 화풀이하는 것인가? 

 

오전 쓰기는 여기까지. 일단 내 글 속 주인공으로 모셔온 검은 고양이여! 너를 내 안에 안고 외출한다, 다녀올게. 집 좀 잘 보고 있으렴. 돌아와 혹 기분 좋으면 '검은 고양이 네로'를 불러줄 수도 있지.

 

외출에서 돌아왔다. 예상대로 길어진 첫 번째 만남은 예상대로 언제나 하는 대화 그대로를 반복했다. 두 번째 만나려 했던 주인공은 내 멋대로 '대면 약속'을 '비대면 약속'으로 바꿨지만 아무렇지 않게 나를 용서해줬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당신은 충분히 바빠야 한다고. 당신은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22. 내사람들' 중 한 사람. 그(녀)와의 대화로 오늘 내 텅 빈 생활까지 모두 용서되었다. 내 곁에 이렇게 고운 사람이 있는데. 얼마나 곱고 이쁘고 다정한지. 한참 더 산 나를 눈물 나게 하는 이쁜 말들. 고마웠다. 진정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했다. 내 올 반년의 생활을 아름답게 돌아보게 했다. 대여섯 시간의 대면 만남보다 단 몇 분 통화의 비대면 만남으로 나는 오늘 충분히 행복했다.

 

돌아와 영화 <에펠>을 봤네. 씁쓸하기도 하고 굉장하기도 하고~ 곧 영화 감상문으로 쓰기로 하고. 여주가 엄청 예뻤네. 내 스타일이었네. 남주도 잘생겼네. 내 스타일이었네. 나는 유럽 쪽 영화와 궁합이 맞는 듯. 하긴 할리우드니 발리우드(인도 영화)니, 일본 영화니 중국 영화니, 동남아며 서남아며 내게 맞지 않은 것이 어디 있었느냐만. 

 

그리고 오늘은 이 글을 썼을 뿐이다. 아하, 고운 소녀도 있었네. 그리고 나를 세상으로 꺼내어 뭇 세상을 살피게 해 준 사람들이 있었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와인이라도 마신 후 불러주기로 나 혼자서 다짐하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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