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쿤스트'의 웃음과 문장으로 통잠을 자다.
어젯밤, 내 남자(요즈음 나를 사로잡은 남자라는 뜻임. 오해 금물!) '코드 쿤스트'의 웃음과 문장을 보고 들었더니 참 마음이 편해졌다. 완전 통잠이었다. 잠에 든 시각은 '나 혼자 산다'가 끝나고 난 후이니 새날 2시가 다 되어갈 즈음이었겠다. 습관대로 새벽녘 눈을 뜰 때까지 푹 잤다. 비록 서너 시간, 혹은 네다섯 시간이었겠지만 푹한 잠이었다.
오늘 아침도 내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 평소 출근 때처럼 눈은 떴다. 한참 후에 울리던 여섯 시 알람을 잠재웠으니 아마 5시 30분 이전에 눈을 뜬 듯싶다. 결국 비몽사몽 간은 계속되었다. 알람 후 제법 살찐 리듬을 덮은 채 잠을 다시 잤다. 8시가 조금 넘어서야 정식으로 눈을 떴다. 이때부터가 새 날이다.
요즘 JTBC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춤꾼들이 내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불속에 누워 있더라도 헛 짓거리는 말자고 본 영상이다. 무엇보다 그 긴 세월을 음지에 묻혀 있다가 본 무대를 사로잡을 수 있게 된 춤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무대는 허튼 1회성 놀이가 아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쏟아내는 몸짓들을 보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확인한다. 그들의 춤에는 인간사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쩌면 그렇게나 내 마음을 잘 알까. 내가 키우는 내 부속물처럼 알고리즘은 작동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나를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님과 만나게 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양자역학'을 말씀하신다. 우주 모든 물상의 최소 단위는 원자다. 박사님은 만날 때마다 말씀하신다. 양자역학이 19세기와 20, 21세기 삶의 현장을 구분하게 했다.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모든 물상이 양자역학으로 생성된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사실 원자는 물상으로 모아질 때에 생명이지 모아지지 않으면 죽음이다. 최근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힘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사실 죽음의 세계가 별다른 것이 아니더라. 죽음은 곧 원자들의 흩어짐이다. 죽음 속에 잠깐 삶이 있을 뿐이다. 내 해석이 박사님의 말씀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잠깐'이라는 것. 언뜻, 얼핏,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으니 뻐꾸기시계의 알림이다. '아홉 시입니다. 이제는 진짜로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둥근 해는 진즉 떴습니다.' 어서 일어나자.
자, 치카치카부터 하고 음양수를 한잔 마시고. 원두커피 알갱이 이십 여 개에 더하기 꿀 한두 스푼 정도로 제조될, 잠시 후에 마실, 오늘 최초의 음식을 미리 떠올려본다. 나는 간헐적 단식 비슷하게 한다. 의도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출발은 1일 2식. 하다 보니 간헐적 단식의 형태 안에 안착하였다. 커피 내음을 떠올려 보니 미리 기분 좋다. 나의 청춘 시절, 매 시간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그것도 모자라 허벅지를 찌르면서 공부했던 때를 떠올리면 찬찬한 기쁨 속에 빠져든다. 누구 그런 시절 없는 사람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을 누구에겐가 자랑하고 싶다. 참 좋다. 그리고 내 좋아하는 커피를 이렇게라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건강에도 훨씬 좋다 하니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음식을 가려서 먹어햐 한다는 것.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지만.
햇빛이 드는 쪽으로 나가 몸을 햇빛 쪽으로 세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자. 어서~
아하, 그래 눈을 뜨고 한 시간 여 이불속 유튜브 영상 시청 시간을 즐겼는데 둘로 끝난 것이 아니었구나. 알고리즘 녀석은 나를 또 '영화' 쪽으로 안내했었지. '유 퀴즈~ - 박경림 편'이었다. 영화 시사회 진행자'라는 타이틀 때문인 듯싶다. 이런저런 그녀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데 '조인성의 멜로 스승'이라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김국진으로부터 배운 연기였다고. 방법이 참 괜찮았다. 읽어 보렴, 다시 읽어보자. 또 한 번 더 읽어 봐. 다시 한번 더 읽어 봐. 이렇게 가다가 어느 순간 김국진이 말한다. 너는 몇 번째 읽었던 것이 가장 마음에 드니? 세 번째요. 아, 그래 그럼 세 번째로 가자. 그렇게 하자. 세 번째처럼 부지런히 하자. 상당한 울림이 왔다. 많은 연습 속에 스스로 만족할 바를 찾아가는 방법. 그래, 세상사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일 텐데 참 괜찮은 방법이다.
오늘도 수컷 매미들이 운다. 끊임없이 우는 것은 아니다. 아마 입추 기운은 아직 가까이 오질 못하나 보다. 여전히 장마 전선 위에 우리 땅은 놓여있는 듯싶다. 여전히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햇볕의 기운은 덜 뭉쳐졌나 보다. 수컷 매미들의 울음은 암컷 매미들이 나무 구멍을 파서 알을 보관하느라 바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일까. 사람보다 낫다고 읊고 싶은데~ 내 옆 사람과 내 옆의 옆의 옆의 옆의 사람들은, 즉 남성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그리고 내 아버지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지만. 물론 내 어머니도 이미~) 어쨌든 어딜 가나 여성들의 삶은, 암컷들의 생은 참 안쓰럽고 안타깝고 애처롭고 가련하고, 그리고 늘 애가 탄다. 애간장이 탔다, 내 어머니는 평생을. 늘 바깥 일로 바쁘셨던 내 아버지. 평생을 자식을 키우는 일로만 사셨던 내 어머니. 내가 이 문단에서 쓰는 '여성'은 단지 내 어머니를 세워둔 채 두고 쓴 것이다. 현대판 단체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과 남성 간의 무엇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쪽으로는 관심도 없다.
나쓰메 쏘세키도 그런다. 근현대의 분기점을 사셨던 분이니 전통이니 고정관념이니 습관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의 책 속에는 지나치게 여성 폄하가 많다. 그제와 어제, 오늘에 걸쳐 읽은 그의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나쓰메 쏘세키는 줄곧 적어놓았다. '쓸모없는 여성'이란다. 설마, 아닐 거야. 이렇게 대놓고 적나라하게 표시하는 그의 여성성은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입양이니 파행이니 재입양 등 그의 어린 시절로 인한 것일까. 아님 그저 당시 사람들의 상식 선의 생활에 근거하여 빌어와 쓴 내용일까. 그가 소설 속 여성에 대해 혹은 소설 속 아내에 대해, 그리고 소설 속 세 딸들에 대해 표현한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대체~. 그러나 책 전체로 봐서는 참 대단한 소설이었다.
대체로 부지런히 보낸 하루였다. 불후의 명곡에는 내 최애 음악인들이 나와 명승부를 펼친 모습에 그만 흥분까지 하였다. 특히 <라포엠>과 <포레스텔라>의 대결에서는 어떤 팀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분간이 서지 않아 난감하였다. 너무 정직한 무대만을 지향하는 <라포엠>이 안쓰러워 오늘 우승은 <라포엠>이길 바랐다. 최종 우승은 <포레스텔라>였다. 참 영리한 팀이다. 성악은 <라포엠>인데 무대와의 합은 <포레스텔라>이다. 팀을 이끄는 조민규의 프로듀싱 실력이 참 대단하다. <라포엠>은 정석에만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현 지향점을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꾸몄으면 한다. 어쨌든 두 팀의 음악에 황홀한 오후였다.
내일 하루는 온전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밑줄 그어 놓은 부분을 옮겨 적어 볼까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자꾸 연필과 화지가 나를 잡아당긴다. 잊지 말아 달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어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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