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하루!
온몸이 참 개운하다. 참 다행이라고 느끼면서 눈을 뜬 시각이 오전 열 시였다. 아, 이런! 어제 그제 얼마나 나를 다그쳤던가. 일찍 일어나자고. 항상 일어나던 시각에 일어나자고. 낮은 결코 길지 않다고. 하고자 하는 일을 매끈하게 해낼 수 있는 시간은 참 짧다고. 작심 일일도 되질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운다. 문제는 '코쿤'이었다. 코드 쿤스트. '쿤스트'는 내 청춘 시절 미학 공부에서 무척 친근해진 낱말이다. 혹 이 낱말 때문에 코드 쿤스트가 좋아진 것일까. 아닌데. 독일어로 '예술'이다. 코드 쿤스트는 '예술 코드'라는 뜻일까.
어젯밤 일기를 올리면서 '내사람 코쿤'을 적었다. 일기 제목으로는 '코드 쿤스트'의 웃음과 문장으로 통잠을 잤다고 올렸다. 밤이 제법 서늘하여 이 문 저 문 모두 몽땅 닫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다. 제아무리 날이 선선해도 여름이다 싶어 거실 문 한쪽을 열어두고 잤다. 아날로그식 종이 일기를 쓰고 무엇을 했던가. 어쩌다가 스르르 잠에 들었는데 코드 쿤스트가 나타났다.
열어둔 거실 문으로 스윽 얼굴을 내밀고 내게 속삭였다. 코쿤이었다. 그 특유의 웃음을 한 가닥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쩐다고 나를 당신의 일기 제목으로 사용했나요?' 퍼뜩 잠을 깼다. 정해진 절차인 양 컴퓨터를 열었다. 나는 거의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는다. 화면만 끈다. 일어나서 움직인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어젯밤에는 그 습관을 따르지 않았던가. 어쨌든 블로그 글을 확인하고 올린 글을 다시 읽었다.
'내사람'이 문제였다. '내사랑'이었던가. 그것은 아니리라. 설마 하니. 나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니거든. 어느 누구에게 쉽게 '사랑' 종류의 언어는 사용한 적이 없거든. 현실적으로 내 생활의 역사를 함께 사는 이들에게는 말이다. 말하자면 저 멀리 대양을 건너거나 세계 최대의 산맥을 넘어서야만 만나는 이들에게는 가끔 접두어로 사용하기는 한다. '내사랑 샐리 호킨스', '내사랑 에단 호크' 등. 일기로 올린 글을 열었다. '수정'을 클릭했다. 이미 글은 열 명 가까이 읽은 후였다. 설명을 붙였다. '내사람' 혹은 '내사랑'에. 요즈음 나를 사로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제 저녁 '수면 영상'도 없이 잠에 들지 않았던가 싶어 수면 영상을 작동시키지 않았다. 영원히 수면 영상으로만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싶어서이다. 내 나이 여든에도 수면 영상으로 잠에 들어야 한다면. 하,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냐.
신기한 일이다. 잠이 오지 않으면 당연히 '그래, 안 되는구나. 영상을 켜서 자자'하고 켜면 될 것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수면 영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차라리 영화를 볼까 하는 생각에만 머물렀다가 아니다 하다가 시각은 새벽으로 달음박질을 하고 있었다.
내 불면을 위한 하모니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빗소리가 합류하였다. 소나기성 장대비가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엄청나게 급한 모양새로 한밤중 세속을 강타했다. 이는 특이성을 지녔으므로 그 특이성은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건이다. 소나기성 장대비가 나를 택했다. 코로나 19 이후 내 청각에 생긴 이명은 꾸준히 내 밤을 혼연일체가 되어 살고 있었다. 가을바람을 연상시키는 이상 기후를 드러내던 7월 장마기의 야릇한 공기도 제 자리를 확보했다. 날 선 수직의 기운으로 더해진 빗소리는 이중주를 관현악단으로 확대시켰다.
악보는 1단에서 2단으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3단 악보로 편성되었다. 탄탄한 화음이 받쳐주는데 뜻밖에도 내 안에서만 드러냄이 가능한 이명 현상이었다. 요 녀석의 힘이 은근히 강하나 보다. 내 양쪽 귀 안에서 자생되어 두 귀의 둘레에만 머무는 이명은 바람이 부리는 조화 때문인지 벌써 가을을 데리고 왔다. 귀뚜리 소리와 각종 벌레들의 합창이 이명을 채웠다. 2단은 7월 하순의 기류를 형성하는 돌연변이성 냄새들의 화합이었다. 역시 가을 냄새였다. 추국 꽃잎들이 층층이 쌓여 간질간질한 리듬을 꾸며 장식했다. 그래도 가을 실루엣이라고 내 집 앞 저 건너 큰길 양쪽에 줄 지어 늘어선 코스모스들이 살랑살랑 높이의 변화가 적은 가락을 구성하였다. 3단으로는 오늘의 주인공은 나라는 듯 더욱 거세진 장대비가 세상과 사람을 윽박질렀다.
사람은 고요히 큰 눈을 작게 구부려 관현악단의 연주를 감상하였다. 거실 문 옆에서는 마른 코쿤이 거실과 베란다를 구분하는 거대한 창 옆에 쭈그려 앉아 곡을 만들고 있었을 게다. 일상을 음악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재능인지라 그의 오늘 곡은 '7월의 밤을 살아낸 관현악' 쯤 될까.
'차라리 영화라도 한편 같이 볼까요.'
'괜찮아요, 이제.'
'미안해요, 허락 없이 이름을 사용했네요'.
'걱정 말아요, 이제.'
'제 글은 읽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요.'
'됐어요. 당신의 불면을 함께 지새웠어요. 내 이름 석 자로 숙면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참 불쌍한 당신!'
서서히 연주회장의 무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장대비는 장맛비의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고서는 오늘의 생을 마감하였다.
오락가락 수만 개의 생각들이 내 뇌리를 다녀가는데 여전히 수면 영상을 켤 것은 떠올리질 못했다. 조성진을 들을까, 임윤찬을 들을까. 아님 오랜만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을까 싶어 휴대폰을 찾았다. 손은 검은 어두움을 더듬거린다 싶었는데 히뿌옇게 베란다 밖 풍경이 어른거렸다. 폰을 보니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마침내 내 정신은 수면 세계를 찾았으나 여전히 몰입도는 10점을 채 넘지 못하였다.
자다 깨다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여섯 시 알람이 울었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만졌다. 다시 잠들었다. 서너 번 더 세상 속에 있다가 저곳으로 갔다가를 반복했다.
'그래,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야. 일요이잖아. 그리고~'
내 주문은 내 육신을 안쓰럽게 쓰다듬었고 드디어 깊은 골짜기로 내 가련한 영은 숨어들었다. 다행히 골짜기의 바닥은 그리 거칠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푹신한 솜을 준비한 듯, 역류성 식도염 중인 사람이면 잠자리에서 응당 갖추어야 하는 드높은 베개의 고꾸라짐도 개의치 않고 세 시간을 넘게 꿈나라였다.
그림은커녕 미술 연필도 만지지 않았다. 드로잉 북은 며칠째 방바닥에 내팽개친 채 버려져 있다.
영화 아니 다큐 '식코'를 또 봤다.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참 징그럽다.
유튜브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 강의를 둘 들었던가, 셋 들었던가. 고마운 최준영 박사님. 어서 돈 좀 더 벌어서 최준영 박사님 강의에 좀 쏘고 싶다. 이런 지저분한 합리화, 변명! 지금 내 머리에 남아있는 강의 내용을 몇 줄 요약해 보자. 표현은 내 방식으로!
강의 하나
- 튀르키에(터키)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의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정학적인 것이 크다. 현 튀르키에의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홍반장처럼 살아가면서 튀르키에의 지정학적 이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 튀르키에와 이란, 튀르키에와 이스라엘, 튀르키에와 러시아, 튀르키에와 사우리아라비아, 튀르키에와 카타르, 튀르키에와 미국의 이랬다 저랬다 식 외교 관계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셨다.
강의 둘
(자세하게 적었으나 Ctrl을 잘못 사용하여 날아가 버리다. 에이! 이럴 때마다 나는 컴퓨터가 무지 싫다. 나보다 훨씬 못한 녀석!)
- FDA(미국)가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힘을 얻은 것은 임산부의 입덧 방지를 위한 약 '탈리도마이드(독일산?)'의 부작용 때문이다.
- FDA(미국)가 힘을 얻자 미국에서는 임상시험에 까다로운 규제가 시작되었다. 신약은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약 20년이 걸린다.
- 심한 규제는 미국 제약회사들에게 단기간에 이윤을 최대화하는 비법을 연구하게 하였다.
- 미국은 특허, 즉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도 전 세계를 미국화하고 있다.
- 영화 <식코>를 보라. 미국의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볼 수 있다. 끔찍한. 어느 당뇨병 약이 우리나라에서는 27000원 정도인데 미국에서는 700000원이다. 등
강의 셋
일본의 유곽 사회와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황후, 푸이의 여동생들의 삶을 들었다. 기록할 것까지는 없다. 모두 다 아는 내용이므로.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독후감을 처음 부분만 쓰다. 글 속 기억하고 싶은 문장 표현도 아주 조금 베끼다.
실내운동은 제대로 했다. 오랜만에!
집에서 만든 요플레 덕분일까. 속이 참 편안하다. 기분 좋다. 내일은 꼭 제대로 일어나자.
바쁘게 썼다. 자정 전에 올리려고 부지런히 썼다. 아마 오,탈자 등 문제가 많은 것이다. 일단 올리고. 일단 오늘은 제발 빨리 자기로.
온 세상이여.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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