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외칠 날들이 시작된다.
다음 주부터 주중 늘 해댈 말의 문장이다.
'숨통 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집안 모든 화초에 물을 주는 날. 크고 작은 화분이 300개가 넘는 듯싶다. 전체 화분에 물을 주는 날마다 나는 뇌까린다. 괜히 엄마를 모셔온다.
'엄마, 나 미친 것 아닌가?'
하늘에 계신 나의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실까. 정말이지 가끔 화분에 물을 주는 날이면 혹 내가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친 김에 원망할 사람을 찾는다. '미니멀'을 외치는 남자는 어쩌자고 내가 이 많은 화분을 만들도록 그만두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을까. 화분의 수가 늘어난 것은 가지치기(삽목) 후 잘린 가지들을 버리지 못한 채 새 생명체를 만들어대는 나의 습관 때문이다. 아, 딱 한 번 술 김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베란다를 돌려줘. 나, 원목의 향을 느끼면서 베란다에서 여름 밤을 자고 싶어. 우리 라인 각 집마다 셋 씩만 나눠주면 되겠다. 내가 각 집마다 다 나를게."
시골 출신인 그는 토방이 그립단다.
통화할 때마다 한양 땅 고가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 언니가 읊어댄다.
"제발 화분 좀 어찌 해버려라. 제발 좀 버려."
"야, 봄이라고 또 화원에 가는 것 아니냐? 멈춰라. 가지 말아라."
"내가 이번에 내려가면 꼭 너네 집 화분 좀 정리할란다. 말리지 말아라."
며칠 베란다 정원으로 인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서 50여 개 이상의 화분을 버렸다. 요것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죄를 지은 것 같다. 버려진 녀석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리려면서 왜 내게 생명을 줬던 거요."
오늘은 복토삼아 배양토 흙을 화분마다 얹어줬다. 화분 수를 절대로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새 생명체로 자란 '율마'를 보고는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제법 자라 묘목을 넘어섰다고 여겨지는 세 녀석을 새집에 안주시켰다. '제라늄' 둘과 지난해 사 뒀던 채 있던 '줄리아 페페'와 '청페페' 역시 분갈이를 해 줬다. 다시 화분 셋이 늘었다. 물주기까지 끝내고 나니 오후 세 시였다.
아, 내일부터 또 출근이구나. 그제와 어제 그리고 오늘, 3일 동안 맛본 휴일 아침의 여유를 당분간 못 만나리라. 내일부터는 쉼 없이 일하면서 가끔 내게 숨통 트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절대겠지.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고 '진격의 거인'에서 말했다. 일에 이기자. 시간에 이기고 생활에 이기고 사람에 이기자.
뭐 별것 있냐.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들 차분히 해내면 되겠지. 자, 나를 이고 가는 시간에 감사하자. 나의 생이 되어주는 매일의 생활에 고마워하자.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이들에게 고마워하자.
또 "진격의 거인"에서 말한 문장이다.
'우리의 선택이 만든 세상이다'
그래, 나의 선택이 만든 세상이지 않은가. 견뎌 내야지. 숨통 좀 트자고 중얼거리면서 5일을 살고 나면 또 이틀 휴일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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