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짖는다고 좋은 개라 할 수 없고~
지난 주 화요일이었던가. 며칠 전 일터 후배가 점심을 함께 먹고싶다고 했다.
'오, 고마워라. 이 늙은 여인과 점심 함께 먹기를 택하다니.'
흔쾌히 답했다. 당연지사. 그러마, 그러자고, 좋다, 좋다 또 좋다고.
가볍게, 아니 내 정신의 귀퉁이 한 쪽에 신비스러움과 두려움이 믹서된 마음 한 봉지를 눌러 앉혀서 후배의 차를 타고 외식하러 나갔다.
고마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바쁘다. 내 아이를 봐도 그렇다. 뭐가 그리 바쁜지 서식지에 좀 다녀가겠다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서너 번 다녀가고 싶다는 주문을 했다가 이제는 멈췄다.
'그래, 이제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를 부르기 전에는 내가 나서지 말자.'
젊은이들이 참 어렵다고 여기던 찰나 이런 행사가 만들어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실 평소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였다. 그림 읽기, 독서 등 우리는 공통 분모가 많다. 일터 업무도 연륜이 필요한 것은 내가 안내를 해 주고 디지털적 요소는 내가 도움을 받는다.
언젠가 한 번 그녀에게 아름다운 뷰를 지닌 곳에 가서 상큼한 브런치를 함께 즐기고 싶었다. 내가 사겠노라며 그녀를 데리고 브런치 가게에 갔다. 내가 가는 곳이라면 음식의 맛을 물론 실내 분위기가 좋다. 나는 쉬운 여자가 아니어서 특징을 지니지 못한 곳에서는 음식을 하지 않는다.
2인 기본에 메뉴 한 가지를 더 넣어 시켰다. 맛있게 먹었다. 말끔하게, 남김없이 먹지 못한 것은 순전히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데 돌아오는 길에 떠올려 보니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약 80%는 내가 말했다는 것. 줄창 이것저것 제대로 주제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말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줄줄줄줄, 끊임없이 말을 한 것이다. 마치 오늘 식사에서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차에서 내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식사를 한 번 더 해야겠다. 그때는 자기만 말을 하기로!"
지난해 어느 날 남자가 내게 보내왔던 문장이 떠올랐다. "장자"의 <서무귀편>에서 취한 글귀라고 했다. 새겨보라면서 톡으로 보내왔던 문장이었다. 마치 오늘의 나를 예견하여 건네준 내용인 듯싶다. 밥 한 끼 사면서 일종의 갑질을 한 셈이다. 반성한다.
구불이선폐위량(狗不以善吠爲良)
인불이선언위현(人不以善言爲賢)
잘 짖는다고 좋은 개라 할 수 없고
말을 잘한다고 현인이라 할 수 없다.
- "장자"의 <서무귀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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