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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그제가 정월 대보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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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가 정월 대보름 (正月 大보름)이었구나.

 

그제 달집태우기를 했다고 지인이 보내온 영상. 다행이다. 아직 이런 행사를 하는 곳이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그제가 정월 대보름 (正月 大보름)이었구나.

 

그제, 아들딸과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주에게 보낼 오곡밥을 제대로 짓기 위해 연습을 했다던 언니가 그랬다.

“아이, 설날만 중요한 것이 아니어야. 우리 엄마하고 아부지를 생각해 봐라. 정월 대보름이면 설보다 더 바빴어야. 지금 같으면 견과류지야. 부럼이라고 했냐? 아부지는 이빨 튼튼하게 할 부럼이 될 음식 마련하고 엄니는 온갖 나물들을 해 와서 무치고 오곡밥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야. 오곡밥이며 나물들이 얼마나 맛있었냐. 먹고 싶다야. 손주 생기고 나니 딱 우리 엄마가 하던 일을 내 손주에게 해줘야겄다 싶더라야. 부리나케 농협 하나로 마트를 갔다 왔다. 우리 아부지가 그랬어야. 정월 대보름이야말로 끝과 시작이라고. 끝임과 동시에 시작이라고 말이여.”

 

정월 대보름이 왜 끝과 시작? 시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는데 왜 ‘끝’도 될까. 찬찬히 그 이유를 좀 살펴보자.

 

올해는 청룡의 해이다. 띠가 그렇다. 용띠. ‘푸른 용의 해’ 육십 간지의 41번째로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 ‘청룡(靑龍)’을 의미한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해이다. ‘청룡(靑龍)’은 양기가 너무 세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오곡밥보다는 올해는 약밥을 먹는 것이 좋단다.

 

해는 양, 달은 음. 올해는 음을 상징하는 달을 많이 보고 선물도 음의 수인 짝수로 하란다. 올해는 대박 날 사람은 완전 대박이 나는 해이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좋고

마음 서운했던 것들 다 비우고 내가 먼저 다가서고. 나 같은 사람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뭐, 내가 조용히 살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마는~)

 

정월의 정은 '바를 정'자를 쓰는데 '처음'이라는 뜻도 있다. 만물이 꽉 들어찬다는 보름, 그 보름의 처음이니 정월 대보름은 처음이지. 한데 왜 “끝‘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것일까. 아마 이는 불교에서 나온 말이지 않을까 싶다. 정월 대보름은 승려의 동안거가 끝나는 날이다. 조선 시대에 배척을 받은 불교인데 우리 생활에 무슨 영향이 있었겠는가 생각하지만 민간신앙 속 불교는 신라나 고려의 힘 못지않은 크기였다고 여겨진다. 내 유년 시절의 불교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예전만 해도 찰밥 먹고 동네 사람 모여 달집태우기 행사도 하곤 했었지. 쥐불놀이라고 했던가. 내 어릴 적에도 마을의 수호신이라 불릴 만큼 많은 나이를 먹은 팽나무에 마을의 한 해 안녕을 기원하는 글을 써서 붙이고 그 주변에서 쥐불놀이했던 기억이 있다. 대보름 전야였을까?

 

한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지. 노련한 나이대의 가정주부인 내가 대보름이라고 한 일은 딱 한 가지일 뿐이구나. 이곳 블로그에 이렇게 ‘정월 대보름’에 관한 글을 쓰는 것뿐. 나도 언니처럼 내 아이 결혼하여 새 가정이 시작되면 오곡밥 한 줄 만들어 권하기라도 하게 될까. 장담하건대 게으른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동양에서 보름달은 풍요롭고 희망을 주는 달이다. 일터 새신랑(결혼을 한 지 4년이 지났으니 결코 새신랑도 아니다마는~)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하길래 수시 보름날이면 저녁 뒷산에 올라 달의 기운을 머금으라고 했더니 세상에나 아이가 생겼단다. 사실 이런 경우를 나는 서너 번은 만났던 듯싶다. 달은 잉태의 기운을 품고 있기도 하다고 어디서 읽고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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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제 써 뒀던 일기였다. 시제만 일부 수정했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아마 영화를 보다가 내 마음속 정리가 되지 못해 자정 무렵 방황했던 듯싶다. 엉겹결에 새 글 얼른 써서 올렸겠지.

 

정월 대보름, 파이팅!!!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올린다.

 

부럼은 정월 대보름 때 먹는 여러 음식이다. 이로 깨물어 먹는 호두, 땅콩, 잣이나 밤 같은 견과류들을 말한다.

굳고 단단한 껍질이나 알갱이를 지닌 견과류를 깨물어 먹었던 것은 피부 이곳저곳 부스럼이 한 해 동안 나지 않기를 바랐던 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부스럼'과 '부럼'의 각 단어의 형태가 서로 유사한 까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럼 곧 부스럼은 본래 두 단어가 중세 국어 시기 '브ᇫ다(→ 붓다)'로부터 파생된 단어란다. 이것이 '브ᅀᅳ름'에서 각각 분화를 겪은 후 형성된 언어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부스럼을 막기 위해 부럼을 먹는다는 의미는 후대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더 오래전 과거에는 단단한 음식으로 엿을 이로 씹으며 치아를 단련코자 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한 해의 부스럼을 막기 위한 조심스러운 행위로 조선 시대 즈음에 그 의미가 변화함과 동시에 정착화한 것이다.

 

부스럼’, '부럼'은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사라져 갈 위험이 짙다. 안타깝다. 많이들 사용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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