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인데 식물이 궁금해서 출근하였다.
쉬는 날이다. 간밤 서툰 잠이었다. 철저하게 자기 계획을 실천하면서 사는 남자는 한학(요즘엔 무슨 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다.)에 몰두하는 듯하더니 마라톤 관련 영상을 떠들어보고는 하루를 정리했다. 열한 시가 다 되어간다 싶을 때 수면에 들었다. 나는 한참 일을 할 때다.
잠시 후 갑자기 뒷 베란다 김치 냉장고 옆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남자의 움직임이려니 했다. 오직 어느 한 곳에만 몰두할 때면 나는 사람 들고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안방 쪽으로 귀를 옮기니 이번에는 분명 남자가 책방에서 뭔가를 가져오려고 들어간 듯싶어졌다. 거칠게 물건을 옮겨 움직이는 모양새의 의태어가 들렸다.
"뭐 해? 잠 안 자고? 뭘 찾는 거야? 내일 찾아. 이런저런 소리. 나, 너무 무섭단 말이야."
한참을 기다려도 남자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었다. 태풍 전초전이었다.
소리에 민감한 나는 밤새 바스락거리면서 자연이 일으키는 바람에 맞대응했다. 눈을 뜨고 보니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어제 낮에 마신 한 잔 술은 이미 명을 다 한 후였다. 밤새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마 삼십 분 간격으로 눈을 떴으리라. 잠을 깰 때마다 하나의 주제씩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평소 불면의 밤이면 하던 습관대로. 새날이 다 되어갈 무렵 갑자기 떠오르는 주제가 있었다. 일터에서 키우는 화초였다.
어제 집에서 기르는 식물 하나가 몽땅 먹인 물로 줄기가 부러졌다. 생명을 다하는 듯한 관엽식물. 녀석, 잎의 온몸에 또렷하게 있는 무늬가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이 녀석은 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만 명을 다했다. 내내 건조 상태로 뒀다가 쉬는 날을 맞아 물 주기를 했더니 그만 온몸이 자지러졌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되는 잎도 흙에 꽂고 아직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줄기도 잘라 흙에 꽂았는데 어느 것 하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이에 이어 나는 일터 화초들 생각에 꽂힌 것.
되도록 건조하게 키우는 나의 화초들. 다른 이들에 비해 쉽게 저세상으로 보내는 화초가 덜한 편이다. 물론 여름이면 두셋 정도는 꼭 보낸다. 마음 아프다. 어제 생명을 다한 듯싶은 녀석은 긴 길을 사서 안고 왔던 녀석이다. 되도록 새 물건을 사지 말자고 사는데 불쑥 우체국을 지난달 어느 날. 평소 눈여겨봤던 화원을 들렀고 나는 꽤 되는 길을 사서 안고 왔던 아이들 중 하나. 다행히 함께 사 들고 왔던 나머지 녀석 넷은 건강하다. 어쨌든 이 녀석이 일터 화초 생각을 하게 했고 일터 녀석들이 혹 말라 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꽂힌 것. 급히 불안해졌다.
사람 마음이 불안한 것이 있어 해소해야 할라치면 움직여야 한다.
'덜컹 덜커덩, 후두두두두두, 씌욱'
새날 맞이하는 의식을 곱게 이불 개어 올리기로 치르고 바깥을 살피는데 온갖 의성어 모임으로 축제를 벌이는 듯했다. 누구 저 의성어들의 힘을 함께 제어하거나 숨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밤새 세상을 덜컹거리던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해졌다. 일터에서 키우는 식물들의 생명이 급하게 궁금해졌다. 내가 녀석들에게 물을 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십일? 삼십일?
나는 어디를 가나 식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터에서도 화초를 몇 두고 기른다. 세상, 별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관엽식물들을 키운다. 스킨다부스, 호야, 관음죽, 개운죽, 아레카야자 등. 열 가까이 된다. 4년째 한 곳에서 키운다. 녀석들은 대체로 이 주일에 한번 정도씩 물을 주면 된다. 그렇게 습관을 들인다. 한데, 7월에 들자 긴 장마라 하여 물 주기를 걸렀던 듯. 8월이 되어서는 물 주기를 잊어버린 듯. 가야 한다. 쉬는 날이지만 챙길 것은 챙기고 와야 한다. 한데 바깥 풍경이 무섭다. 몇 번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간다.
'궁금하면, 미심쩍으면, 불안하면, 행하는 것이 낫지.'
아침에 눈을 떠서 남자에게 이야기했더니 다녀오란다. 아직 태풍은 시작이다. 가자. 집을 나선 것이다. 바람을 뚫고 어서 출근하였다. 비공식적 출근. 가서 화초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물만 주고 돌아오는 것. 베란다 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다행히 바람은 평소 비바람 치는 날에 맞는 정도. 빗방울이 제법 너른 너비를 자랑하면서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진다. 출근 시간을 조금 지난 시각. 사람 두셋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워커 신는 것을 잊었다. 인터넷상의 일기예보는 분명 열 시 이후에 비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나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툭툭 왕방울 빗방울이다. 바쁜 걸음으로, 최 단거리로 걸었다. 조용조용, 사뿐사뿐. 누구에게 들키지 않게 재빨리 4층으로 올라갔다. 녀석들은 다행히 힘만 쭉 빠진 상태였다.
'오직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인간들만 궁금해하고 살았구나. 미안. 그런데도 이렇게 살아줘서 미안.'
돌아서 나오면서 물을 줬던 날을 떠올려보니 7월 중순께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자기 생명을 잘 지키고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장대비가 내렸다. 옷도 운동화도 몽땅 젖었다. 온몸에 냉수마찰을 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시원했다. 집에 돌아와 젖은 운동화를 벗지 않고 그대로 샤워기 앞에 섰다. 몸에 걸쳤던 모든 것들을 세척하여 널었다. 운동화도 빨아서 널었다. 오늘 밤은 잠을 잘 잘 수 있을 듯싶다. 시원하다.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우리 엄마 일을 다 마친 후 부엌에서 그릇 정리까지 하시면 마침내 몸을 씻고 들어와서는 그 짠한 몸 뉘면서 하시던 말씀이 었었다. '시워~원, 하다.'
쉬는 날. 오늘 계획한 대로 한 일이 현재 아무것도 없다. 유튜브로 강의 듣기 몇을 했나? 독서도, 캘리그래피 그리기도, 듣고 있는 강의 듣기도, 그림 그리기도. 오늘은 한 것이 없다. 그림은 인물의 형태만 그리다가 멈췄다. 아,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한 일이 있구나. 실내체조! 이렇게 블로그 글쓰기를 하고 저녁을 몽땅 먹었으니 영화를 보면서 운동을 좀 더 하자. 책 일백 페이지 읽기까지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후에는 또 다른 일로 나가 일을 해야만 했다.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딱 날을 잡아서 일이 만들어져 내려왔다. 마치 나 쉬는 것을 못 보겠다는 듯이 세상이 움직였다. 동사무소에 들러 서류를 뽑아야 했고 우체국에 들러 등기우편까지 보내고 나니 날은 금방 수그러지고 말았다. 세상 사는 것이 참~, 그렇고 그렇다.
제7호 태풍 '카눈(KHANUN)'은 태국에서 명명하였단다. 열대 과일 이름이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데 나는 먹어본 적이 없다. 어서 와서 잠깐만 놀다가 훠이훠이, 어서 날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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