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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쏜살같이 날아가 버린 일요일이여!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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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이 날아가 버린 일요일이여! 그러나~

 

 

신랑 신부 덕분에 다시 살아난 베고니아 한 종

 

 

덧없다. 현재 정확히 오후 1시 18분. 드디어 컴퓨터를 열었다. 아마 9시쯤 하루의 움직임을 시작했을 것이다. 화초에 물주기. 오늘은 물을 좋아하는 녀석들만 물을 주는 날이다. 어제 쓴 일기도 있어서 화초 몇을 다듬은 후 물을 줬다. 여전히 '중용'을 체득하지 못하여 물이 넘쳐 바닥에 흐른다. 제발 목재 마룻바닥 위에서는 화분을 기르지 말라고 외치던 어느 마룻바닥 설비업자의 말이 떠오른다.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진즉 좀 들었더라면. 

 

 

해마다 꽃 피우지만 눈빛 한번 제대로 주지 않은 주인이 얼마나 미웠을고. 이름 모르는 난!

 

 

흐릿한 눈으로 조심스레 마루를 뒤덮은 물을 닦아낸다. '바보야, 바보야. 어찌 이리 매사 욕심이냐.' 다시 또 한번 돌아보면서 전잎이며 시든 잎들을 주워 쓰레기통에 담는다. 물 주기를 끝내기까지 네 시간여 지났다. 이를 어쩐담. 주말에는 꼭 그림 한 장을 그리려니 했는데 시간은 투명 날개를 달고서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미술 연필 한번 들어보지 못한 채 이번 주는 마치는 것인가. 내가 만질 수 있는 촉감 중 최고 수위 몇 안에 드는 화지 만지기가 이번 주에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인가.

 

 

가을 입문기의 제라늄 1

 

 

물을 주면서 허리춤에 찬 토황토 벨트와 이어폰을 이용하여 유튜브 듣기를 병행했다. 늘 그런 것처럼. 알랭 드 보통의 '현대인은 왜 불안 속에 살아가는가'에 대한 강의 둘과 서인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 대한 강의 둘을 들었다. 불안의 요소 다섯과 해결책 다섯, 행복을 찾기 방법은 무엇인가. 강의는 극과 극을 달렸다. 허리춤에서 저 혼자 유튜브 프로그램을 돌리는 구글의 AI에게 감읍(?)하였다. 불안과 행복이라니! 알랭 드 보통의 행복 강의를 돌아본다. 

 

 

가을 입문기 제라늄 2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다섯 요소로 애정결핍, 속물 근성, 서슬 시퍼런 예리함으로 개인에게 강요하는 권력의 기대, 압박성 능력주의, 사회가 우리를 쥐고 뛰면서 부여하는 불확실성을 말한다. 고용주, 세계 경제, 현대사회의 틀 등이 우리에게 내세우는 것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한다. 사회며 그 사회에 뿌리내린 제도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이윤 추구를 위한 도구이다. 보다 용이하게 사용하고자 우리를 감시한다. 이윤 창출의 개인에 불과하다. 제도와 사회에 기대하지 말라. 사회가 내게 주는 애정에 주목한 채 징징거리지 말라. 사회가 내게 주는 애정은 목표 실현을 위한 사탕발림이다. 공동체가 해석하는 행복의 기준에 부응하지 말라. 제도가 원하는 것은 자기네 틀에 꽉 끼울 수 있는 무지막지한 재능이다. 우리는 대부분 소소한 재능을 지니고서 자기 만족을 할 뿐이다. 우리네 얕은 지능은 제도가 원하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권력이 추구하는 권위 위에  씌워진 능력일 뿐이다. 제도가 원하는 재능을 삶의 기준으로 두지 말라. 

 

예술에 빠지기, 철학, 정치, 종교, 보헤미아는 불안 타개의 해결책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켜라. 예술을 통해 각자 자기 자시니의 삶을 깊게 이해하라. '나의 철학'을 정립하라. 스스로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자. 정치가 요구하는 지위에 연연해하지 말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평가하라. 그리고 보헤미아이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강렬한 삶을 살라. 타인의 눈, 사회와 제도, 권력이 '불쏘시개'를 찾기 위해 보내는 금속성 거친 빛을 무시하라. 스스로 존엄성을 발견하라, 스스로 사랑하라. 영적으로 우주를 평가하고 자유를 생활 근간으로 살라. 빈곤까지도 품고 살아라. 

 

가을 입문기 베란다정원의 장미 1

 

 

 

도대체 이 분의 뇌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꾸준히 궁금하게 하는 정박 선생님과 보다 보다 처음 봤다 싶은, 기가 막힌 천재형 프로그램 진행자인 정영진 님의 '일당백'이었다. 내 좋아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하는 노동은 전혀 힘들지 않다. 나를 만능 엔터테이너로 만든다. 나의 뇌는 늘 간절한, 지식 포획으로 기쁨 충만해진다. 손과 몸으로는 충분히 필요 노동을 해치울 수 있다. 세월은 나를 버리는데 인문학 강의 듣기와 함께하는 노동은 나를 마구 움직이게 한다. 대체로 효과적인 시간 운영이라고 느끼게 한다. 

 

가을 입문기 베란다 정원의 장미 2

 

 

점심.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전짓살에 두부를 얹은 찜이 주메뉴였다. 오전의 노동이 무려 200그램 가까이 몸무게를 소진시켰다. 몸무게가 줄었음을 확인하고 보니 엄청난 양의 음식이 입 속으로 들어갔다. 최근 무슨 일인지 아랫배만 볼록 나온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무슨 질병인가 싶어 걱정을 표했더니 언니가 하는 말이 그랬다. "그 나이에 나오는 것이 아랫배지 뭐가 나올 것이 있겠냐. 니 몸매면 다행이다. 워낙 살이 없으니 배만 나온 것 같지. 나이 들면 몸무게도 좀 나가야 힘이 생긴다. 많이 먹어라, 먹어라."

 

소화를 위해 페놀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을 조금 보다가 컴퓨터 앞에 다시 섰다. 점심 식사 도중 떠올랐던 글감을 잊고 말았다. 기억나지 않아 부엌과 식탁을 오간다. 되도록이면 안 먹어야 하는 식빵을 네 쪽이나 먹었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메모지에 적어두거나 컴퓨터에 입력했을 터인데 당시 식탐이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어서 먹고 가 쓰려니 했던 것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점심 때의 자세로 한참 식탁 앞에 앉아 보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슬픔이여. 나를 좀 안쓰럽게 여겨달라. 굉장한 주제였는데.

 

 

쏜살같이 날아가 버린 일요일이여! 그러나~, 두 편의 영화(한 편은 일기 끝내고 마저 볼 예정)와 불안 제거 방법이며 행복의 기준에 대한 강의를 들은 것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날이었다. 지금은 '현대사회의 종말'을 듣고 있다. 알고리즘이 고른 강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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