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리웠던 그녀!
인덕(人德).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내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될 때 흔히 사용하는 낱말이다.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 내게 베푼 덕을 입음이다. 물심양면으로 심심한 ( 이 낱말에 짙은 농도를 부여한 이유를 뭇 사람들은 알리라.)사의를 표하고 싶은 상황이 뜻밖에 주어질 때 상대를 향해 사용하곤 한다. 일종의 겸손이자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좀 살펴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인덕이라는 낱말을 줄곧 내 입에 달게 했던 여인. 한 여인을 만났다. 내게 '인덕'이라는 정의를 새삼 가슴에 새기게 했던 여인과 상봉했다. 오십 년은 묵은 듯, 잔 골 굵은 골 그득한 홍두깨에 꽃이 핀 격. 너무 뜻밖이라서 얼떨떨하기조차 했다.
출장이었다. 프로젝트 현장 적용 발표일인 오늘, 오전에 출장이라니. 찰떡 바로 만들어 팔만큼 제대로 된 반죽이 되어 있을지라도 떡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침 한 방울, 땀 한 방울, 반죽 뒤집으면서 내는, 용쓰는 소리 한 가락, 손가락 움직임 몇 번, 반죽하는 동안 몸 움직임의 정도 등 순간의 맛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오만 가지이다. 세상사,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법. 세상에나 이 큰 나의 행사일, 오전에 출장을 다녀와서 점심 식사 후 바로 발표해야 할 시간. 쌍욕이 나올 법한 사건이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몰매, 뭇매, 물매. 한꺼번에 맞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몰매, 뭇매, 물매는 같은 뜻의 낱말로 셋 다 똑같은 자리에 사용할 수 있다). 내일부터는 해방이다. 내 멋대로 살 수 있다. 두 입술 사이 지퍼를 여러 번 열고 닫았다.
출장은 감독 겸 보조 출연 역할이었다. 돌아갈 시간에 비 올 확률이 높다는 일기예보에 겁을 잔뜩 먹고 재빨리 진행하였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함께 온다니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우리나라에는 6일에 그 기운이 상륙한다는 기사는 출장지에서야 읽었다. 의외로 순조롭게 일이 풀렸다. 색다른 공간, 신문물이 응집된 곳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함께 갔던 인물들의 행동은 적극적이고 창조적이었다. 슥슥 싹싹 일은 제대로 진행되었다. 아무 탈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장지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서 돌아가 오후 장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비바람 속에서도 날쌘 발걸음이었다.
내 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눈. 오른쪽 눈동자가 왼쪽 눈동자보다 두 배는 큰, 커다란 난시, 기이한 근시를 안고 사는, 신비의 눈이다. 땡그런 눈, 겉모습으로 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을 것 같은 내 눈의 시력은 그러나, 완전 사이비이다. 특별난 시력을 자랑한다. 출장지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거구의 한 여인네가 둠벙둠벙 걸어왔다. 비가 제법 내리는데 우산도 없이 걸어오는 것을 보니 분명 이곳 근무자인 듯싶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녀의 몸이 향하는 점은 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아, 몇 걸음이나 남았을까. 귀한 내 눈은 서로 만나게 되는 접점을 서너 걸음 남겨두고서야 그녀를 알아봤다. 그녀. 내게 '사람은 사람이 있어 산다'는 철학을 심어주었던 그녀, 그녀였다.
그녀는 거구이다. 키도 듬썩 크고 몸집도 튼실하며 부피도 푸짐하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 그녀를 만난 것은 근무지를 옮겼던 6년 전 그곳이었다. 그곳은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어 업무 처리를 하기에는 한참 시간이 필요할 듯한 신설이었다. 근무자는 너나 할 것 없이 야간 근무를 해야 했다. 그나마 나는 6개월이 지난 뒤 뛰어든 경우. 겉으로는 앞 사람들보다 해내야 할 업무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그러나 뒤늦게 합류했다는 이유로 일감이 내게 몰아졌다.(의도한 것은 아니겠지.) 내 앞에는 눈치 코치 다 보면서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었다. 이때의 '일'은 내가 전문적으로 해야 할 정식 업무 이외의 잡것들을 말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말이다.
어떤 이도 내게 와서 서툴고 익숙하지 못한 행태에 동정심도 베풀어주지 않았다. 그들도 여전히 바빴다.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일이 있더라도 정확하게 이름을 먼저 불러주고 인사를 나눌 수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근무하는데도 정을 담을 상견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총 책임자가 문제였다. 지니고 있는 재량이 넉넉하질 못했다.
그때 그녀가 내 곁에 왔다. 그녀는 첫 출발 부대였다. 그녀는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늦은 걸음이지만 하다 보면 만리 길 끝도 눈 앞에 있을 것이라는 따뜻함이었다. 그녀에게 가면 만사가 쉬워졌다. 온갖 일의 해결책이 눈 앞에 놓여졌다. '해볼게요.' '괜찮아요.' '어쩌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 말고 제게 보내주세요.' '어떻게든 해봐야지요.' 그녀는 모든 근무자들의 업무 보조를 맡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수십 명의 일을 보조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항상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그 많은 일들에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있어 제아무리 미궁 속 일이 주어지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와 보낸 4년, 그녀 없는 나는 허드레 인간에 불과하였다. 구사일생, 일취월장에 백발백중이었다. 4년 후 그녀를 떠나오면서 나는 단지 '전화할게'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로부터 받은 도움이 너무 커서 감히 그 무게를 가볍게 할 어떤 일도 행할 수가 없었다. 너무 크면 쉽사리 쪼갤 수 없다.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표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2년 째. 생각나면 전화라도 해 볼까 하다가는 잊고, 또 생각나면 꼭 만나서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하자 하다가는 멈췄다. 현재 처해있는 내 현실의 현장이 우선 시장이다. 정리 좀 하면 시간이 만들어지겠지, 다시 새 곳인 이곳에 적응되면 만날 시간이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곳 생활은 2년 전 입주를 시작했을 때의 상황과 거의 변화가 없다. 신기할만큼 여전히 새로운 곳이다.
'오늘 오신다는 소식 들었어요. 만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오전에 너무 바빴네요. 여전히 그대로네요. 클래시컬하고요. 우아하고요.' 늘 나만 보면 칭찬 일색의 그녀 목소리임을 빤히 알지만 얼마만에 들어보는 기쁨인가. 클래시컬하고 우아한 나는 그녀임을 확인한 순간 두 손을 마주잡고 방방 뛰고, 또 뛰었다. 빗속, 긴 우산을 들고서, 첨벙첨벙 빗물 모여 찰지게 흔들리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언제부터 이곳에 근무한 거야?' '올해 왔어요. 가시기 전에 나오려고 열심히 일했어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 좋네요.' '왜 이제 왔어? 어떡하지, 저기 차 와 있는데.'
출장팀을 실어나르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복귀를 위해 차에 올라야 할 시간이었다. '전화할게.' '아니요, 전화하지 마세요. 그냥 잘 사시면 돼요.'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체는 눈물이었을까, 빗물이었을까. 급하게 점심을 들었다. 정신없이 프로젝트 현장 적용 발표를 치렀다. 큰 일을 마친 후 으레 겪는 허전함을 잘게 문지르고 나니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인생 자체가 순수 범벅이셨던 내 어머니. '겸손'을 온몸으로 사시던 내어머니. 어느 날 어떤 이가 내게 도움을 줬던 듯싶다. 구체적인 상황은 흐릿하지만 어쨌든 상대가 나와 함께 있었다. 연신 꼬박꼬박 고마움의 인사를 퍼붓던 어머니가 그이에게 말씀하셨다. '요것이 타고나기를 생콩 맞게 태어나서 그렇습니다만 다행히 인덕이 있어서요. 그래 어찌 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큰 도움을 받고서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막내딸을 대신한 인사였으리라. 어린 내게 어머니의 말씀은 매우 생생하게 내 뇌리에 찍혀 있다. 이후 어느 세월에나 내게 도움되는 이를 만나면 노상 내놓는 말이 있으니 '제가 인덕은 좀 있지요'이다.
저녁 일기이다. 바쁜 하루였다. 하늘이 울고 대기가 통곡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된 곡을, 대기여 그만 삼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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