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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어제도 매미는 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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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매미는 울었다고!

한다. 왜 나는 듣지 못했을까. 

 

 

집에서 기른 부추로 지진 전이 참 맛있었다.

 

 

 

두 권의 책을 기웃거린다. 거실과 베란다를 들락거린다.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이언 골딘과 로버트 머가의 < Terra Incognita : 앞으로 100년>이다. Terra Incognita는 '미지의 땅, 나라' , '아직 자연 그대로의 미개척의 영역'을 말한단다. '아직 자연 그대로의'라는 구절에는 광의의  영역이 포함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산과 들, 바다 정도 '자연(自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자연(自然)'이라는 것이 지닌 본래 의미도 단지 산과 들에 그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광의의 영역'을 사전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의미를 자연(自然)은 광범위하게 안고 있다. 인간들이 자기들 맘대로 좁디좁게 구획하고 편의에 의해 갈라놓은 뒤 뒷세대들에게 '이것은 그것이야'라고 가르쳐왔을 뿐이다. 굉장히 넓고 깊은 의미를 안고 있다. 자연!

 

 

호호, 이 문단을 시작한 것은 두 권의 책을 앞에 두고 각 책들의 제목을 소리 내어 발음해본 다음이다. '활과 리라'는 익히 알고 있는 책이거니와 책의 내용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잘 알기에 우선 거리감이 느껴진다. 단어마다, 구절마다, 문장마다 하나씩 하나씩 베끼면서 읽어야 할 만큼 너무 깊다. 온갖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싸안고 내뱉어가면서 읽어 내려가야 한다. 말하자면 몸부림을 치면서 읽어야 한다. 하여 실은 멀리 두고 싶다. 'Terra Incognita : 앞으로 100년'은 백여 장의 지도가 있는 책이다. 이 또한 잘 알기에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이유에선지 'Terra Incognita'를 소리 내어 발음하는데 묘한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검색엔진에서 들려오는 발음을 듣고 따라 해 보는데 내 목소리까지 곱게 느껴질 만큼 들리는 소리가 참 부드럽다. 

 

 

전통 부추. 잘 자라리라. 하룻밤 자고 났더니 쏘옥 올라왔다. 놀랍다.

 

 

혹 이 글을 읽는 이들이여. 포털 사이트를 열고 'Terra Incognita'를 입력한 후 검색 엔진을 가동해 보라. 가만 들리는 대로 발음이 되도록 입을 움직여 보라. 두 입술을 살짝 벌려 그 소중한 틈새,  그 사랑스러운 호흡이 드나드는 자리에, 당신이 좋아하는 꽃잎 한 장 얹어뒀다 치고 조심스레 따라 소리 내어 보라. 당신의 혀 둘레에 꿀이 입혀질 것이다. 당신 안에서 자라고 있는 사랑 벌레가 달콤한 미소를 가득 품고 당신의 동맥에 자리하고 있을 세균들을 박멸할 것이다. 당신의 혈액은 물론 영혼을 정화시켜줄 것이다. '테라 인코그니ㄷ타'. '니ㄷ타'의 '타'안에 숨어있는 'ㄷ'의 소심함을 꼭 살려야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두 낱말의 부드러운 연결도 잊지 말라!

 

 

왜? 이 도서 제목의 발음이 '발성의 미학'을 떠오르게 할 만큼 강하게 나를 깨울까. 우선 'Incognita'라는 낱말이 지닌 신비감일 것이다. 신비의 영역, 아직 때가 묻지 않은, 형태도 종류도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러나 어쩌면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것이 지니고 있을 어떤 힘. 늑작지근하게 늘어지는 매일의 일상을 빼꼭하게 살아내야 되는 운명을 지닌 우리에게 혹시 모를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하는 뜻을 담은 참 고운 낱말이지 않은가.

 

'자기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 '익명으로' 혹은 '잠행', '미행' 등의 원뜻은 제쳐두자. 'Terra'라는 낱말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Terra Incognita'라는 일종의 관용어(혹은 고유어일 수도)로 작동될 때 발휘되는 의미인 '미지의 땅' 중 '미지의'라는 것을, 확대 재생산하여 응용해 보자. 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들이 깨닫는 희망적인 것을 말한다. 사실 'Terra'도 납작하게 눕혀둔 채 그 의미를 내 뜻에 맞게 해석하고픈 마음 굴뚝같으나 여기서 멈추자. 'Terra'는 게임 세계는 물론 판타지 류에서 워낙 친근해진 낱말이지 않은가. 아울러 혹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반응을 달랠 필요가 있어서이다. '싹수없이 웬 쓸데없는 말을 이리 질펀하게 늘어놓았담? 시간 아깝게 시리.' 잔뜩 별 볼 일 없던 하루에 지친 이들이 '이 바쁜 세상에'를 읊어야 한다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책  'Terra Incognita'의 서문을 여는 문장이다. 100편 넘는 지도들을 함께 읽을 수 있단다. 자, 출발! 미지의 땅을 훑으러, 아니 신비의 세계에 드러눕기 위해! 푹신한 마음의 담요를 가슴뼈 안에 가득 싣고서 여름 여행을 떠난다. 물론 냉방장치를 가동해서!

 

어제 전혀 운 적이 없는 매미들이 오늘은 '맴맴 매엠멤'이다. 아침부터 뇌쇄적인 화음을 깔아 리듬, 가락을 반복하여 엮어내면서 열심히 운다. 그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종이들이 만든 꽉 찬 부피의 듬직함을 맛보러 떠난다.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길을 나선다. 가슴뼈 사이 외치는 소리들이 들린다. 사이사이 넉넉한 숨구멍을 식재해달란다. 물론! 그 숨구멍에 소박하거나 찬란하거나 나름의 멋을 뽐내는 언어의 은유들이 호흡하게 하리니.

 

 

섬 정상에서 창을 하던 그녀 - 어제 블로그 글 속 등장 인물. 어젯밤에는 못하고 조금 전에 얼른 그렸다. 미안해라. 이목구비 또렷한 미인이었는데~

 

 

왜, 도서관으로 가야 하는지 알겠다. 작가들이 왜 글쓰기 위한 방을 얻어 출근하는지를 알겠다. 어느 작가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구할 만큼 경제적 자유가 없어 우선 집 안 한쪽 방에서 글을 쓰는데 아침마다 일정한 시각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한다던 말이 떠오른다. 그게 맞겠다. 집 안에 있을 때에는 살림 밖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책 몇 페이지를 읽고서 물 한 모금 마시려 눈을 들면 거실 저 쪽에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보인다. 씩씩하게 내 이름을 외치면서 '지금 나는 독서 중'이라며 눈을 돌릴라 치면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일어나면 해치우려니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비타민 D 섭취를 위해 베란다에 나가 책을 읽곤 한다. 유리창을 살짝 비킨 곳에 들어앉은 햇빛 쪽으로 등을 세워 앉는다. 내 사는 집은 앞뒤 문을 열어두면 바람의 소통이 원활한 입지조건이어서 무더위에도 끄떡없다. 두 권의 책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읽는데 자꾸 안방 앞 베란다의 식물대에 눈이 간다. 어제 화분에 물을 주던 중 마음에 걸렸던 한 녀석 때문이다. 물을 무지 좋아하는 한 무리의 식물류 중 그만 물이 고팠는지 마른 잎으로 시들던 녀석이 있었다. 어제 생각으로는 오후에 물을 한번 더 주리라 했는데 잊었다. 이불속에서야 떠올랐다. 그리고 아침에는 꼭 하려니 했던 것이 또 잊혔다. 녀석을 돌봐야 했다. 일어섰다. 다행히 깊은 곳에서 뻐끔 귀여운 잎을 내놓은 녀석 서넛 있었다. 살아날 것 같다. 다행이다. 

 

 

물을 채워주고 돌아서려니 그 옆 화분이 나를 붙잡는다. '너무 좁아요. 우리들 중 누군가 한두 녀석을 빼내어 새 집 좀 마련해주시라요, 제발요. 만약 오늘도 우리를 내버려 둔다면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우리 중 힘없는 어느 한 녀석은 내쳐질 것이 분명합니다요. 누구 힘없이 자리보전도 하지 못한 채 발라당 나자빠져 누운 뒤에야 눈 희벌떡해진 채 놀라지 마시게요.' 그래, 이 녀석은 사실 3주 전부터 계획하던 것이었다. 그만 잊었다. 일어난 김에 한쪽에 쟁여둔 화분들 중 미니 화분 둘을 꺼내고 물구멍 없이 키우는 흙에서도 잘 자라는가를 시험해보기 위해 넙적한 접시도 하나 준비했다.

 

세 녀석의 새 집 마련을 끝냈다. 햇빛이 사라져 간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영화도 봐야 한다. 실내 운동이라도 꼭 해야 한다. 내 딴에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토요일 오전까지는 책 두 권을 완독 하려니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다. 독서도 이제는 진정 천천히, 느긋하게, 구절구절 곱씹어가면서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렇담 하루 연기해서 일요일까지 읽기로 한다. 그림도 좀 그리고 싶은데. 

 

생활하면서 사이사이 써 가는 일기가 참 재미있다. 자정 전에 급히 서둘지 않으려고 시도해보는데 글쎄다. 욕심이 사람 잡는단다. 자정 가까이 되어 제대로 된 글을 쓰겠노라고 목욕재계하고 나서지는 말지어다. 

 

 


거실 책상과 베란다를 오가며 책을 읽었다. '활과 리라'를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예스 24'를 열었다. 다행이다. '품절'이다. 중고가가 엄청나다.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다. 두고두고 꺼내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전체를 베껴? 고민 중이다. < Terra Incognita : 앞으로 100년>은 생각한 대로 참 부드럽게 읽힌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지도들은 대부분 처음 본 것들이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녀석도 사서 읽고 싶다. 수시로 지도를 꺼내 볼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싶다. 무한 망상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지도 펼쳐 읽기이다. 

 

자정으로 가는 바람은 제법 '쏴'하다. 마치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기분이다. 대체 날이 문제인가, 내 감각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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