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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나는 아마추어 미술작품 컬렉터이다, 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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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추어 미술작품 컬렉터이다.

 

 

나의 미술작품 사진이라 하자 - 오늘 노을 1

 

 

늘어지는 아침잠을 잤다. 함께 사는 이는 떠나고 없다. 산으로? 새벽녘 길 떠나는 소란함을 듣지 못한 것은 그의 배려일까, 나의 잠이 지닌 깊이가 무던했던 것일까. 아하, 산이 아니구나. 부산으로 떠난다고 했구나. 깨복쟁이 친구들과의 여행이랬다. 내게 동행 여부를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나에 대한 배려일까. 혼자 있기를 즐기는 내 타성의 심오함이 한술 더 뜬 것인가.

 

나의 미술작품 사진이라 하자 - 오늘 노을 2

 

잠은 참 좋구나. 통잠 쪽의 잠이었다 싶다. 몸도 참 개운하다. 일종의 '에라, 모르겠다. 이런 날도 필요하지.' 싶은 마음을 살려줬다. 아홉 시 삼십 분이 넘도록 누워 있었다. 누운 채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이 영상, 저 영상을 봤다. 이 뉴스, 저 뉴스도 읽었다. 한 주일을 살아낸 내 영육을 향한 살핌이었다 치자.

 

읽고 있는 책 두 권이 떠올랐다. 아침 일기를 어서 써 두고 싶기도 했다. 열 시가 가까워지자 재빨리 수직으로 몸을 세운 이유이다. 여기저기 창문을 열었다. 어제 퇴근길에 느낀 맹추위에 놀라 보온 처리를 한 화분들을 살폈다. 덮어놓은 세탁소용 비닐들을 끌어내렸다. '아가베 아테누아타'를 숨 쉬게 한다. 하룻밤 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문장이 떠오를 만큼 베란다 창과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뜻하다. 충분히 베란다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둬도 될 만큼 온화하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몸뚱이를 저 볕 위에 누이면 가을이 안고 있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살포시 들려올 듯싶다. 가을이 가을로 좀 더 있겠노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오던 겨울이 저만치서 웃음 반 흐림 반의 얼굴을 하고 주춤한다. 

 

양정무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듣는다. 미술학 학자이시다. 나는 그와 참 친하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친교 맺음이다. 교수님은 내 존재도 모르신다. 그의 강의 내용을 참 좋아한다. 그의 책들도 거의 읽은 듯싶다. 이제는 조각조각 내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미학을 흐르는 다중 철학으로 내 영혼이 행복했다. 기억들이 선명한 그림들과 함께 떠오른다.

 

물론 그 내용들은 분위기 정도이다. 내용의 보따리는 뚜렷하지 않을지라도 그 보따리를 싸안은 보자기와 보자기 묶음의 곱고 아름다운 리본 맺음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내 나이가 몇인데 이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지 않은가. 오늘도 그의 강의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억 소리 나는 추상화의 반란'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아침을 연다. 짧은 강의이다. 더군다나 속도 2배로 듣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역시, 실루엣 정도로. 

 

고가 추상화가 어떻게 상상을 초월한 그림 값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강의이다. 잭슨 폴록의 작품 'NO.4'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추상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을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여겨지는 그림, 양푼에 이런 저런 물감을 몽땅 풀어 캔버스에 좍좍 뿌린 후 여러 크기의 둥근 붓으로 덧칠한 듯한 그림들.  그것들이 한화 몇천억의 호가를 지닌 명품이라니. 이를 풀어낸 이야기, 이 그림들에 얽힌 사건 등을 들려주셨다. 이 어처구니없는 듯한 가격인 듯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콜렉터들이 구매하는 것은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중의 삶을 사는 현대인의 삶을 추상화가 콕 집어낸다는 것이다. 어렵고 불편한 것이 때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도 하셨다. 도무지 제목을 붙일 수 없는 인간 심리, 현대인의 정신세계가 곧 추상이지 않을까. 나도 추상을 참 좋아한다. 하기야 어느 갈래 불구하고 내 마음과 눈을 이끌어서 내 뇌리를 점령하는 작품이라면 모두, 나를 사실 그림 그 자체를 좋아한다. 

 

내게도, 소위 아마추어 컬렉터라고 자칭하는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내 눈을 확 끈,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사로잡고 있는 유명화가의 작품이 있었다. 풍경화 쪽이다. 산과 들과 온갖 꽃들과 하늘과 바다가 모두 담겨 있다. 너무 큰 정이 들어 어떤 날을 삐딱한 시선으로 탐구하기도 했다. 마치 도무지 프로페셔널한 위치에 오르지 못할 자기 능력을 깨달은 후 살짝 비구상 경향의 선을 추가하여 그린 작품 정도라고 치자고도 했다. 바깥 그림들도 연결시켰다. 비슷한 류의 그림을 그리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도 가끔 읽을 수 있었다.

 

한번 빠지면 허우적대는 것까지 즐기는 것이 나의 성격이다. 구상과 비구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안고 있다. 충분히 모방 가능한 작품이기도 하나 절대로 이 작가의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는 흉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 꽤 오래 되었다.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역시 오래 전이다. 작품 가격은 현 경제 상황에 발맞춰서 인상되고 또 인상되고 있었다. 어느덧 어느 옥션 경매를 열었다가 이번에는 꼭,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작가의 작품을 꼭 사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작품 및 작가와 그만 뗄 수 없는 정이 들고 만 것이다. 

 

경매는 순간이다. K - POP의 대표 주자 방탄 소년단의 콘서트 티켓 예매 못지않다. 예정된 경매 시각을 놓치면 끝이다. 내 것이 되기 위한 기회는 혼기의 총각과 처녀가 자기 짝을 차지하는 기회를 붙잡는 것처럼 쉽지 않다. 물론 맘 먹으면 제 짝 찾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렵더냐. 미술작품 경매도 마찬가지이다. 인연이 닿아야 한다. 천생연분에 보리 개떡이라고 내가 지닌 현금을 싹 쓸어 모아 그 작품을 구매한대도 괜찮다는 각오와 다짐이라면 내게 인연은 닿는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구매하자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살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지이지 않은가.

 

의지박약인 나는 결국 그 경매를 놓쳤다. 직장인이므로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하면 변명이다. 어쩌냐. 이게 전부가 아닌데 그렇게 변명을 좀 하자. 어쨌든 나는 경매 시작 시각을 놓쳤다. 차라리 경매가 끝났다면 쉽게 포기할 수 있어 괜찮다. 몇 분 늦어 경매 생각이 떠올라 옥션에 들어가니 한창 진행 중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작품 가격은 이미 내가 생각하고 있던 상한선을 한참 넘어선 후였다. 몇 분 남은 시각 초를 다투어 클릭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감히 클릭할 수 없었다. 무한대라는 지점이 생각될 만큼 경매 시간이 끝나고 경매가를 확인하면서 나는 나를 다독거려야 했다. 어차피 내 경제 능력으로는 구매할 수 없는, 인연이 닿지 않은 작품이다. 잊자. 그리고는 이 생각을 마저 했다. '우 씨, 나도 열심히 그려서 저 그림 못지않은 작품 한번 만들면 되지, 뭐!'

 

치솟은 서울 수도권 집값처럼 치솟은 그 작가의 작품은 이제는 감히 경매의 '경'자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나와 멀어졌다.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이후 주변 작가의 닮은 듯한 그림을 보면 왜 이 작가의 그림이 고가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감히 그 작품을 따라갈 수 없는 먼 거리의 작품으로 재확인하였다. 현실 풍경 속에서 그야말로 독창성을 살려 재구성한 멋진 작품이다. 가끔 복권이라도 혹 구매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내가 언제 생돈 붙잡아본 적이 있었나 싶어 접는다. 그냥 바라보자. 

 

배우 하비에르 보텟을 그린 어느 작가의 작품을 보고 부러워서 따라 그려 보다. 이런 작품 하나 전시회에 끼워 걸어놓고 싶다.

 

뒤엉킨 짐들 속에서 내 것이 된 작품들을 몇 살펴보며 내 구매 목록 속에 그 작품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구매한 작품들로 전시회를 한번 할까 싶다. < 그녀는 그저 그림을 사랑했다 - 모 여인네의 수집품 미니 전시회>. 그곳 한쪽에 내가 그린 연필 드로잉 작품들도 끼워 넣어서 말이다. 와우, 생각만으로도 신난다. 자칭 아마추어 미술작품 컬렉터의 경험담 하나였다. 

 

오호라 내 이런 그림들도 전시회 한쪽에 걸어보고 싶어라. 후후

 

JTBC에서 '히든싱어 김현식 편'을 보느라 계획했던 영화 시청 시각이 늦어졌다. 19금 끔찍한 영화였다.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까 걱정될 만큼 분노스러웠다. 이제야 아침 일기 편집(정리, 오탈자 검색, 문맥 살피기 등)에 들어섰다. 11시 30분이 넘어선 시각이다. 아마 부드럽게 읽어지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냥 올리련다. 새삼 이 시간에 일기 편집에 들어서면 오늘 내에는 올릴 수 없을 듯싶어서이다. 이런 날도 있다 하자. 자꾸 '만약'으로 넘기려 드는 내게서 어떤 여유까지 느껴진다. 흥미롭다. 나도 제법 살 만큼 살았나 보다. 나에게 관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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