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산과 건강한 하늘이 그립다.
몸뚱이도 머리카락도 2박 3일을 찌들어 있었다. 먼지와 땀과 더러움에 익숙해진 채 살았다. 온몸이 너저분하게 축 처졌다. 혼자서 보내는 주말은 경계심에 얽매일 이유가 없어 좋다. 내 안의 나만 다스릴 수 있으면 된다. 나를 다스림에 기준도 필요 없고 근본도 한데 던지고는 여유를 부렸다. 그렇다고 영 어긋난 생활을 한 것도 아니다. 여느 주말이면 하는 일들을 모두 치렀다. 간헐적 단식을 열심히 실천하였다. 점심과 저녁을 알뜰살뜰 챙겨 먹는 재미도 즐거웠다. 어쨌든 생활이 가벼워서 좋았다.
어젯밤 무려 3일 만에 반신욕을 했다. 오랜만에 쇄신의 기쁨을 맛본 몸이 맑게 웃었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몸이 맞는 정갈함은 정신에 바로 전이된다. 몸의 감각은 정신이 이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목욕재계한 후 깨끗하고 깔끔해진 몸과 육신이 된 덕분에 푹 잠들 수 있었으리라. 겨울 솜이불을 덮고 잔 덕분이기도 하리라. 내 몸은 추위가 늘 불안하다. 서둘러 독감 주사를 맞은 이유이다.
솜이불이 포근했다. 짙은 가을볕에 이틀을 말렸더니 피부에 와닿는 감이 맑고 가지런했다. 사뿐, 내 몸을 감싸면서 만지는 촉감이 사락사락, 사람을 평온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잠이 너무 고소했을까. 이른 출근에 실패했다. 눈 뜨고 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한 결과이다. 이런 결과일 것을 빤히 알면서도 정신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늘 이러고 보니 내 몸이 귀신에 씐 듯한 기분이다. 몽달귀신이라도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련만 그것도 또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침은 곧 널브러진 생활로 이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월요일이다. 해야 할 일이 겹겹으로 쌓여있다. 내일 제법 큰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아침 일기 쓰기 시간이 넉넉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업무로 돌아서고 나면 업무 처리도 영 재미없을 것이다. 하루가 종일 찜찜할 것이다. 아침 일기 쓰기에서 사용되는 뇌의 경직이나 긴장감이 없으면 하루 생활은 물론 업무 처리에 많은 틈이 생긴다. 송송 뚫린 구멍으로 평소 하지 않던 생각도 하게 된다. 알뜰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렵다.
뒤늦게 직시한 현실을 머릿속에 직선으로 세우고서 아파트 후문을 나섰다. 부지런히 걷자. 야무지게 두 발을 단속하고 걸었다. 어서 가자. 오늘도 역시 서너 갈래의 출근길 중 최 장거리 코스 걷기에 들어섰다. 열대여섯 발자국쯤 걷다가 하는 일이 있다. 그날그날 출근길 아침의 모습을 폰 필름에 담는 일이다. 저 멀리 바라다보이는 산과 하늘을 핸드폰으로 찍는 것이다.
저 멀리 원거리에 초점을 맞춰 핸드폰 필름을 들이밀었다. 이상했다. 매일 찍는 거리에서 분명 '찰칵'을 했는데 필름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화면이 평소와 달랐다. 서너 번을 찰칵찰칵, 반복되는 의성어를 연발시켰다. 아니었다. 아침마다 카메라를 들어올리는 곳이 거의 똑같다. 필름에 담기는 형태도 거의 비슷하다. 당일 날씨에 따른 색감과 대기의 기온이 펼치는 기운의 빛이 다를 뿐이다. 한데 하늘과 산을 동강 자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핸드폰을 내리고서 살피니 인공 건조물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허리를 정나미 떨어지는 가로로 된 선을 긋고 있었다.
산이 잘리니 핸드폰 필름에 온전한 하늘도 입력할 수 없었다. 아파트 옆 신축 대형마트 뒤로 담이 신설되어 있었다. 예비 조립식 벽이었다. 재미없는 회색빛이었다. 영 보잘것없어 보이는 세로줄 무늬를 띠고 있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사각형의 공간을 한가운데로 잘랐다. 폰 필름에 찍힐 공간을 가로로 잘라버렸다. 어제 아침까지 보였던 눈앞 먼 산의 하반신이 잘려 있었다. 온전한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없었다.
화가 났다. 이런. 하룻밤 사이에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언제 세워진 것일까. 아하, 지난 금요일 내 퇴근길이 이 길이 아니었구나. 내가 지나지 않을 것을 알았을까. 내가 발걸음을 찍지 않은 하루, 나 몰래 벽을 쌓았구나. 내 허락도 없이. 어떤 지저분한 것을 쌓으려고 벽을 세웠을까. 무슨 위선 덩어리들을 처분하여 돈을 쌓으려고 저 높은 벽을 세워 나의 산과 나의 하늘을 가로질러버렸을까. 짜증스러웠다. 장거리 출근길 코스를 수정해야 하나 싶어졌다.
폰 필름에 담곤 했던 산에 불경스러운 기웃이 침범한 듯하다. 연결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던 하늘도 무미건조해 보였다. 한겨울 동태 눈빛처럼 흐릿했다. 나를 향한 하늘빛은 슬프고 아파 보였다. 사월 황사에 당한 듯 맹해 보이고 이상해 보였다. 산과 하늘 또한 인공 건조물의 한 부분 같았다. 타인의 공간을 되도록 피해서 사진을 찍으려 하는 내게 온전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찍히는 사진마다 점차 뭇사람들의 공간이 들어서기 일쑤이다. 폰 필름마다 자본 축적을 위한 마의 건물들이 쏙쏙 세워진다. 내가 찍고자 하는 풍경, 아름다운 자연은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필름에 담긴다. 저장한 필름을 끌어내어 편집해도 조각진 풍경은 아름답지 못하다. 내가 만나고자 한 자연이 아니다. 내가 내 필름에 저장하여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장면이 아니다. 온전한 산과 건강한 하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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