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지다.
알람 시각으로 눈을 떴다. 여섯 시.
조각잠이다. 어젯밤은 두 도막의 잠이었다. 수면을 이등분했다. '등' 자에 알맞지 않은 것은 아닌가. 앞과 뒤의 수면 길이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담 그냥 둘로 쪼개졌다 치자. 그래, 두 잠을 잤다. 오랜만에 만난 조각잠이었다. 두 잠의 경계선에서 눈을 뜬 시각은 한밤중이었다. 2시 50분이었던가 1시 50분이었던가. 둘 중 하나였다. 다시 잠에 들기까지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도 유튜브 수면 영상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덕분일 것이다. 밤새 유튜브는 영상을 돌리고 있었다. 뚝 둑 두두둑, 뚝 둑 두두둑. 단순한 리듬 몇이 반복되는데 이런 효과가 있다니. 고마운 영상이다. 오늘 밤에는 잠들기 전에 이 영상의 창에 꼭 댓글을 남겨야 되겠다. 고맙다, 고맙다, 또 고맙다고.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인생사 호사다마'라는 관용어는 들어맞지 않아야 될 텐데. 내 생에 이 글귀는 내 라이프 스타일의 한 쪽이라도 되는 양 이따금씩 파고드는 것인가. 호사다마는 진행되고 있는 즐거운 일에 방해되는 것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제 아침 경비할아버지와 나눈 따뜻한 대화에서 얻은 여러 긍정적인 만족감이 일순간에 사그라지는 일이 발생했으니. 종일 '22내사람들'과 즐거운 생활을 하게 했던 그 좋은 기운은 오후 일터 전체 모임에서 벌어진 일로 죽이 되고 말았다. 어느 주제에 대한 집중 토론이었다. 관련 인사에 대한 단 한 마디의 배려 없이 한 무리에서 자기네 주장만을 토로하였다.
짜증스러웠다. 시간은 흐느적흐느적 맥을 추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지쳐 갔다. 나는 자울자울 자울자울. 앞뒤 맞지 않은 토론이 제멋대로 진행되는 회의. 퍼뜩 기면증을 앓다가 생을 마친(기면증이 사망 이유였다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인 박서원을 떠오르게 했다.
'나도 혹시 기면증이 아닐까.'
극단을 오가는 비탄의 문구 범벅이던 그녀의 시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그만 그녀의 시에 온 몸을 의지한 채 '기면증'에 집착하게 되었다. 기면증까지 사랑하게 되었고 기면증을 앓고 싶기까지 했다, 했던가. 나의 생도 양극을 오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누구인들 자기 앞의 생이 쉽고 평탄하고 평안할 수가 있겠느냐만 유독 내 생은 차라리 외면받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적적함마저 어중간했다. 생에 달라붙어 있는 무미건조함이 이도 저도 아닌 채 식은 숭늉처럼 퍼져 있었다. 구슬프고 처량했다.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
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아는 고양이
.
.
.
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
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
그가 두려원하는 건
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
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
그저 참가자의 자격으로 회의장에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기면증 발작이 현실화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회의 석상에서 완전한 잠에 드는 꿈.
나는 가끔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을 지니고 싶다. 내 일터의 일은 거듭날 일이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느님 눈동자의 새벽별을 보고 참회의 눈물을 흘릴 일도 거의 없다.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이 떨구어내는 새 이슬을 머금고자 꾸준히 온 정신을 벌리고 입을 대고 있을 필요도 없다. 어제 오후 진행되던 회의처럼 매사 지지부진하기 일쑤이다. 차라리 뾰로통한 채 터질 것 같은 고집불통의 도톰한 입술이라도 있었으면.
이어 단체 회식이 있었다. 한 쪽에서 끊임없이 먹었다. 쳐먹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게다. 두툼한 삽겹살이 적당히 구워져서 입 안에 들어왔다. 혀의 전 부위는 고소함과 함께 털썩털썩 혀를 가볍게 치면서 샘 솟게 하는 야릇한 미감을 받아내느라 혼미해졌다. 나는 정신없이 구워진 삼겹살이 부리는 미감의 고혹적인 댄스에 맞춰 입놀림을 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포만감은 오후 내내 쓸 데 없이 내뱉아내던 회의장의 의미없는 문장들을 지우느라 더욱 차올라야 했다.
다음 차의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어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 <내 사랑>의 샐리 호킨스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혀 바로 밑 식도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물들을 소화시켜야 해서 열심히 걸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맑은 하늘 속 구름들의 추상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기의 기운을 지닌 아름다움이었다. 컷, 컷, 컷, 컷...... . 여러 장을 찍었다.
그런데 휴대폰을 안고 있는 왼쪽 중지 손가락이 무엇인가를 탐지하고 느꼈다. 결과는 비어 있음이었다. 진료 카드가 없었다. 폰 케이스 조금 헐렁한 곳에 꽂으면서 그렇잖아도 걱정이 되던 것이었다. 그대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서 세세하게 길을 살폈다. 카드는 없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니 병원 진료카드는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 빠진 것인지를 모른 데다가 어제 아침에는 하필 출근이 너무 일러 일터 바깥으로 걸었다. 황망했다. 포기하고 다시 집 쪽으로 걸음을 돌려 걸었다.
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뒤뚱뒤뚱 오리 걸음이 되어버렸다. 퇴근길은 고철덩이가 된 것처럼 무거워진 몸뚱이를 제대를 건사하는 것이 힘들어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람 사는 것이 어째서 이리도 쉽지 않을까. 아침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거, 그것. 전체 모임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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