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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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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선처럼 내게 화두를 던져본다. 고요히 앉아서 참선에 들어선다. 도무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본 다큐멘터리에서 사로잡은 화면이다.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야 했다. 나 혼자서,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 통곡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곧 쓰리라.

 

 

펑펑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온몸을 땅바닥에 마구 굴려서 안고 있는 수고로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댓 병의 소주를 발칵발칵 들이마셔서 지고 있는 짐을 순간 잊고 싶을 때도 있다. 내 정정한 의식을 제쳐두고 너저분한 몸 사위가 드러낼, 추한 모습도 기꺼이 각오하면서 말이다.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이지? 써 놓고 보니 내용이며 표현 방법이며 언어든지 모두 바닥이다. 고상하지 못하다. 기품을 지니지 못했다. 고작 이런 내용의 생각이라면 생각 내놓기도 하지 말지어다. 나를 다그친다. 자기 자신을 낭떠러지로 처박는 행위이자 언어이자 사고라고 나무란다.

 

 

그런데도 해야겠다면, 하고야 말 것 같으면, 아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 그곳, 텅 빈 공간에 내 몸뚱이를 던져 넣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 되겠다? 나 혼자 발광하고, 내 멋대로 발악하고 내 정신을 모두 내다 버린 채, 내 멋대로 쓰러져 잠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왜 그렇게 지하 신분으로 나뒹굴고 싶냐고? 언어 표현이며 하고자 하는 방법이 본능적인 것이냐고? 지극히 원초적이면서 지저분하다고? 그러고 싶을 때가 분명 있어서 하는 말이다. 가끔. 어느 날 한 번쯤 고량주 한 됫박을 내장으로 들이붓고서, 부스스스 망가진 낯빛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면 좀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서이다. 반전의 철학을 도용하여 나를 다시 살게 할 수 있다면 해볼 수도 있으리라. 

 

 

이런 짐들을 스트레스 더미라고 하자. 위 문단의 내용처럼은 또 차마 할 수 없어서 더 나은 방법을 고심했다.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방법이 혼자서 영화 보기이다. 뇌의 변두리 공간, 어느 한쪽으로 짐을 부려놓고 남은 뇌의 부분으로 영화 감상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매달린다. 하루 한편 꼴로 영화를 본다. 근래 몇 년을 그렇게 했다. 지난해에도 365편이 넘은 영화를 봤다. 영화 속 인물이 되어 함께 웃고 울고 분노하고 화해하면서 살다 보니 짐의 부피가 해체되는 것도 같았다.

 

 

영화는 순간을 사로잡는 예술이었다. 물론 진득한 맛이 아쉬웠다. 여러 장면을 만날 때마다 그곳 감정이 시각에 입력되고 중추를 거쳐 뇌에 전달되면 곧바로 반응을 표출하게 된다. 짐 진 자 무거운 짐 내려놓을 수 있으려니 했던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내놓는 반응으로 결코 짐 부려놓고 도외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축소된 짐의 부피는 영화의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면서 몸집을 본래대로 되살렸다. 금방 원상 복귀가 된다.

 

 

책을 읽자? 건방진 사람. 수많은 책을 읽어오면서 나는 왜 책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끝을 예감하는 능력을 다지고 말았는가. 생각의 활자화에서 시작된 문화 예술 영역들은 내게 오면 바로 으깨지기 일쑤였다. 표지만 봐도, 표지에 한두 문장으로 요약되어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책 소개 카피만 봐도 글의 마무리를 딱 맞추고 말았다. 책 속 끝과 거의 비슷하게 말이다. 하여 어지간히 내 인생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책을 바로 골라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교만방자한지고.

 

 

우리 집 베란다에서 89도쯤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찍은 사진. 노을.

 

 

마지막은 글을 쓰기였다. 글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손가락 노동에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정신적인 융합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필요하다. 글의 수준과 상관없이 강력한 영육의 운행이 필요하다. 하여 글을 쓴다. 글을 쓰자. 여전히, 꾸준히 글을 쓰자 한다. 

 

 

가벼이 문장 풀어놓기를 해봤다. 요즈음 반신욕에 핸드폰과 동행하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다. 책을 읽는 재미를 다시 맛보고 있다. 사는 맛이 난다. 기쁘다. 올해 이를 습관화하기 목록에 넣을까 한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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