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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염색, 본격적인 실시 구간에 들어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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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본격적인 실시 구간에 들어선 것인가?

 

 

 

 

머리 염색으로 검색했더니 이런 사진도 있다. 나는 오른쪽 처음, 보라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싶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이었다. 어쩌다 몇 가닥 흰빛 선이 꼿꼿하게 일어선 듯 보이더니 점차 여기, 저기, 거기에서도 자기 존재를 내세운다. 녀석들.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에 둔 적이 없는데, 꿈에도 초대한 적이 없는데 왜 내 몸뚱이에 서식하려하는가. 어찌 자기 자리랍시고 구역을 정해 돋아난담?

 

 

그러려니 했다. 요즘 젊은이들도 흰머리로 고민한다는데 이 나이에야 시작되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지 않은가. 지켜보자. 이 정도야 충분히 내 미모로 덮을 수 있어. 미모라니 무슨 말? 이곳, 익명성이 보장된다. 이름을 숨길 수 있으니 이런 들 어떠하고 저런 들 어떠하랴. 우주 만물 뒤얽혀 사는 세상 내 한몸 내 낯짝을 미모라고 내세운들 누가 나를 공격하랴. 가끔 내 나이를 알게되는 이들, 당신 낫살 그리되는 줄 알고서는 깜짝이야 놀랐다고도 하는데 내 얼굴 좀 깜짝 반지르르하다고 내세우는 것이 뭐 어떤가. 물론 충분히 인정할 만한 미모의 객관적인 기준을 들고 내게 덤비면 두 발, 네 발 다 들고 고개 숙일 일이지만 흰머리 덮으려는 고육지책이라 여기라.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흰머리 몇 가닥 쯤이야 쌩 무시하고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로다. 

 

 

머리를 감기 전에 브러쉬로 뜩뜩 머리를 빗는다. 유독 질기게 각각의 빗살에 힘을 적셔 내리긋는다. 탈모 예방에 좋대서이다. 두피에 열이 날 만큼 열심히 빗질을 한다. 득득, 딕딕, 닥닥, 다그닥다그닥. 이것이 탈모 예방을 위한 최선의 행위이자 최대의 긍정적인 동작이라는 것에 도취했다. 어느덧 체화되고 습관화되었다.

 

 

덧붙여 내 정신 건강에도 보탬이 되었다고 깨달은 시기도 꽤 되었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는 것이다. 사각사각 내 몸과 정신에 기생하는 철부지 유령들을 갉아먹는, 묘한 효과가 있음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이었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이 발생했지. 대체로 매사 참아내고 사는 방식의 나는 좀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에 취약하지. 그냥 넘어가면 잊혀지는 것이 세월이겠지 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산단 말이지. 한데 어느 날, 그날은 폭풍 성대를 움직여 소리를 지르거나 펑펑 눈물을 쏟아내든지 하는 방법을 택해서라도 화를 풀어야만 할 것 같았어. 더 이상 갈 수 없을 만큼 정수리 정상까지 화가 도달해있더라는 것이지. 한데 반신욕을 들어가기 전 늘 하는 방법으로 브러쉬를 사용한 머리빗질을 했더니 점차 화가 사그라지더라는 것이야. 정말이지 한 시간여 머리를 빗어잿겼지. 그리고는 주저앉았어. 그냥 힘없이 마룻바닥에 앉았는데 누그러들더라고. 종일 안고 다녔던 화가 가라앉더라고. 이후 여러 근심 걱정들이 머리를 뜩뜩 빗고나면 서서히 녹아내리더라고. 그래, 내가 살아있는 한, 궤도 수정의 삶으로 바꿔지 않는 이상 이 생활은 내가 결국 안고가야 할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하게되더라고. 그래, 머리빗질을 일년 365일 중 적어도 300일은 하게 되었지.

 

 

사실 친구들이 부러워 해. 자기들은 염색 시작 시기가 벌써 십 년을 넘어섰다는 둥 어쩌다가 대화 주제로 염색이라는 낱말이 떠돌 때면 결국 내 입에서 나오게 되는 말에 분노 비슷한 구절을 뱉아낸다고. 세상에나, 뭔 일이야? 아직도 염색을 안 해? 좋겠다. 뭔 일이냐. 복이다. 뭔 복도 그런 복을 타고났다니. 자식 하나라서 걱정도 하나밖에 되지 않고, 정년 보장되지, 연금 따박따박 나오지, 세상에나, 너는 좋겠다.

 

 

기하급수적으로 대화 주제의 범위가 저 멀리까지 확산이 되면 나는 급기야 배달되어 온 음식에도 정이 떨어질 만큼 지쳐가지. 아, 내가 왜 이곳에 있을까. 왜 나왔을까. 내 팔자,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맞아. 이 좋은 시간을, 집에서 차 마시면서, 책 읽으면서, 영화 보면서, 음악 들으면서, 화초들과 대화도 하면서 보내는 것이 제격인데. 어쩌자고 저 인간들과 마주앉아 자본의 속성을 씹어대야 하는가. 흰머리에서 시작된 대화는 사방팔방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이집 저집 누구집의 재산 감정까지 나아가곤 했다. 왜? 흰 머리카락의 두부 점령은 나이듦을 말하는 것이었고 나이 들어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것이 돈인데 어느 정도의 자본 책정으로 노년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서로 점검해주는 방식이었다.

 

 

평소 나를 대신 산 듯 내 눈빛만으로 나를 점령하곤 하는, 요사스러운 친구 한 명이 곧바로 나선다. 너, 지금 여기 나온 것 후회하지? 내가 뭐헐라고 이런 유치 발치 단계로 퇴보 중인 아줌씨들과 함께 있나 생각하지? 그래, 나를 박치해 온 너 답다고 내가 대응한다. 박치? 발치라고, 발치. 염병, 박치나 발치나. 시장통같은 대화시장에 몸이 앉혀져 있는 것에 고투하면서 후회할 짓을 나는 왜 하고 있는가. 자아 반성을 하려는 순간 내 요사한 여자, 친구가 말을 잇는다. 너, 고상한 척 아무리 해봐야 가는 길은 너나 나나 똑같아야. 뭐, 그리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야단허들 말아라. 가는 길 똑같어야. 나온 음식도 좀 아그작 아그작 씹어 삼키고, 하하하하 호호호호 칼칼칼칼 웃어제끼고 좀 해라. 엉?

 

 

글이 요상한 구석으로 빠졌다. 문제는 요즘 빗질을 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진다. 어, 탈모? 아니 되옵니다. 조물주여, 저, 달걀 둘씩 꼭꼭 챙겨 먹습니다. 고단백질 풍부한 치즈는 또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언니들이 보내온 무슨 무슨 결핍에 꼭 필요한 영양제들도 요즈음 들어서는 꼬박꼬박 열심히 먹습니다요. '나이들수록 소식'이라고 해서 먹는 양도 줄였고요. 유통기한 잘 살펴서 조심조심 움식물을 섭취하고 있나이다요. 조물주여, 탈모는 아니 되옵니다. 요것 저것 들이밀어 내 생활의 합리화를, 구차함을 무릅쓰고 해보는데 떡 하니 내 눈 앞에 온전한 몸체로 드러나는 것이 있었으니. 

 

 

우리 집 베란다에서 찍은 오늘 노을!

 

 

어제 저녁! 반신욕을 시작하기 전, 으레 해대는 브러쉬로 머리 빗질하기를 했다지. 득득득득 닥닥닥닥 드그덕드그덕 다가닥다가닥, 여러 리듬의 조합으로 열심히 빗질해댄 후 하던 일이 있었지. 브러쉬 살에 끼인 머리카락을 떼어내어 뭉쳐 버리기야. 내 머리카락은 갈색 조합이야. 신기하지? 흑색이 없어. 검은 머리카락이 없다고. 인종이며 민족의 특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까지 하고 있는 한 친구가 내 머리카락을 두고 하는 말이 있지. 야, 너네 부모님 중 한 분은 우리 민족이 아니지? 너, 혹시 다문화 아니니? 네 눈알 색도 좀 봐봐. 갈색이잖아. 머리카락도 노랑색 가까운 갈색고 말이야. 너 참 신기하단 말이야, 참. 글고 너 피부는 또 어떻고? 새하얗단 말이야. 너, 어느 인종이야? 좀 솔직히 밝혀봐라. 뭔가 숨기고 있는 것 있지?

 

 

나, 어디 무슨씨야. 우리 조상이 어떤 분이신줄 알아? 거, 역사시간에 나오잖아. 조선 후기, 우리 나라 문장의 대가 중 리스트 파이브에는 든다는 그 할아버지. 우리 조상이야. 우리 성씨를 만드셨다고. 유배길에 말이야. 그래, 나는 분명  대한민국 한반도에서 뿌리 내려 나고 자란 한민족 한국인이다. 한데 머리카락이며 눈알이 갈색이다. 신비스러워들 한다. 아, 오늘 주제에서 또 상당히 빗나가고 있군. 각설하고.

 

 

브러쉬 살에 끼인 머리카락을 모아 떼어내서 버리기에서 글이 틀어졌구나. 그래, 늘 하던 대로 그 일을 하려는데 그만 내 눈을 깜짝 놀라게 할 일이 벌어졌다. 죽어나가는 머리카락 뭉텅이 중에 갈색이 아닌 다른 색깔 한 가닥이 보이더라는 것이지. 한 가닥, 녀석은 흰색을 띄고 있었어. 갈색 무리 속 흰색은 검정 무리 속 흰색에서  눈에  띄기가 힘들겠지? 한데 눈에 확 띄더라고. 녀석이 다른 머리카락에 비해 굵고 단단했다는 것이지. 깜짝 놀라서 고 녀석만 빼내어 손가락으로 잡았는데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은 최근 들어 내가 만진 내 머리카락의 느낌과는 영 다른, 싱싱한 건강함이었어. 건강한 머리카락. 다만 흰색이라는 것. 

 

 

갈색 숲 속에 실수 혹은 잘못 하나의 분위기로 끼어있는 굵디굵은 하얀 실, 흰 머리카락. 절감했다지, 아,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서야겠구나. 염색. 아, 나도 이제는 온전한 흰 머리카락 세대에 들어섰구나. 아, 나의 젊음이여, 나의 검은 빛 혹은 갈색빛 젊음이여. 퇴색에서 멈추지 못하고 결국 흰빛 소복 차림으로 들어선 나의 생이여. 어렸을 적에 한약을 몽땅 들이켰는지(들은 풍얼에 의하면 어릴 적 한약을 많이 먹으면 일찍 흰 머리라 보인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어서~) 삼십 대쯤 흰 머리와의 동행을 해 온 남자에게 물었다.

"그리 맨날 염색하는 것 힘들지 않아?"

"힘들지. 지겹기도 하고. 근데 그냥 하는 거야. 하다 보면 돼. 운명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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