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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종일 내 귀를 사로잡을 고운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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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내 귀를 사로잡을 고운 소리를 듣고 싶다, 고운 소리.

 

 

 

청각으로 검색하여 처음 만난 사진이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용접 일이 있나 보다. 저 소리를 어떤 문자, 어떤 낱말, 어떤 구절, 어떤 문장으로 형상화할 수 있을까. 들들들들, 드엉 드엉 드엉 드으이 엉, 그 글 그 글 그 글 그 글 그 그 그 그 그 엉, 드엉드엉드엉드엉 드으이 엉. 신기하다 분명 소리인데 내 귀가 듣는 소리를 입으로 소리를 나타낼 수가 없다. 글씨로 옮겨 적을 수가 없다. 적기로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것이 있겠는가마는 정작 말하려 하면 수많은 언어가 내 뇌에서 서로 자기 몸을 선택해 달라고, 표기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디귿 아님 기역으로 시작되는 글자일 것은 분명하다. 시옷이나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낱말이 더 맞을까. 저를 택해주세요. 우리말의 자음자들이 내 눈 앞에서 행진 중이다.

 

 

발성과 표기 문제는 별 일이 아니다. 가끔 청각의 내부 구조를 떠올려보면서 나는 내 두 귀 속 달팽이관의 아름다운 몸매를 고마워한다. 세상에나 내 몸 속 너처럼 예술적인 라인이 있을 수 있다니 고맙구나. 달팽이관은 참 아름다운 선을 지녔다. 늘 청명한 운명을 살고자 노력하는 달팽이관이 지닌 곡선이 참 고맙다. 

 

 

가끔 청각을 모아 내게 오는 모든 소리를 분류해 보는 재미도 짭짤하다. 조금 전까지 들렸다가 멈춘 용접 소리가 아직 내 일터 공간을 가득 채추고 있다. 꽉 채운다. 가끔 용접을 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상할 정도로 용접일을 하시는 분들이 쓰신 산소호흡기를 보면 참 노동의 힘이 느껴진다. 무엇에서 연유란 것일까. 나 혼자서 차지한 시간과 공간에 머무를 때는 꼭 필요한 성스러운 노동 음악이 그립다. 그때 용접일을 하시는 분들이 내는 소리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여도 괜찮다. ‘코로나 19’로 인해 나 혼자일 때의 시공간이 부쩍 늘었다. 내 청각의 저변에 조용하게 밀려와서 들려주는 소리들이 소중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한데 소리가 내게 짐으로 올 때가 있다. '소음'으로 와서 내 신경을 자극할 때의 소리를 말한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의 소리이자 사람들의 소리가 대부분 그런 경우이다. 사람들은 왜 소리의 강약과 소리의 길이와 소리의 무게와 소리의 부피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소리에도 자기 멋을 부리는 것에 바쁠까. 그것도 커다란 높이의 강약 미조절, 간격이 길어 짧은 소리을 중후감을 무시하기, 덩치의 대소에 상관없이 무작정 큰 소리, 울림의 대소에 상관없이 마구 부르짖기.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소음일 때가 많다. 소음일 때가 훨씬 더 많다. 사람들의 소리에는 때가 묻어 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목을 지닌 모든 생명체는, 목 안 성대를 울려 내는  소리일 텐데 왜 사람의 소리에서는 유독 때가 얹힌 채 들려오는 것일까. 

 

 

탐욕 때문이지 않을까. 뭔가 상대에 대한 바람을 끼얹어서 소리는 내기 때문이 아닐까. 벌써 사람의 소리에는 듣자마자 상대를 향해 요구하는 무엇이 느껴진다. 말하는 이의 대부분은, 심지어 혼잣말을 하면서도 한탄을, 혹은 잔뜩 채운 욕심을 미리 내질러서 소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듣는 자도 한몫 크게 할 것이다. 선입견이겠지. 듣는 나 역시 상대를 향한 바람을 먼저 깔아놓은 채 상대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저이는 분명 내게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저 소리는 언젠가 내게 요구했던 것이 아직 다해주지 못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다. 

 

 

반성한다. 나를 우선 돌아본다. 오늘 저 멀리서 들리는 용접 소리며 끼익 끽 쇳소리 부딪히며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들은 그냥 소리인데 왜 사람의 소리들은 무게를 담고 내게 , 사람에게 물밀듯이 달려드는 것일까.

 

 

잠깐 휴식 시간이다. 조금 전 들리던 소리들을 돌이켜 떠올려본다. 소리도 참 여러 가지이다. 음악이라는 종에 포혼자 있을 때 들리는 소리들을 떠올려본다. 귀를 편안하게 해 줄 고운 소리로 하루 종일 채우고 싶다. 

 

 

오늘 나의 베란다에서 내다 본 노을. 노을이 내는 소리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일기는 예전에 써 두었더, 내 컴퓨터의 '아직 안 올린 글 - 에세이' 편에 담아둔, 지난해 어느 날에 써 둔 글을 가져왔다. 왜? 오늘 쓸 글감을 놓쳤다. 사람 사는 일이니 어제나 오늘 아침 글로 쓸 글감이 없을 리 없다. 사실 글 두 편을 '비공개'로 담아뒀다. 새로운 계획이 오늘 아침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옛 모습을 담은 앨범을 열어서 훑어보면서 사진을 찍을 당시의 나를 떠올려보는 것처럼 옛 글을 열어 읽어보면서 당시 내 처지와 기분 등을 데려와 읽는 재미가 두텁다. 묵직한 든든함이 여러 가지 느낌으로 감겨 온다. 우선 늘 글을 쓰고 있었다는 나의 자아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위 글처럼 조그마한 일에도 어김없이 작동한 나의 감각세포들을  쓰다듬는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살아있을 이유가 있어. 나는 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미처 일기 생각을 못했다. 아침에 쓴 두 편 글을 편집하여 올리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오늘 올린 글은 내일 다시 읽어보면서 분명 후회가 클 것이다. 그러나 올린다. 매일 한 편씩 들 올리기는 꼭 빠지지 않고 싶다. 이해하시리라,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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