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 그리고 또 미명.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미명(未明)이었다. 세상은 벌써 미명(美名)을 앞세워 나를 부르고 있었지. 그럴듯하게 내세운 삶에의 명목, 즉 어떤 명목으로든 하루를 또 살아야 한다고. 오늘은 평일이며 오늘은 수요일이며 오늘은 ‘목구멍이 포도청’을 실천해야 할 날이라는 명칭의 깃발을 내건 ‘새날 아침’의 힘이 나를 부르더라고.
나는 나의 생을 조련하는, 어제보다는 훨씬 못한 세기로 내뿜는 빛의 힘은 덜하나 항상 그곳에 있어 나를 이끄는 태양의 힘에 이끌려 길을 나섰어. 담담하게. 평일의 매일 아침 하던 대로 그대로. 온몸 가득 빽빽하게 들어찬 수분으로 터질 듯한 구름 보따리가 태양이 가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오늘. 이런 날은 사춘기 소녀처럼 마구잡이로 뛰는 가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져서 또 한편 우울해. 이젠 다할 수 없는 여윈 생.
미명(未明)은 길지 않았어. 채 밝지 않은 시간을 넉넉히 갖지 못한 것은 내 게으름이 원인이겠지만 태양의 힘이 더더욱 눌렸으면 참 좋겠다 싶었어. 비가 좍좍 내려도 괜찮았을 거야. 원 플러스 원의 검은 운동화에 방수제를 몽땅 뿌리고 나왔거든. 그보다도 이런 날은 진짜 사춘기의 푸른 욕망으로 살고 싶거든. 어쩌다가 하루, 한 날이라도 설령 이 늙은 여자, 오욕 칠정의 온갖 감정 혼합을, 마치 걸신이 들린 미친 여자처럼 들쑥날쑥 춤을 춘다고 해도 용서되는 그런 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날이라니까. 아직 희미하게 밝은 미명(微明)의 시간이라니까. 가만 나를 가다듬지 못하는 날이라니까. 뿌연 물안개 속 아무것도 사물화가 될 수 없는 구렁텅이라니까. 아니 뚜렷한 출구나 드러나지 않는 입구는 찾을 수 없으므로 아무 곳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육신 거들먹거리면서 분탕질을 할 수 있는 날이라니까. 도려낼 수 없는 줄기에 심을 수 없는 뿌리이므로 그냥 겉돌다가 물러나도 그만이라니까. 구분되지 않는, 굳이 분류할 필요가 없는, 기꺼이 아무렇게나 뭉뚱그려지더라도 흠잡을 턱을 찾을 수 없는 혼미의 상황이라니까.
그루터기를 만질 수 없으니, 정수리를 쓰다듬을 수 없으니. 각진 어깨를 어루만질 수 없으며 곧게 선 척추를 흐르는 중추의 뼈다귀를 간추릴 수 없느니 차라리 난무를 지껄이는 몸뚱이의 서투른 욕망으로 하루 난장질을 하고 싶은 날이라니까. 공식도 무의미하고 규칙도 곧추설 수 없고 무시무시한 법도 굳이 제 몸을 사릴 요량이 불필요한 날이라니까. 이젠 쌍수 곧은 선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흐르는 턱선을 쳐올리면서 두 눈 징그럽게 부릅뜨고 날 선 계산을 할 필요가 없는 날이라니까.
아침부터 단정함으로 추스르면서 하루를 정돈할 필요가 없었고 사람을 포함한 사물들의 그림자도 자기 색을 발휘할 수 없는 날이었어. 태어나기도 전에 망가진 값싼 오락의 sf 영화처럼 전쟁도 고루 불붙일 수 없는 날. 벌써 봄의 순환이 이지러지고 채 도착하기도 전에 낯선 여름이 흐느적거렸어. 흐물흐물 인의 자국을 지닌 생명체들이 채 짙은 불도 켜지 못한 채 눈 뜨기가 바쁘게 흐물거리기 시작했고 아침을 미리 시작한 나는 여문 정돈을 정갈하게 제 치를 수 없어 무릎을 진즉 꿇은 후였어.
하루의 절반을 치르기도 전에 하늘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작정하고 덤빈 대낮의 낯빛에 사선 가득 그어졌어. 나는 짐짓 평생을 안고 살아온 하나의 물음을 불러와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지. 돼지머리로는 부족하여 사자의 뇌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평생을 써 온 낡은 일기 한 장이 하늘로 승천해서 올라가기 시작하자 아직 덤비기도 전에 불이 말랐고 물이 불타올랐고 외우기도 전에 시공을 가르는 눈물이 웅덩이를 채워 영혼을 불렀지.
그렇게 스물네 시간의 우주가 공중 부화하는 날이었어. 공중 부양 정도였다면 유유자적 부유하는 생도 가능했을까.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가 있는, 나는 '아래'의, 그냥 '사람'이었어. 별 수 있지 않았으니까. 안녕. 누구에게 하는 인사?
오며가며 들은, 오늘 강의의 내용이다.
1. 일본이 군기를 강화하고 있단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무대에서 군사력 문제에서는 고개 숙이고 살아야 했던 일본 정부가 아베 정권 이후 군법을 손봐 가면서 군사력을 높여가고 있다는. 남을 침범하는 군대는 아니다, 침범해오는, 즉 북한처럼 자기네를 건드리는 녀석들을 손 봐주겠다는 명목의 법을 만들었다는. 이후 엄청난 세수를 군사력에 투입하고 있단다. 현재 더 강력하게 추진하려고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단다. 기울고 있는 경제력 속에 높아지는 세수를 국민들이 용납해주겠는지. 고령화로 인해 군인이 제대로 모을 수 있는지. 그들이 꿈꾸고 있는 5년 뒤면 세계 3위의 군사력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2. 요즘 이름만 스쳐도 펑펑 올라가는 2차 전지류 쪽 주가에 함박웃음을 웃는 이들이 많은데. 글쎄 하고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는. 무엇이 옳은지는 지나 봐야 알 것이리라. 오르면 내리는 날 있고 내리는가 하면 또 오르는 날이 있더라는 무사태평의 해석은 나의 것이고. ㅋㅋ
3. 세계화의 전망 혹은 종말? 1930년식 불황은 아닐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사이 완화,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과 중국의 선한 악수, 다양한 관점, 즉 남(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자국의 미래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많은 국가. 하여 미국의 좌불안석 등 경제학자이자 역사가 마크레빈슨의 인터뷰(인터뷰어는 최준영 박사님 - 유튜브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의~). 다양화되는 세계화의 방향 등을 잘 들었다. 최준영 박사님이 번역한 책이 나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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