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e와 함께 care가 필요하다.
느닷없이 지나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알쓸인잡'이던가. 알쓸 시리즈의 최신판을 말한다. 당시 제법 열심히 봤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물론 늘 바쁜 나는 모든 회를 다 볼 수는 없었다. 중간 회쯤에서 시청을 멈췄더랬다. '씻고 나오니 오늘 마지막 회란다. 김영하 선생님이 안 계신다. 일이 있으셨나 보다. 이미 끝나가고 있던 시각이었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끝 회를 다시 봤다.
마침 출연진 각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던 때였다. 법의학자이신 이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사자(死者)도 권익 보호가 필요하지만 사자(死者), 즉 피해자들의 가족들에 대한 보호가 절실하다. 그 사람들을 care 해 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사체가 있는 큰 사건뿐만이 아니라고 여긴다. 자그마한 일에도 그 곁에 함께 있었던 산 자들을 위한, 즉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이 꼭 필요하다. 통계상 집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3대가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 주변에서도 그렇다. 사건 사고화되는 일뿐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사자(死者)가 발생하고 이를 견뎌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를 봐 왔단다.
사건 사고, 질병, 나아가 죽음으로 치닫도록 사는 일에는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너무 힘들다. 남은 생을 평생 커다란 트라우마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 이에 대비한 폭넓은 상담 시스템이나 심리학 도움처 등이 꼭 필요하다. 그래, 우선 지켰다는 생색을 내세우고 나 몰라라 하는 시스템은 결코 안 된다. 정상에 가까운(정상적인 생활은 결코 할 수 없으므로) 생활로 돌아올 때까지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는 제도가 꼬 필요하다.
일반화가 필요하겠다. 그림의 떡이라든지 돈 있는 자들에게만 가능한, 담벼락 높이 쌓아 올린 방식, 성곽 속 비밀의 방이 아니어야 한다. 이는 처음 실시할 때부터 지양해야 한다. 손쉽게, 힘없는 자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정스러운 소탈함을 나누고 사는 소시민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이들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방식,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복지이기도 하다.
이 호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출연진 분들이 각자 자기 자신을 진단하게 하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김상욱 교수님은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은, 나는 미술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뻥 갔던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그림 읽기를 좋아하는 과학자라니, 선생님을 좋아하면 예전부터 늘, 어쩐지 '큰 기쁨'이라는 낱말이 생각나곤 한다. 늘 웃는 얼굴 때문일까. 선생님과는 이렇게나 큰 나와의 공통점이 있으시구나 생각하니 얼마나 신나는지. 가끔 김상욱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면 그랬다. 이 분을 좀 미리 알았더라면 이분의 강의가 좀 일찍 진행되었더라면 나는 분명 과학 교과 공부도 열심히 했으리라. 그럼 지금은 어떤 생을 살고 있을까.
이호 교수님은 따뜻한 사람이다. 심채경 선생님은 나는 나다운 사람이다. 남준은 나는 욕망하는 인간이다. 본업에도 도움이 된다. 결혼이 삶에 꼭 필요한 것인가. 남준의 진단에 내 아이가 생각났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항준감독은 나는 행복한 인간이라고 했단다. 프로그램 사회를 보는 자기 자신이 행복하단다. 얼굴이 온통 행복해 보이기는 한다. 장난스러운 얼굴이 생을 참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마누라 때문인가.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차마 공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참 신기한 상황 앞에 있다. 사람 때문에 생긴 일. 여전히 미궁이다. 여러 방법으로 모색하고 있으나 오리무중이다. 3주일째이던가. 혹여나 하는 맘 때문에 뒤돌아서면 너털웃음이 덥석 풀어헤쳐질 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미 꼭대기를 점령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뻗대는 인간 종자 앞에 허허하고 있다. 일 년을 한 공간에서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니 이를 어쩐다. 자꾸 '사랑으로'라는 해묵은(?) 족속들의 언어가 나를 강타하고 있다.
한데 예전과 다르다, 나도. 그냥 넘어가버리고 싶다. 그냥 문들 닫고 출입금지를 올리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해야 할 고유의 업무 중 하나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요즘 세상에 무슨 고유의 업무라니오?"
나도 내 일의 양이며 질을 조절하고 싶다. 마냥 따른다고 마구잡이로 되는 일도 없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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