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수면을 위한 식음!
'식음 전폐'라는 낱말이 떠오르면서 자꾸 헛웃음이 터진다. 어두움을 뚫고 집을 향해 걸어오는데 아무래도 잠이 쉽지 않을 듯싶었다. 남자가 없다. 나 혼자 지내야 할 밤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 짐이었다. 나를 위한 음식을 차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런 날에는 또 문제가 되는구나. 음식을 섭취해야만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
그렇지들 않은가. 너무 피곤하면 잠이 쉽사리 찾아오지 않은 법.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였다. 맨 정신으로 긴 밤을 고꾸라뜨리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안 아프기 위해서. 지금 이 시국에 아프면 안 된다. 어느 시국엔들 내 일터에서는 적어도 나는, 아프면 안 된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일터는 아니다. 방법을 떠올렸다. 없다. 별 다른 방법이 없다. 마시는 수밖에. 최소한의 음식으로 막걸리를 딱 한 잔만 마시고 자기로 했다. 술 중 다음 날 내 영혼을 거의 쥐어박지 않은 것이 막걸리임을 최근 발견했다.
하여 집 앞 마트에 들렀다. 들어갈 때에는 쇠고기 스테이크였는데 바꿔졌다. 육고기 코너 쪽으로 가니 힘찬 소리가 내 귀를 붙잡았다.
"30퍼 세일 가에요. 목살도 있고 찌개용도 있어요."
그래, 목살이다. 바꾸자. 내 신세에 무슨 소고기이냐. 하여 목살 묶음 한 덩이를 불쑥 집었다. 코너를 돌아 우리 지방산 막걸리 한 병을 들었다. 바쁘게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아, 겨울 여행은 이것이 문제로구나. 짐을 푸니 빨래가 한 짐이다. 바깥출입용 옷은 한 벌 더 준비했을 뿐인데 산만한 배낭이다. 꼴에 책을 두 권이나 넣어갔다. 읽던 소설 한 권과 시집 한 권.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짓을. 2박 3일에 책을 두 권이나 넣어가다니."
뇌까리고 나니 그래도 버스 안에서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소설이었다. 일부러 가벼운 경향일 것이라 여겨지는 책을 넣어갔다. 쉽게 읽어지는 책. 반을 넘게 읽었다. 다행이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라는 것은 아직 내게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남아있다는 거다.
밤이 늦어 짐만 풀어놓고 머리는 감지 않는 채 샤워를 했다. 어서 막걸리 한 잔을 취하고 자고 싶었다. 목살을 굽고 제법 익은 배추김치 몇 가닥만 접시에 담았다. 딱 한 잔만 마시리라 다짐했건만 두 잔을 마시고 말았다. 취했다. 적당선을 조금 넘어섰다. 후회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제 정신을 차려 이성적으로 움직이자는 생각을 접었다. 남은 막걸리가 담긴 병을 꼭꼭 잠궈 닫아놓고 설거지는 했다. 그리고 침구 속으로 쏘옥!
2박 3일의, 내게는 아무 쓸 데가 없는, 일이므로 다녀와야만 했던 참 재미없고 무의미한 여행을 내 의식의 지하층에 묻었다. 술이 두 잔째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진즉 탈출하지 못했을까? 어쩌자고 이 긴 세월을 매해 이런 여행을 치르면서 살아냈을까?'
먼지가 먼지 노릇을 하듯 나는 내 노릇을 충실히 행한 여행이었다.
오늘은 열 시가 다 되어 이불 속을 나왔다. 반 나절을 화분에 물 주기를 하고 나니 남은 하루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싱어게인 3' 재방을 봤다. 시즌 1과 2에 비해 나를 뒤흔드는 음악이 아직 없다. 탑밴드였던가, 슈퍼밴드였던가. jtbc 오디션에서 만났던 '퍼플 레인'의 채보훈에게 마음이 갔다. 오늘 음악은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였는데 아직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으나 다음 회차에 진출하였다. 보다 임팩트 있는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확실한 록을 불렀으면 싶다.
모두 쓰고는 어제 일기를 떠올려보니 그 내용이 그 내용이다. 이 여행이 정말이지 징그럽게 싫었나 보다. 사실 걱정이 태산인 채 떠난 것이었다. 아무 일없이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하게 빌었던 일이었다. 사고 없이 돌아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다행이긴 하다. 다행이라 생각하자. 너무 미워하지 말자. 그래도 여행이지 않은가. 어쨌든 떠나는 것이지 않았던가. 어찌되었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출타이지 않은가.
자, 지금부터는 영화를 보러 간다. 오늘 보고자 하는 영화는 '슬픔의 삼각형'이다. 오묘한 심리 전쟁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어지는데 어서 보자. 밤이여!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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