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옷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다음 날을 위한 준비로 최근 들어 일기예보를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젯밤 잠들기 전 확인한 내용은 오늘 기온이 많이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급강하'라는 분위기를 강력하게 시사하였다. 예보의 내용에 놀라 한 단계 더 들어가 살폈다. 하루 기온을 시간대별로 체크하였다. 아침 최저 기온은 물론 낮 최고 기온도 상당히 낮았다.
깜짝 놀랐다. 아침 최저 기온을 숫자 화한 십의 단위가 10이었다. 20도 아래 기온이었다. 내가 길을 나설 시간대 기온이었다. 가벼운 공포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입고 나갈 의상이 걱정되었다. 낮아질 기온에 대한 의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옷의 개수 문제가 아니라 팔이 온전한 의상을 챙겨 입으려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유명 패션모델이 대망의 무대에 설 의상 걱정을 하는 듯 마음의 요동이 있었다. 준비를 위한 시간 마련도 쉽지 않았다. 잠들면 아침이다.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당연한 아침이었다. 마음이 동해야 몸도 움직일 텐데 정지 상태의 마음은 미동도 일지 않았다. 크게 떨어진 기온과 그에 따라 함께 변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의상은 변모하지 못했다. 일부러 시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서너 달, 혹은 네다섯 달은 입었던 여름옷을 최저 기온 19도의 아침에도 그대로 걸쳐 입었다. 부지런히 걸음하면 육체에서는 열이 생성되고 그 강도가 더해질 것이니 그깟 19도야 거뜬하지 않을까 싶었다. 출근길을 나섰다.
추위 그리고 싸늘하다 라는 글자 분위기를 온몸이 느끼리라는 각오 하에 길을 나섰다. 19도로 예보된 기온을 여름으로 걷는 길은 매끈할 리 없었다. 7부 정도의 팔을 가진 겉옷을 여름옷 위에 걸치긴 했다. 그것도 여름옷에 해당하는 천이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가방 속에 꾸깃꾸깃 넣어 다니는 검은색 머플러도 꺼냈다. 목을 한 겹 감쌌다. 추위에는 목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 방법이라는 말을 어느 유명 의사 선생님에게서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 옷, 저 옷 그리고 이 물건, 저 물건을 꾸겨 넣고 꺼내입으면서 출근길이 어수선했다. 추위 예방 대체 제의 물건들 덕분에 아침이 바쁘고 가방도 조금 무거워졌다. 그런데도 여름옷과의 이별이 머뭇거려지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옷을 계속 걸친 채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다섯 달을 넘게 그 옷이 그 옷인 검은 드레스며 긴 치마들을 기온의 냉기에도 불구하고 고집하는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가벼워서이다. 내 무거운 몸을 노출에 대한 기본 예의를 충분히 지키게 하면서 가분하게 생활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름 하복은 참 좋다. 손바닥에 펼쳐두고 돌돌 말아 챙기면 한 주먹이 될까 말까 한 여름옷의 가벼움은 삶의 무거움에서 몇 개의 큰 단위 추를 버리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솜털 몇 가닥에 고리 걸어 살아가는 듯한 가뿐함을 선사한다. 덕분에 잔뜩 우거지상의 하루를 보내더라도 생이 제법 상쾌하다.
여름옷의 순발력을 취하면 어디론가 떠나는 길도 훌쩍 나서게 한다. 이것저것 챙겨 넣어 구차스러운 삶의 짐이 필요하지 않다. 경중을 따져 진지하게 일상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움직임을 쉽게 한다. 언행이 가끔 경솔해지는 것도 용납이 된다. 무게의 경중을 따질 필요가 없어 삶의 가치를 굳이 구별하면서 살 일도 마련되지 않는다. 매사 지나침이 쉬워진다.
쓱쓱싹싹 아무렇게나 세상을 걸어도 된다. 펄럭펄럭 나부끼는 천의 움직임마저도 힘차다. 뜨거운 햇살 아래 짐짓 규칙 없이 엉기는 꼴도 겪긴 하지만 한 줌도 되지 않은 천의 부피는 내 멋대로 구기고 펼치는 내 생의 모양새와 비슷하다. 느긋하게 정이 지닌 묘미를 나누면서 살게 간다. 함께 하면 어느 곳에서든지 신날 것 같다. 시월 초순까지는 여름옷으로 버티고 싶다.
퇴근길이 심상치 않았다. 한낮 높아진 기온을 살면 퇴근길이 체감기온이 온도계 상의 기온을 팽개칠 수 있으려니 했다. 확실히 가을이었다. 서늘하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써늘했다. 내일 아침은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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