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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정월 초하룻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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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룻날이다.

 

 

 

우리 엄마가 차리신 설날 상차림은 이보다 훨씬 화려했다. 온갖 것 다 올려놓고 하염없이 두 손바닥을 비벼 자식들의 장래를 조상님께 빌고 또 비셨던 우리 엄마. - 구정으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새해 1월 1일'을 자그맣게 소리를 내어 읽어본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을 다소곳하게 발음해 본다. 더 살갑게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글귀는 어느 것인가. '정월 초하룻날'이 보다 더 나를 친절하게 보듬어 안아준다. 구정. 즉 '설날', '우리우리 설날'임을 따뜻한 말맛으로 확인시켜 준다.

 

 

'아하, 연배가 있으시군요.' 내가 살아온 햇수를 고백하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양력이 자리 잡은 현 사회의 틀 안에 내 삶을 저당 잡혀 온 것이 몇 년인데, 서양식으로 빈틈없이 직조된 조직에서 살아온 것이 얼마인데, 나는 정월 초하룻날을 훨씬 더 가깝고 정이 있게 느낀다. 어색하지 않은가. 아직 노년은 아닌데 말이다. 참고 삼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법적인 노년은 65세이다. 자, 어쨌든 조심스레 내 유년의 정월 초하룻날로 돌아가 본다.

 

 

정월 초하루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하는 일이 매해 반복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면서 있었던 대도시로의 유학 전에는 말이다. 설날이면 틀림없이 진행되는 이 일의 반복이 내 유년의 생을 특징 지운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밀고 쓸고 닦고....... 집 안의 청소다운 청소는 대부분 어머니가 하셨다. 어머니는 한바탕 온 집을 뒤집으셨다. 반질반질 윤이 나게 구석구석 묵은 때를 씻어냈다. 마당이며 바깥 청소는 일꾼들이 했다. 물론 아버지의 손길이 조금 섞어졌을 것이다.

 

 

우리 집은 일 년 내내 거의 대부분을 뚜렷한 청소 시간이 없이 살았다. 농촌 생활이 다 그렇다. 새벽 네 시에 몸빼 두 발에 끼워 올리면서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어머니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벽 전사가 되어 나간 논밭 일은 한밤중 별을 보고 달을 보면서야 끝이 났다. 자식들을 시켜 방 안 청소라도 좀 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내 기억에는 평소 나와 동생이 '청소'라는 이름으로 비를 들고 걸레를 든 기억이 없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오직 공부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명절이면, 특히 정월 초하룻날은 집 안팎이 반짝거렸다. 요술 나라에 딱 한 채 휘황한 집이 있다면 우리 집이었다. 하늘의 후광을 입은 듯 빛이 났다. 나는 지금도 클레이나 점토 혹은 목재로 만든 공예의 마지막 단계에서 바르는 니스류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나의 집 설날 부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야 내가 청소에 대한 인식을 한 듯싶다. 입학 후 교과서 속에서 보게 되는 사진의 영향을 받았을까. 아, 한양이나 도청 소재지를 다녀오시면 아버지가 사 오시곤 하셨던 월간 소년 잡지 때문이었을까. 나아가 단장한다는 것과 꾸미는 것까지 사고의 범위가 넓어졌다. 사람 사는 곳은 좀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혹은 아버지가 사 오신 잡지 속 사진을 보면서 문득 돌아보는 우리 집은 너무 더러웠다. 도대체 정리라는 것이 없었다. 장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살림살이였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사신 부모에게 집안 장식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설날 무렵 대청소 후 단정하게 정리된 우리 집의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하고. 설 지난 후 일주일은 아마 무릎이 아프도록 걸레질을 했던 듯싶다. 열심히 청소했다. 교과서와 잡지 등을 통해 보는 집들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얼룩덜룩한 집 구석구석이, 일 년에 딱 한 번 만나는 정갈한 모습으로 변신했으니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졌겠는가. 더군다나 새하얗게 변신한, 겨울 포근한 무명 솜을 단속한 꽈당꽈상,고 정갈한 이불을 덮었을 때 내 살갗에 닿는 느낌이 어찌했겠는가.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꿈과 꿈을 엮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천사가 되고 싶었다. 설날이면 나는 꼭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놀 시간이 없었다. 불러올 친구들이 없었다. 이른 새벽 '어험~'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교육 방법은 오직 동그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어야 했다. 우리 학년 친구로는 마을에서 넷이 있었다. 한데 집을 오가면서 놀아본 적이 없다. 중돔에 두 명, 윗 돔에 둘이었다. 중돔 둘 중 한 명은 아버지가 경찰이어서 나보다 먼저 마을을 떴다. 또 한 명의 중돔에 사는 친구는 나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을 것이다. 내가 어린 나이로 입학을 했고 그 아이는 늦은 입학을 했던 것 같다. 내 손위 언니보다 더 나이가 많았던 듯싶다. 왕래가 있을 수가 없었다. 윗 돔 친구는 우리 집안 아이였는데 유난히 영리하고 깔끔했다. 나는 그 아이의 집을 딱 한 번 방문한 기억이 있다. 그냥 다녀왔다는 정도이다. 셋 중 그 누구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다. 초등학교 5년 동안 그 아이들과 하교 후 모여서 놀아본 기억도 없다. 나는 오직 공부해야 했고 경찰집 친구는 도시 아이였던 듯싶다. 남은 두 친구는 늘 일을 했다.

 

 

설날은 대부분 겨울방학 중에 있거나 양력 2월에 걸려 있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곳, 작은 넓이의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 마을은 바깥세상과의 소통이 넉넉하지 못했다. 한양이든지, 바다 한가운데 섬이든지 사람 사는 것이 거기에서 거기였던 시기였다. 모두 하루살이 삶에 보대끼면서 살던 때다.(사실 쓰레기통 속에 수두룩하게 담긴 온전한 물건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본격적으로 90년대에 들어선 이후이지 아닐까. 80년대 후반?)

 

 

요즈음 집을 구하기 위한 기준을 들먹일 때 소위 업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웃음을 가볍게 흘릴 때가 있다. 제대로 된 집의 선택 기준이랄 수 있는 것이 인프라라고 어쩌고저쩌고 읊어대는 이들을 보면서 내 먼 유년의 길목에 다시 서곤 한다. 인프라라니. 내가 살던 유년에는 어느 곳에도 반듯하게 차려지는 인프라가 없었다. 설령 차려진 곳일지언정 엉성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도청 소재지의 생활도 지금처럼 시골 생활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정월 초하룻날 즈음 나의 청소 이력은 어린 내가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만난 교과서와 소년 잡지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문화 맛보기에 덜컹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의 환경이 못내 아쉬웠으리라. 

 

 

 

정월 초하루를 혼자 지내니 떡국도 먹지 못했다. 내일 점심에는 꼭 떡국을 끓여서 먹어야겠다. 정월 초하룻날을 지나 떡국을 먹으면, 먹어야 할 나이를 반 년만 먹게 되면 좋겠다. 이런 한심한 어른이여! - 설날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알차게 보내겠다고 다짐한 어제와 오늘, 내가 한 일을 적어본다. 

 1. 어제와 오늘 블로그에 올릴 글 둘을 썼다.(한 편이 아마 200자 원고지 15매에서 20매쯤 될 것이다. 

 2. 영화 <아이리시맨>을 봤다. 무려 세 시간을 넘은 작품이다. 대작이었다. 나의 '로버트 드니로'여. 오, '알 파치노'여! 당신들은 진정 배우로소이다. 

 3. 유튜브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의 한 회를 시청하였다. '셰일 가스 시대의 막이 걷히는 것이 아닌가'였다. 뽑아내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고 노동자도 부족하단다. 나는 한때 셰일이 에너지원의 만병통치약이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다. 떵떵거리던 미국이 쩔쩔매고 있다니.

 4. 영화 <로마(2018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 작품)>를 3분의 1 정도 시청하였다. 두 번째로 보다 보니 조금 지루했다. 명작이다.

 5. 영상 편집 방법에 관한 강의의 2회분을 시청하였다. 나도 열심히 배우면 영상 편집을 해 볼만하겠다.

 6. <알쓸인잡> 강의를 한 시간여 들었다. 발자크를 읽어야 되겠다.

 7. 실내 전체를 부직포 청소기로 밀었다. 어릴 적 생활 습관 때문일까. 나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청소를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

 8. 양발 가슴까지 올려 걷기를 200여 회쯤 했다. 뒤꿈치 올려 서기도 일백 회는 했으리라. 

 9. 어제 점심과 저녁, 오늘 점심과 저녁의 끼니 처리를 주섬주섬 해냈다.

10. 최준영 박사님의 강의 모음인 '태평양의 여러 섬' 합본을 2회까지 다시 들었다. 

11. 몇 영화 평점 검색을 하느라 한 시간쯤 보냈겠다.

12. 아침에 한 시간 여 이불속에서 본 유튜브 내용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마 4, 50분은 봤을 텐데. 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빨딱 일어나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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