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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적시 피칭을 내게 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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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제대로 맞았다. 

 

 

 

이 쯤에서는 아직 먹의 농담을 살릴 수묵 담채가 가능했다.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주는 만큼 받는다'가 어울릴까. 아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아, 이도 아니다. 완벽한 적시 피칭Pitching에 내가 당했네. 내가 당했다.

 

 

 

오늘 아침은 비보호에서 직진한 후 좌회전을 해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을 게다. 내 며칠 전 (대) 자연에게 '뻥' 날렸지. '그대. 당신. '자연'이라는 표제어를 내걸고 인간을 농락하지 말라. 우~ '농락'이라니. 내 거친 입, 얼른 지퍼를 잠근다. 그래, 그대 당신이 시시때때로 부리는 '변화'는 '돌변'이라고 내 주장했지. 심지어 '변신의 귀재' 쪽보다는 '악의 묘령'이지 않느냐고. 내 늘 하는 기법을 동원하였어. 글로 내 생각을 읊었고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지. 그렇게 내 마음을 가라앉혔고. '그래, 순리이지요. 어찌 당신이 그러하리오. 당신은 천상에 본부를 둔 대자연. 결코 악의 축은 아니외다.'라는 화해의 문장으로 결론을 내렸지.

 

꿍해 있었구려. 에이, 그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담아두고 있었다니. 속이 좁기는요. 당신, 대자연이시여. 대자연인 주제에 어찌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듯' 하는 것이오. 그리하여 당신은, 오늘 아침 완전한 변화구 적시 피칭으로 내게 왔구려. 아, 당신. 세상에나.

 

우회전을 하고 말았다.

 

 

 

나, 기분이 참 좋았다오. '불금'이라는 낱말이 지닌 '가벼움'이 내 첫눈 뜨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했고, 어서 출근하자고 이불속을 기어 나와 몸을 수직화하였지요. 날씨예보 상 오전에는 아홉 시쯤 비가 내린다고 했고 이후 흐림 기호만 있었소. 특히 내 퇴근 시간은 당신이 절대 요란을 떨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소. 하여 정말 가뿐한 영육으로 불금을 시작하였다오. 채플린 우산 둘을 스틱삼아 길을 걸었소. 그러고 보니 어제 오후 이미 당신은 오늘 부릴 마술을 잿빛 불투명과 검은 미학으로 예고하고 있었군요. 어제 혹 소나기 쏟아질까 싶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빌려온 우산 하나에 오늘을 준비해서 가져갈 내 우산까지 둘. 우산 둘을 팔뚝에 걸치고서 채플린의 걸음을 흉내 내었소. 랄랄랄 랄라~ 채플린 특유의 모습, 눈깔 휘돌려 얻은 옅은 쟃빛 범벅의 눈알과 두 발에 실은 규칙적인 리듬은 없었지만 내 보폭에 스민 운율은 경쾌하였소.

 

조금만 더 빨리 나올 것을. 5분만 더 빨리 일어날 것을. 집을 나서면서 확인한 시각은 7시 4분쯤. 7시 이전의 출근 시 느끼는 '맑고 투명한 정신'의 순수 청순이 그리웠다. 다음부터는 제발 이불속 기행(?)의 시간을 줄이리라. '눈 뜨자마자 빨딱 일어나기'를 루틴 목록에 넣어 실천하자. 다짐에 다짐을 거듭. 아이고, 나는 이 '거듭'의 길이를 '단 한 번'으로 합치고 일단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서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쏙 들어간 배를 만지면 느껴지는 '내장 공백의 미'가 그리워졌던가. 요즘 실내에서 하던 운동을 못 하고 있다. 출퇴근 길이라도 좀 더 많이 걷자. 길 좀 우중충하면 어떠냐. 내 평소 '우중충'의 기운을 좋아하지 않느냐. '구불구불'이 담고 있는 속 깊은 의미를 맛보면서 즐겁게 걷자. 아파트 후문 출입구로 향하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걷고자 시도하고 있는 '길게 늘인 출근길'이다. 후회는 결국 불필요한 산물이던가. 오늘은 '빨리빨리'로 누릴 수 있는 속도감이 제대로 필요한 날. 더군다나 딱 내 출근 시각에 '때맞춰' 온 것이 있었으니.

 

내리퍼붓기 시작했다.

 

 

 

걸어야 할 2분의 1의 도로 면을 지나고 있었던가. 둑, 둑, 두욱, 뚝, 뚜욱, 뚝 그리고 또옥 똑! 소나기성 굵은 빗방울의 전형적인 너비가 정수리 부근에서 느껴졌다. 재빨리 우산을 펼쳤다. 순간, 아니 '순간'이 지닌 뜻 '눈 깜짝할 새'의 틈도 주지 않고 하늘은 내리퍼부었다. 좍좍 좍좍 좍좍좍 좌아아아아아악...... . 그렇게 2단계를 거치더니 더해지는 것이 있었다. 이름하여 우레.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태어나 처음 듣는 광폭함이 담긴 소리와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뒤흔들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무서웠다. 공포였다. 하늘로부터 예고한 바 미리 알고 있는지 사방팔방으로 향하는 길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였다. 유독 사람 없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우레며 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오늘은 자기 특성을 무시한 채 무차별적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점차 더 굵어지는 물줄기에 광폭함을 담아 내리치는 우레며 번개(우씨! 우레며, 번개, 천둥을 좀 구별해봐야 되겟다. 헷갈리네.)

 

청각 聽覺의 순수를 내 태어나 처음 감지한 듯싶다. 젖은 온 몸으로 오는 질척거림과 흐릿한 시야가 느끼는 불안함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우레와 번개, 소나기에 가장 예리하게 감응하는 것은 내 청신경이며 안뜰 신경이었다. 정말로 무서웠다. 죽음 앞에 선 노인일 때에야 '공포'의 진짜 모습을 깨닫는다던가. 아, 이 나이에 폭우, 우레, 번개 때문에 공포를 실감한다? 내 나이며 살아온 세월이며 연륜을 들먹일 필요도 없었다. 일단 무서웠다. 두려웠다. 내 대들었던 자연의 신이 내려와 내 몸뚱이를 쏙 빼내어 검은 보자기에 담아 어디론가 데려갈 것 같았다. 무서웠다. 무서운 것을 어찌하랴.

비 맞은 암탉이 되었다. 

소나기는 보통 내렸다 멈췄다가를 반복하면서 세 줄기로 내린다 하여 '소나기 삼 형제'라 한다던데. 지상에 꽂는 모양새는 옛 시절, 칼 찬 무인들이 하인 잡도리하듯 거칠었다. 산만한 덕대, 가속도를 붙여서, 보통 소나기 내리는 시간의 두서너 배는 될 듯싶은 시간을 들이 퍼부었다. 모든 길은 하천이 되고 강이 되어 넘실거렸다. 늘 그렇듯 백색 순수를 자랑하는 내 운동화는 지난 주말 베이킹 소다에 때 빼고 광내어 신고 왔는데~ 소복처럼 흰 빛깔 운동화가 빗물에 잠기더니 치렁치렁 여름 롱원피스도 퍼붓는 비에 쫄딱 젖어 물줄기를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저 깊은 곳, 내 속곳마저 흠뻑 젖었다.

 

구별되지 않은 세상이었다.

 

 

 

 

내 일터 앞 큰길에는 신호등이 있다. 이제 다 왔다 싶은데 내가 발 디딘 곳은 한 동아리 한강 물이 되어 종아리의 한가운데까지 잠기게 했다. 이 폭우 속 괴기스러운 날에도 지킬 것은 지켰다. 한강 물속에 종아리 반을 담근 채 초록빛 신호등이 되도록 기다렸다. 길을 건너 일터 초입에 서서 어제며 그제, 매일 사진을 찍던 곳에 서서 폰 필름을 들고 풍경을 담아냈다. 온통 잿빛, 흑 울음 세상을 몇 컷 되는대로 담았다. 

 

실내로 들어서니 이미 작동되고 있는 디지털 첨단은 늦가을이었다. 스타킹을 벗어 빨고 운동화를 맨 물에 헹구어 말려두고 실내 늦가을을 봄기운 정도로 올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십분 여 지났을까. 히끗히끗 유리창 밖이 서서히 밝아졌다. 바깥 풍경은 맑음이었다. 그러나 실내 늦가을 온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내 여름 의상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내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침을 삼키는데 '꼴깍' 상태에서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실내 첨단을 잠시 아웃시켰다. '22. 내사람들'이 입실하기 전에 내 언 몸을 녹여야 했다.

 

 

 

 

정확한 형태를 잡아먹어 버렸다.

 

 

이 빗속에도 어제, 그제, 매일 그렇듯이 거의 똑같은 시각에 '22. 내사람들 입실 1호 한 사람'이 등록 시각을 잊지 않고 들어섰다.

"안 더워요? 무지무지 더운데요. 왜 에어컨을 껐어요?"

"온통 비를 맞았더니~ 말이야. 나는 추운데 어떡하지?"

"추워요? 여름인데요? 여름이잖아요."

"그래. 냉방 시작하세요. 근데 실내온도 24 정도는 해 줘요. 더 낮추지 말아요."

"그래요, 뭐. 내가 쪼금 참을 게요. 근데 사람들 많아지면 24도로는 안 돼요."

 


여기서부터는 퇴근 후~

 

한여름 무더위 속 내 일터 공간에서 '봄'과 '가을'이 '우레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헤어졌다. 실내 온도를 20도에서 23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면서 하루를 지냈다. 내 가늘고 얇은, 골 긴 모가지에는 검은색 머플러가, 쌩하니 목을 두르고 있었다. 내 깊숙한 그곳 속곳이 다 말랐다는 생각이 든 것은 퇴근 무렵이었다. 여전히 물기 흠뻑 젖은 채의 운동화를 대충 싸잡아서 가방에 넣고 보니 어제보다 훨씬 무거운 가방의 무게가 짐스러웠다. 온몸을 둔중하게 하였다. 실내용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내 생을 질질거리면서 질질 질질 퇴근길을 흐느적거려 집에 왔다. 무너져 자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서 씻었다. 아무래도 타이레놀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늘 밤을 지내야 할 듯싶다.  

 

춥다. 한겨울 몸 시릴 정도의 추위가 느껴진다. 진짜다. 폭염 중에 초겨울 추위를 맛봐야 하는 내 육신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서러우리라.

'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일은 미션 스쿨이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 이후 '비종교인'인데도 나를 줄곧  따라 사는 주기도문이라도 좀 써 볼까 싶다.

 

불빛이 반짝이는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

당신을 무척 사랑하오

정말 많이 사랑하오

알고 있소?

지금 이 사랑의 굴레가

내 모든 피를 다 녹여버린다오. 

.........

이탈리아 출신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를 그리는 음악 <카루소>이다. 아침 일기를 쓰는 내내 최고 볼륨으로 들었다.

"있잖아요. 계단 올라오는데 큰 소리로 들려요."

"엥~"

"근데 걱정하지 말아요. 안으로 들어가면 안 들린대요."

연속 재생으로 한참을 들은 후였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카루소>를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루치오 달라'의 목소리로 듣지 않는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팬텀싱어 시즌1'에서 들었던 소리를 듣는다. 성악가 이동신과 록 가수 곽동현이 이중창으로 부르는 소리. 이 둘의 '카루소'를 들으면 '미칠 것 같던 나'가 '아직 미칠 때는 아님'을 깨닫는다. 사랑의 피라는데. 좀 녹아내리면 어떠냐. 기꺼이 녹아내리리. 

 

<카루소>를 켜면서 나와 함께 있던 한 사람 '22. 내사람들' 중 한 사람과 나눈 대화이다.

"나, 지금 꼭 이 음악을 들어야만 해. 지금 이 음악을 들어야만 오늘 내가 온전할 것 같아. 용서해 줘."

"괜찮아요. 됐어요. 들으세요."

 

 


 

자연이 대자연이 되어 내게 가해 온 적시 피칭에 놀랐을까. 왼손 손목에도 살짝 통증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다 놀라웠던 하루! 

 


 

어쩌자고 오늘은 이리 또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사실 비몽사몽간이다. 맞춤법이 좀 부실하면 어떻고 오탈자가 있으면 또 어떠냐. 온몸이 부실하다. 어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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