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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집 가까이에서 일출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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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까이에서 일출을 보다.

 

 

 

 

 

집 근처에서 본 일출. 그 힘 앞에 감격하다.

 

 

 

기상 알람 전에 눈을 떴다. 5시 30분. 소란스럽지도 않은데,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새벽에 눈을 뜨게 되는 이유가 몇 있다. 긴 밤을 인내한 요의, 걷어찬 이불 때문에 차가워진 두 발 등. 아무 일도 없었다. 새벽에 눈을 뜨게 하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일이 벌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음 가뿐해질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 금요일이어서?

 

 

다섯 시간을 푹 잔 듯싶다. 잘 잤다. 어젯밤 통화에서 내사랑은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후배와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선배들과 골프를 간단다. 이젠 어미 걱정 없이도 제 인생을 끌어갈 나이. 차분하게 내 생활로 돌아오기로 했다.

 

 

아빠 닮아서 술과 친해지면 안 된다 싶어 술은 조금만 마실 것을 이야기했다가 얼른 말 끝을 다른 내용으로 돌렸다. 요즘 아이들은 제 기준들이 뚜렷하여 충고나 조언이 모두 갑질로 들릴 것이다. 맘 편히 먹자고 생각을 바꾸니 잠이 솔솔 쉽게 왔을까. 자정을 넘어 보기 시작한 영화는 메릴 스트립 출연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영화 보기를 마감하지 않은 채 수면에 들었다. 메릴 스트립의 영화치고 이렇게나 나를 붙잡지 못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글쎄 잠이 쏟아지는 시각에 시작한 것이 이유이기도 하리라. 어쨌든 나는 오늘 아침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쯤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에 미적지근한 상태로 눈을 뜨면 뭔가 풀리지 않은 문제를 담고 있는 듯 몸이 무겁다. 그런 날에는 오감이 지닌 감각세포들이 하중을 호소하게 된다. 자연히 다시 또 눈을 감게 된다. 이불속 온기에 묻히면서 아침의 시작이 더뎌진다. 지난밤 미리 계획한 오늘이 시작부터 갑갑해진다. 몸이 꾸릿꾸릿해지면 마음도 찌뿌둥해진다. 술술 풀려야 할 일들이 구깃구깃, 꼬깃꼬깃해진다. 곳곳에서 복작복작 부딪히게 된다. 결국 껄끄러운 인간계가 형성되는 하루가 되고 만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모두 맑음이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신기할 만큼 온몸과 정신이 깔끔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깨끗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기운도 산뜻했다. 마치 어느 신의 보호 아래 신성한 성역에 내가 편입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 아침을 어서 시작하자.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본들 밥이 나올 리 없고 죽이 쒀질 리 없다.'

여섯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전히 기상 알람 전이었다. 이불속을 벗어난 순간이었다. 재빨리 출근 준비를 했다. 같이 사는 사람이 벌써 나가느냐고 깜짝 놀란다. 꿋꿋하게 답한다. 그럴 것이라고.

"감."

 

 

여섯 시 삼십칠 분이었다. 아파트 권역을 나서서 첫 발을 내디딘 시각이었다. 사진 한 컷을 담고 머뭇거렸다. 몸이 출근길 계산을 위하여 들어설 방향을 타진하고 있었다. 출근길을 중복적용하여 걸었다. 제1코스. 아파트 둘레길을 한 바퀴 돈 후 일터를 향해 직선으로 가는 최 단거리이다. 두 바퀴를 걸었다. 이십여 분이 걸렸다. 빠른 걸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 최 단거리 걷기의 두 번째에서 내게 힘을 욱신 더해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출이었다. 일. 출. 

 

 

일출 전! 오늘 아침 첫 사진!

 

 

몸이 게으른 나는 연초 애써 찾아가는 일출 감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 정상이나 대양의 한 귀퉁이를 찾아 일출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다. 대중 속에 나를 섞는 것을 지레 피한다. 사람 뭉텅이 속에 합류하여 흐르는 것이 힘겹다. 옆 사람은 진즉 포기하였다. 내게 절대로 양력 초하룻날의 새벽을 함께하자는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차라리 늦은 아침잠이라도 푹 자라는 것에 힘을 보탠다. 내 불면의 고충을 알까. 

 

 

그런데 오늘, 평지 걸음 중에 일출을 만났다. 아파트 둘레길, 제1코스, 최 단거리 출근길을 두 바퀴째 걷는데 저 멀리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배경이 회색빛 하늘이었던가, 옅은 푸른빛의 하늘이었던가. 곱상하게 그러데이션을 만들어 솟구쳐 오르는 일출에 그만 걸음이 정지되었다. 내 힘이 아니었다. 내 마음의 조정이 결코 아니었다. 내 뇌세포의 운동신경이나 감각세포 조율도 아니었다. 떠오르는 일출의 기상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내 발걸음이 멈춰졌다. 마스크 속에서는 콧물이 마스크 위에서는 눈물이 찔끔 흘러 방울져 내렸다. 한 방울에서 멈췄다. 마음을 다잡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일출은, 제 몸의 일부분만 내보이면서 내 눈을 사로잡아 거래를 시작하였다.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목멜 정도였다. 감읍 지경에 이르렀다. 정열은 은근하되 품위가 있고 우아하였다. 일출 한쪽 귀퉁이 불거진 하늘 한 곳을 보는데 왜 눈물이 흐르는지. 굳이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내게 자기 모습을 선보여준 태양에게 감사했다. 일찍 일어나서 걸으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조용한 찬란이었다.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일출의 고결함이었다. 보이지 않은 일출의 전모가 이미 내 가슴속에 존재하였다. 전부가 벌써 보였다. 아름다웠다.

 

 

아침은 서서히 제 영역을 굳건히 했다.

 

 

내 낡고 헐어서 보잘것없는 육신에서 알지 못할 기력이 샘솟았다. 출근길은 장거리 코스로 이어졌다. 장거리 코스 진입 시 시각을 보니 아직 일곱 시가 되지 않았다. 3분 전. 늘 걷던 장거리 코스였는데도 참 새로웠다. 삼십여 분의 차이가 해가 늦은 겨울에는 이렇게나 다르구나 싶었다. 거리는 고요했다. 어제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어제나 그제 걷던 길의 느낌과 달리 나의 몸에서는 급격히 끓어오르는 힘이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기분이었다. 집 가까이서 본 일출이 내게 심어준 근사한 체험이었다. 도서 반납을 위하여 시립도서관 오르막길을 다녀오는 것도 정해진 행사 같았다. <바가바드 기타>의 크리슈나 신이 묘사한 글을 한번 더 읽고 카메라에 담은 후 반납을 하고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꼭 외우고 싶은 글이나 너무 길다.

 

 

여섯 시 삼십 분에는 집을 나서기. 사십 분 정도는 걷기. 집 근처에서 일출도 보기. 그래, 이것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해 볼까? 이리 좋은 것을! 이토록 즐거운 일을 왜 하지 않은 것일까. 평일,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이 건을 실행에 옮긴다? 새 루틴의 목록에 올린다? 해 봐?! 해 볼까. 해 보자.

'아침 여섯 시 삼십 분에는 집을 나서자. 그리고 다양한 코스를 걷자. 적어도 40분 이상의 아침을 열심히 걷자. 일출도 보고, 같은 둘레길 같은 지점에서 바라다본 하늘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제 모습을 변화시키는 마법도 챙겨 보자. 필름에도 담자. 아침 일기도 틀림없이 아침에 끝내자.'

좋다,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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