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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태풍 '찬투'가 함께 살고 있는 날 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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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와 있는 태풍 '찬투'는 캄보디아에서 제공한 '꽃' 이름이란다. 어떤 꽃일까. 어느 곳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태풍이라는 낱말이 안고 있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어감으로는 '이슬람', '불교' 심지어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떤 꽃일까. 이른 봄 잎에 앞서 화사하게 솟구쳐 무리로 피어나는 개나리처럼 원색이지만 소탈한 멋을 지녔으면 좋겠다.

 

어제 저녁 식사로 먹은 '양배추 등 각종 야채 버무림에 올린 치즈전' 때문이었을까. 포만감으로 저녁 시간을 흐리멍텅하게 보냈다. 어제 꽉 찬 노동(?) 시간으로 피곤했거니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소비한 시간까지 더해져 몹시 지쳐 있었다. 두텁게 만든 야채피자전 두 장의 섭취로 불뚝한 배도 피곤해 했다. 드로잉 한 장도 하지 못했으나 그만 포기하였다. 낮 동안에 만나는 인간들 중 두셋이 떠올라 소맥에 진한 위스키를 퍼 마신 듯 마침내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그냥 영화 '리플리'를 보고서 하루를 정리하기로 했다. 

 

영화 끝에 영화 보기. 소위 릴레이 식으로 진행되는 내 영화보기는 막 보기를 끝낸 영화 속 배우나 감독과 연결된 영화를 또 보는데 어제 보게 된 영화는 '리플리'였다. 며칠 전 이미 '보고싶은 영화'에 담아뒀다. 인터넷 뉴스 검색에서 발견한 영화였나? 아님 '리플리증후군'을 읽다가 찾아냈을까. 아님 어제 한 젊은 여자와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배우 '주드 로'때문인가.

 

영화 초반부는 시청자들의 평점 정도였다. 부른 배를 잠재우고 눈에 불을 켜고 볼 수 있는 정도의 진행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고 싶음을 억누르고 되돌려보기를 여러 번 하면서 기어코 영화 끝까지 보는 것이 내 습관인데 제대로 된 오늘 생활을 위해 TV를 끄고 잠을 청했다.

 

천벌 받은 소리이지만 태풍은 몇 점 비를 뿌리고 밤을 지나갔다. 싱거웠다.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가 울릴 만한 단위는 전혀 되지 못했다. 평소보다 일찍 깨어 씻고 바쁘게 영화를 이어 보다가 출근을 했다. 주드 로, 멧 데이먼으로 '명배우는 출발선부터 다르구나.'를 단정짓던 즈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 영화 속 호프만은 늘 배불둑이에 진득한 중년을 노는 가슴 큰 사내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젊었다. 배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봤던 그의 유작 '갓스 포켓'이 떠올랐다. 참, 사람의 생이란 이리 허무하다 느낄 만큼 판이하게 다른 두 영화 속 모습에 그만 눈물을 찔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여. 고마워요. 당신의 연기로 나는 온갖 뭉퉁한 산 경험을 하며 살았소. 당신 있어 행복했소.

 

유료로 본 영화는 적어도 두 번은 보는데 '리플리'는 세 번을 생각하고 있던 차. 오늘 오후, 내일 오후는 재빨리 퇴근하여 영화만 봐야겠다. 드로잉도 잠깐 멈추고. 

태풍은 이미 제 목숨을 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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