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 4 - 8회. 9회부터는, 이제 진짜 본 무대가 펼쳐진다. 기다린다.
일터 대형 프로젝트의 한 단계가 끝났겠다. 크게 터진 한 건의 일이 정리되어 간다. 금요일 퇴근길을 흥분이었다. 3일간의 연휴이다. 내 가까이 부대를 옮긴, 저 강원도 첩첩산중에서(한 번도 간 적이 없어서 그저 대량 읊은 것이다.) 충청도로 부대 이동을 한 아이에게 가려고 했더니 시댁 가족 행사가 있다고 못 간다고 했다. 내 서식지에 좀 더 가까워진 아이는 혼자 살림이라도 살림인지라 이사는 이사이니 힘들었을 텐데. 어미는 3일 연휴를 그리면서 당장 '팬텀싱어'를 하는 날이라고 랄랄라였다.
좀 더 걸을 수 있는, 긴 길로 퇴근하니 대형 식자재 마트 곁을 통과한다. 사뿐사뿐 들뜬 걸음으로 들렀다. 목살구이를 먹고 싶었다. 이미 집에 와 있는 남자에게 목살구이를 해 두고 술 마시러 갈 것을 명령하고 바쁘게 샤워를 했다. 뽀독뽀독 닦느라고 금방 팬텀싱어 시간이었다. 최고의 목살 구이였다.
본선 트리오 대결의 여섯 팀이 꾸미는 날이다. 여덟 팀 중 두 팀을 바로 결선에 진출한다. 남은 여섯 팀에서 네 사람이 최종 탈락자가 된다.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에나, 누구를 탈락시킨다는 것인가. 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지난 회에서 이승민, 임규형 그리고 김수인의, 팀 이름 '국악무도'가 꾸미는 조용필의 곡 '황진이'가 트리오 첫 무대였다. 첫 무대를 장식한, 김수인이 이끄는 듯한 '국악무도'는 김수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한 지루함이 선곡에서부터 느껴졌다. 자꾸 반복하니 노래의 의미가 퇴색된 듯하다. 듀엣 무대 최고점이었던가. 유리한 팀원 소집의 기회를 가진 그들은 천재라 불린다는 임규형을 모셔왔는데 그는 전혀 천재적인 소리를 만들지 못했다. 그가 못해서가 아니라 편곡이 문제였다. 임규형이 임규형답게 노래할 수 있는 배분을 하지 못했다. 가왕 조용필의 음악을 노래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거기에 시청자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1회에서부터 시작된 국악 크로스오버의 분위기를 변함없이 해대니 지루할 수밖에. 실망이었다.
두 번째 무대는 '울트라 바주카 총'이라는 기상천외한 팀 이름의 트리오였다. 신은총과 오스틴킴과 림팍의 〈Requiem〉(김동률 곡)이었다. 제목이 내 관심을 끌었다. 나는 왜 천명처럼 레퀴엠이라면 환장을 하는가. 클래시컬한 대중음악이다. 김동률의 곡이니까. 깜짝 놀랐다.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말이다. 림팍의 소리에서 다양한 리듬, 다채로운 이야기가 묻어 나왔다. 매력적이었다. 깊은 슬픔을 노래하는데 오스틴킴이 소화하는 소리는 극저음에서 최고음까지 진성과 가성이 연결된, 마치 소리로 마술을 부리는 듯한 신비로움이었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절절함을 표현하는 데에는 림팍의 절제된 고음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소리의 범위나 묵직함은 덜하지만 신은총의 쭉 뻗어 힘 실린 목소리까지 더해져서 비통함과 절규를 충분히 전달해 왔다. 림팍은 참 매력적이다. 그는 진짜로 선생 같다. 매력적이면서 참 든든한 교사 스타일! 적어도 3, 4위는 하지 않을까 싶은, 완서도 높은 무대였다. 어느 심사위원이 완성도는 높으나 감성이 부족하여 아쉽다는 평에 나는 동조할 수 없었다.
지난 회, 트리오 두 팀 중에서는 두 번째 팀이 훨씬 좋았다. 림팍이 이끄는 팀 말이다. 두 팀 모두 심사위원들의 점수 분포는 좋았다. 이제부터는 최고점과 최저점만 알려준 뒤 모든 팀의 무대가 끝난 후 최종 점수와 순위를 알려준다. 8회 리뷰 쓰기가 너무 늦어졌다. 이제부터는 8회에서 진행된 트리오 무대 여섯을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당일, 시청하면서 메모해 둔 것을 바탕으로.
안민수, 홍준기, 서영택의 팀 '쎄봉 안디아모'가 8회 차 첫 무대였다. 프렌치 팝 'Call on me'.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의 표현에 서영택의 소리가 적절한 역할을 해줬다. 안민수와 홍준기가 보여줬던 듀엣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멋진 모습이었는데 트리오의 주인공은 서영택이었다. 파리 남자여서가 아니라 서영택의 목소리는 슬픔의 분위기 표현에 적격이다. 어느 심사위원의 평이었던가. 벌스(도입부)에서의 매력적인 전개에 이어 박자를 쪼개서 살린 운율이 참 좋았다고. 내 예상으로는 여덟 팀 중 중간 순위는 상회하지 않을까 싶었다.
듀엣 무대에서 잔뜩 기대했던, 한 사람을 따로 뽑아내어 글까지 썼던, 조진호가 이끄는 노현우와 조진호, 김모세의 팀 모음 '진호수호대'의 노래 〈Ali di Libertà〉는 '희망'이었다. 새로운 날을 위해 준비하라. 조진호는 자기 무대를 도드라지게 하지 않는다. 박강현도 말했다. 조진호 장르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칭찬하고 싶다고. 한데 이번 무대는 정통 클래식에 가까웠다. 조진호의 역할을 적어도 한 군데는 도드라지게 했다면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훨씬 포인트가 있는 음악이 되지 않았을까. 크로스오버적인 노래 말이다. 많이 아쉬웠다. 조진호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을까. 늘 눈으로 웃는 김모세의 그만그만한 소리도 문제였 했다. 듀엣 무대에서 보여줬던 배움을 이번 무대에서는 펼쳐내지 못했다. 모세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노현우는 묵직했다. 제 역할을, 제 소리 부분에서의 자기다움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것이 팬텀싱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던 이기현과 이해준, 안혜찬의 '〈Sonreirás〉도 무난했다. 다른 사람과 있는 옛 여인을 바라보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지난 듀엣 무대에서의 이기현과 안혜찬은 자기 역할을 톡톡히 보여주었으므로 이해준에게 집중해서 시청했다. 이해준은 뮤지컬에서 대단한 입지를 다진 위치에 있다고 소개되었는데. 글쎄다. 그가 지금까지, 이번 트리오 무대에서도 사실 나는 이해준이 안타까웠다. 중간에 서서 자기 소리를 우렁차게 지르기는 했지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자칫 가볍다고 느낄 수 있는 안혜찬의 밝고 가벼운 톤이 차라리 나았다. 이기현은 기본이 탄탄하다는 것을 그의 솔로무대에서부터 깨달았다. 이해준. 글쎄, 글쎄. 갸우뚱거리면서 트리오까지 봐 왔다. 세 사람의 소리에는 '조화'라는 낱말을 조금 덜 어울리기도 했다. 곡의 분위기가 내게 제대로 전달되어오지 않았다.
이한범과 김광진, 이동규가 '핵광클'이라는 팀명으로 꾸민 무대는 〈Don't go〉였다. 자기네 음악을 들은 후 미친 듯이 클릭하라는 뜻의 팀명이란다. 이동규가 곳곳에서 보여주는 아이디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젊다고 느껴졌다. 디스코 풍의 노래 편곡에 신스팝이 느껴지는 무대는 선명한 춤 선을 함께 보여줘서 괜찮았다. 워낙 록 마니아인 나에게는 김광진이 있어 더욱 의미 있게 인식되는 팀이었다. 누군가 심사위원이 폭발적 시너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고 평했으나 심사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김정원 심사위원은 특히 이한범을 물고 늘어졌다. 그저 양념으로 팀에 소속되어 있는 듯,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나는 그렇게까지 느끼지는 않아서 참 서운했다. 서운함은 서운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준범과 김성현, 김우성의 팀명은 무엇이었던가. 아, 맞다. '물 만난 펭귄'. 박준범과 김우성의 듀엣인 듯싶었는데 그 둘의 소리를 뚫고 비상하는 펭귄테너 김성현의 소리가 광대한 우주 공간 속으로 폭발했다. 그들이 부른 곡은 〈Splash〉였다. 진중함이 흐르는 박준범과 김성현의 소리 조합. 그리고 상큼하고 발랄하기까지 가미된 듯한 목소리 김성현. 조화롭다는 분위기의 심사를 손혜수 심사위원이 해주셨다. 나는 그 셋의 조합에서 평온과 균형을 함께 읽었다. 저 윗선의 라인을 타고 노래 부르는, 폭발적인 방향의 김성현 소리를 박준범과 김우성이 잘 받쳐줬다.
마지막 여덟 번째의 무대는 듀엣팀 대결에서 뜻밖의 멋진 무대로 사람들을 감탄시켰던 진원과 김지훈에게 정승원이 합해진 '진지맛집'. 그들은 〈Il coraggio delle idee〉라는 곡으로 참 따뜻한 무대를 선보였다. 조화롭고 깔끔하고 누구 하나 접히지 않은 화음이었다. 사실, '아름다움'을 말하기에는 글쎄다. 내 주관적인 평이다. 단정하고 음색 맞추기는 잘 되었으나 분위기는 별로였다. 말하자면 조금 더 들으면 너무나 변화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똑같은 선으로 이어지는 무대. 한데 이 팀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은 대단했다. 내 생각이, 전혀 음악성을 지니지 못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팀, '원이네 진지맛집'이 트리오 대결 1위였다.
트리오 팀 대결의 순위를 정리해 보자
<진호수호대> 총점 558점으로 8위, <핵광클 > 총점 563점으로 7위, 6위는 안민수와 홍준기, 서영택. 5위 이기현, 이해준과 안혜찬. 4위 신은총과 오스틴김과 림팍. 그리고 3위는 이승민과 임규형, 김수인. 2위는 < 물 만난 펭귄 > 팀의 박준범, 김성현, 김우성.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뜻밖의 1위는 진원과 김지훈과 정승원. '원이네 진지맛집'.
'원이네 진지맛집'에게는 크로스오버에 맞는 정통 노래로 각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며 극찬이 이어졌다. 프로듀서 김문정은 장담하건대 팬텀싱어 4의 최고 레퍼토리로 회자될 것이라는 뒷붙임의 문장까지 극찬을. 박강현은 함께 무대를 꾸며보고 싶다고 했다. 윤종신 프로듀서도 이 팀에게 곡을 써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 생각을 많이 빗나간 것이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팀 '핵광클'이 7위인 것도 좀 서운했다. 물론 록 마니아인 나의 편견에 집착한 생각일 것이다. 내가 정한 순위를 말하는 것을 참자. 어쨌든 이어지는 순서, 슬픈 순서가 있었다. < 팬텀싱어 4 >의 사중창단이 본격적으로 편성되기에 앞선 마지막 탈락자 발표. 4명의 탈락자가 발표되었다. 남은 20명은 본선 4라운드 진출자이다.
테너 김모세, 바리톤 이한범, 뮤지컬 홍준기, 그리고 테너 안혜찬. 매우 슬펐다. 홍준기가 서럽게 울 때는 나도 함께 눈물을 찔끔거렸다. 이 네 명이 남아있는 20명보다 얼마나 더 못하길래 이렇게 싹둑. 오디션임을 잘 아는데도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부디 이번 오디션을 계기로 멋지게 발전하는 4인이 되길 간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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