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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하루걸러 비가 내리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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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걸러 비가 내리는 봄

이쯤 내리는 것이 '봄비'인데~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요즈음 날씨이다. 3, 4월 춘궁기에는 비도 내리지 않고 건조하다는 것이 내 생이 배운 삶의 지식이다. 하루걸러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궂은 하늘의 연속이다.

 

과연 3월과 4월에 자주 내리는 비가 땅의 힘을 키우는 것에 좋은 것인지를 언니에게 물었더니 나도 모르겠다고 뒤로 뺀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시골 살림살이에 잘 적응하고 재미 붙여 하던 사람이 한양 땅에 상경한 지 몇 년 되었나 싶은데 농사일을 이젠 모르겠다고 한다. 한양 땅이 사람을 바쁘게 했는지, 사람이 한양 땅에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는지. 하기는 어렴풋이 남은 기억을 되살려 ‘낟가리’라는 낱말을 잊은 내게 '벼름'이라는 낱말을 가르쳐 줘서 ‘낟가리’며 ‘볏갈이’며 ‘벼름’을 알게 해 줬다.

 

이즈음 우리 아버지와 엄마는 어떠셨던가. ‘씬나락’이었던가, ‘신나락’이었던가. 아니면 ‘씨나락’이었나? 건강한 것들 가려 심어 모내기할 벼의 묘목을 만드느라고 바삐 움직이셨던 우리 엄마의 ‘몸빼’ 차림이 떠오른다. 아니 더 이른 날이었던가. 이것저것 대농의 주인답게 많은 일거리를 엄마와 우리 집 상 일꾼 ‘후*양반’에게 명을 내리고 읍내로 바쁜 길 나서곤 하시던 아버지의 풍채 좋은 모습도 함께 기억난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식물이 자라기에는 물이 넉넉해야 좋다고 하지만 봄, 건조한 날이 일정 기간 있어야만 식물 씨앗이 탱탱한 묘목으로 자라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지나치게 물기 마른 날의 연속으로 봄철 화재를 키워 무서운 화마가 무섭기도 하지만) 싹을 틔워서 자라게 하는 건강한 힘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최근 내리는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 전통적인 봄비의 양상도 아니다. 마치 여름 장마가 떠오를 정도이다. 심지어 서너 번은 안방과 안방 화장실과 서재 쪽에 제습기를 가동하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이번 비만 내리고 당분간 하늘에서 내리붓는 비는 당분간 멈췄으면 좋겠다. 위 생각이 내 억지 혹은 무지일 수도 있지만 봄비가 너무 낮아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평생 시골 살림 중인 천사표 오라버니에게 요즘 비가 약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 알아봐야겠다.

 

아침을 바쁘게 걸었다. 아침 일기의 초안을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업무 시작하기 전 남아있는 시간이다. 위 내용은 2일 써 뒀다.

 

오늘 아침도 세상이 흐리짐짐하다(내 창작어. ㅋ) 바쁘게 집을 나서면서 현관에서 밖이 보이는 유리창과 마주쳐서는 핸드폰의 오늘 날씨를 검색했다. 다행히 핸드폰 속 오늘 날씨를 드러내는 기호가 회색 구름이다. 수직으로 내리그은 선은 없다. 다행이라는 마음을 품은 채 외투를 팔에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산뜻했다. 아파트 건물을 나서면서 내 축 처진 볼이 만난 바깥세상의 첫 기운이었다. 아, '산뜻하다'라는 낱말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기뻤다. 일단 몸이 가벼웠다. 어제부터 입지 않기 시작한 내복 바지의 무게가 내 몸뚱이에서 빼내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아날로그 일기에 썼다.

 

"웃자. 웃으면서 살자."

 

어쩐지 오늘 이후 하늘이 비 내리는 것에 게을러질 것 같다. 내가 너무 봄을 홀대했다는 반성을 한다. 내게 은근한 힘이 있음을 안다. 나의 삶을 뺀, 뭇사람의 삶과 세상의 흐름을 예측하는 기운이 있다.(이 내용은 언제 하나의 글로 쓸 예정이다) 간혹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곳으로 향한 문을 얼른 닫는다. 내가 지녔다고 생각하는 그 기운을 들쳐 보니 하늘이 내게 노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어지간히 하지. 봄, 땅을 좀 촉촉하게 해주는 나의 노고를 이따위로 무시하다니!"

하늘이 토로한다.

내가 그 기운에 응답한다.

"하늘이시여, 노여움을 거두라."

 

내 젊음의 시절을 함께 했던 고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하늘에게 용서를 빌어본다. 등반을 무척 좋아해서 자기 시집에 사진을 올리곤 했던 그녀의 사진이 떠오른다.

 

봄비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러 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읽으면서

시의 근간 이루는 순수한 희망의 빛에 잔뜩 부러웠던~

그 맑은 순수가 발하는 빛 너무 강해

그만 그런 시인이 행여나 지구 우주의 잡스러움에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늘은 어서 시인의 영혼을 자기 곁으로 모셔갔을까.

 

그녀 부고를 종이 신문으로 읽고서 눈물 훔쳤던 아득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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