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MBTI는?
나의 MBTI는?
푸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MBTI라니. 도통 사는 것에 초월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나. 나의 MBTI는? 관심도 없었다. 주변에서 요란하게 터뜨리던 용어였다.
"나는 이러한데 네 MBTI는?"
"나의 MBTI는?"
"그래, 몰라? MBTI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요즈음 이것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세상에나. 뭘 하고 사니?"
"응, 알아. 듣고 있어. 근데 관심 없어. 그것을 한들 안 한들 무슨 소용? 그런 것 재미없어."
나는 '별난 인종'에 속해 있다. 그래, 그러려니 한다. 내 생인 것을. 뭐, 어때? 그래, 니들 많이 해. 많이 하라고. 나는 관심 없어. 한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것과 엄청 가까운 삶을 한때 살았던 적이 있다. 말하자면 손수 '부적'이라는 것을 창조(?)해서, 물론 부적에 그려진 그림을 공부해서(지금은 그 어떤 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때는 꽤 진지하게 공부를 했는데~) 내 손수 내가 원하는 부적을 그려서 내 베갯머리 옆에 세워놓고 잠을 잔 적도 있었다.
간절했다. 정말로 내 사는 생이 왜 이러는지, 어쩌자고 이토록 내 바람과는 전혀 아닌 방향으로만 진행되는지 엄청나게 힘이 들었던 그런 시기였다. 돌려 말하면 잘 살고 싶었던, 어떻게든 멋진 삶을 살아내고팠던 그런 욕구 혹은 욕망, 나아가 탐욕까지 가동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잘 살고 싶었던, 잘 살 것 같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는? 아니다.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나는 서 있다. 자포자기는 지나치다. 그저 묵묵히 내가 서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는 거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심껏 내 뜻대로 나의 일을 해내고 싶다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낱말인 '그러려니~'를 내세우고 모든 일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위치이다.
한데 MBTI를 어쩔 수 없이 해 봐야 할 행사가 있었다. 일터, 나와 내가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던져진 MBTI 검사가 실시되었다.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었다. 거부할 수가 없었다. 했다. 응했다. 잊었다. 스캔을 해 놓지도 않았다. 당연히 나의 MBTI는 잊었다. 왜?
나의 MBTI는 계속 바뀌었다. 잠깐 나왔다가 되돌아가서 다시 해 보면 또 바뀌었다. 한번 그런 결과가 나오자 MBTI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MBTI에 대한 내 본래의 생각이 옳다는 것으로 단정하게 되었다.
'그래, 하나 마나. 칼 융의 심리학이 근거? 말도 안 돼! 내가 좋아하는 칼 융이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은 사람 나름이지. 유형별로 나눌 수 없어. 이것은 절대 아니다. 굳이 시간 내어 할 필요가 없어. 그래, 재미 삼아 할 수는 있지. 그리고 그 결과를 놓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눌 수는 있겠지. 나한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일이야. 멈춰. 그만둬.'
엊그제 나는 그만 다시 하고 말았다. 일터 젊은이들의 모임 안에 내가 자리해야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혹 내가 내놓은 섣부른 낱말이나 문장이 젊은이들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되도록 조용히 있자고 앉아있는데 착한 젊은이들은 또 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느라고 바빴다. 대화는 MBTI에 관한 것. 나는 바쁘게 핸드폰을 통한 MBTI 검사를 해 봤다. 무슨 검사를 할 때면 생각할 겨를 없이 바로 생각나는 것에 체크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 바쁘게 해대면 그것이 진짜 나의 MBTI일 거야.
이미 모임의 분위기는 MBTI를 벗어났는데 나는 내 결과를 스캔까지 해서 저장했다. 'INFJ-T'였다. 옹호자. 차분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격. 다른 사람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이상주의자. 와! 내가?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 나 자신에게 감읍했다.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심장이 통통거렸다. 진즉 할 것을. 차분하고 신비한 분위기까지는 맞다 하자. 되도록 말을 많이 하지 않고(사실은 내가 한 말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길 때 곧 쓸어서 회수할 자신이 없어서) 사는 관계로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오곤 한다. 한데 다른 사람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이상주의자라니. 이것 또한 맞긴 하다. 나는 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한데 진정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물쭈물. 무엇보다 내게 힘이 없다.
그러나 힘이 좀 없으면 어떤가. 기왕 MBTI가 내게 내린 판명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부디 남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사람이 되자. 하다못해 얼굴에 웃음을 좀 더해서 보는 이들에게 기쁨을 더하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관심도 주자. 내 미미한 힘이나마 거기에 정성 깃든 관심과 관찰과 살핌이 더해진다면 큰일은 아닐지언정 살아가고자 하는 의욕의 불꽃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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